전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고인돌문화는

[ 마문명 -> 한반도 남부 -> 한반도 북부 -> 만주]

로 전파된다.

 

[지구 기온 변화표]

 

추웠던 기후가 점점 더워지면서

현재의 해안선은 8천년전에 완성된다. (지금과 8천년전의 기온이 대강 같다.)

그런데 그후 기후가 계속 더워져서

6천년전 ~ 3천년전에 기온이 최고로 높아지고

그 후 차차 식어서 지금에 이른다.

 

 

기온변화와 문명전파 등의 이유로 고대한국의 수도는
[한반도 남부 -> 한강 -> 대동강 -> 압록강]으로 이동했다고 본다.

 

더워지는 기후에 따라서 고대한국의 중심지도 북상하게 된다.

대강 말하자면 8천년전에 고대한국의 중심지가 한반도 남부, 중부였다면

지금보다 더웠던 6천년전에는 고대한국의 중심지가 한반도 북부, 만주였다는 것.

 

만주서부 홍산문명이 6천년 전에 시작한 것도

그때쯤 되면 북한과 만주가 지금보다 더 따뜻했기 때문.

본래 문명은 적당한 기후가 되어야 활발히 발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더욱 그렇다.

 

( 홍산문명은 고대한국 중심지는 아니다.

압록강 유역에서 홍산문명보다 훨씬 더 많은 피라미드 등

고대 유적 유물이 훨신 더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도.

 

압록강 유역에는 홍산문명보다 말하자면 수백배는 더 많은 유적유물이 있다.

대부분 고구려 거로 '둔갑'되어 있거나 비공개로 창고에 감추어 놨다.

 

중국당국이 홍산문명을 부각시킨 이유는 그 지역(만주서부)이

압록강보다 더 중국에 가깝기 때문.

중국당국은 동북꽁정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압록강 유역의 유적 유물들을 급격히 부각시킬 것이다.

특히 집안시와 환인시 지역의 것들을.)

 

위 그림은 고대한국의 주요영역을 시대별로 대강 그린 것.

물론 8천년전 이전에도 문명은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남한에서 시작한 고대한국문명은 또 다른 발전을 보인다.

그래서 7천년에 시작된 산동반도 북신문화나

6천5백년전에 시작된 대문구문화

6천년전에 시작된 홍산문화 등은

8천년전 이후에 다시 시작된 (황해 마문명과는 또 다른)

고대한국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산동반도에서 발굴된 고조선족의 팽이형 토기와 아사달 모양(네모 안).

해뜨는 모양(아침 단())을 나타내는 그림 아래

산(당시에는 땅, 산이 ‘달’이라고 불렸음)이 그려져 있다.

중국 측은 기원전 4300년∼기원전 2200년의 유물로 추정한다.

- 사진 제공 신용하 교수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5260044

 

위 토기는 산동반도 대문구문화의 토기.

아사달( 해뜨는 땅, 해뜨는 산) 무늬가 그려져있다.

산동반도가 오래전부터 고대한국의 영향을 받았음은

고인돌들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후대에 공자도 산동반도 지역 출신이고

[동방불패]라는 말은 중국 동해안 특히 산동반도 쪽 사람들이 뛰어나다는 말.

 

북신문화, 대문구문화, 홍산문화는 당시 중국내륙 문화와 많이 다르다.

당시 한반도, 만주의 문화와 비슷하다. 

돌무덤, 빗살무늬 토기 등

또 하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

황해마문명의 영향 등으로 대체로 세계는 모계사회였는데

고대한국에서는 부계사회로 바뀐다.

그래서 홍산문명에서도 원주민은 모계사회(여성지도자)이고

고대한국에서 간 환웅씨는 남성지도자.

 

황해마문명의 전파로 세계는 신석기혁명이 일어나고

(대략 1만5천년전~ 8천년전)

그 바탕위에 세계에 다시 고대한국(환인씨 나라)문명이 전해지는 것.

(8천년전 이후 - 이들을 통칭 [아리안(알이안)]이라 한다.)  

 

산동반도 북신문화는 7천년전에 이미 시작되는데

만주서부 홍산문화는 천년 늦은 6천년 전에 시작되는 것은

그 사이 지구기온이 올라가서 6천년 전에는 만주도 많이 따뜻해진것.

( 6천년전 당시 만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지구기온은 6천년전~3천년전 가장 따뜻했다.

그래서 이 때에 고대한국문명은 시베리아 등 북부로도 많이 전해졌다.

당시 시베리아는 지금보다 많이 따뜻했으므로.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 토기 (한국)

 

빗살무늬토기도 한국이 원조. 

8천년전 것도 발견되었다. - 강원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그런데 희한하게도 빗살무늬토기는 북쪽으로만 전파된다.

6천년전~3천년전에 지구기온이 가장 따뜻했을때

고대한국문명이 시베리아로 활발히 전파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

그 시기에 빗살무늬토기 뿐만이 아니라 많은 고대한국문명이 시베리아로 전파되었는데

이를 거꾸로 시베리아에서 한국으로 문명이 전파됐다 하면 곤란하다.

시베리아는 너무 추워서 당대 고도문명이 자체 발생, 발전되기가 어려운 곳.

시베리아가 비교적 따뜻했을때 남쪽에서 문명이 전파된 것.

 

( 바이칼리안(밝할인)이 황해평원에 온것은 그보다 훨씬 전 일이고

그들은 별다른 높은 문명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는 바이칼 호수 지역 유물발굴로 알 수 있다. )

 

위 그림을 보면 고대한국인들은 시베리아를 건너 북유럽까지 가고 있다.

북유럽은 백인의 발생지로 추정되는 곳인데

원조 백인들은 머리카락이 탈색돼서 하얗다. (은발)

그런데 게르만은 머리카락이 빨간색 등 여러가지.

이는 원조백인들(하얀머리)과 고대한국인들(검은머리)은

혼혈때문이 아닌가 싶다. 

 

 

시베리아 동쪽에 [아무르]라는 강이 있다.

 

아무르강 유역 꼰돈에서 발굴된 아무르 여인상 (4천년전)

 

세계 고고학계에서 [아무르의 비너스]라 불리는 위 여인상은

한국인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머리를 납작하게 만든 편두문화는 가야, 신라의 편두와 같다.

 

[위 여신상에 대한 연합뉴스의 보도]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1453578&section_id=103&menu_id=103

 

위 여인상은 4천년전 것인데 당시에는 지금보다 많이 따뜻했고

아무르강 유역으로도 고대한국인들이 상당수 이동해 간 것으로 본다.

[아무르]라는 이름도 고대한국인들이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르는 [아물] 즉 [아(해뜨는 동쪽)에 있는 물]이라는 말로 본다.

 

날씨가 지금보다 더웠던 8천년전 이후의 문명전파는

대강 남한보다 북쪽 지역으로 이루어진다.

 

난생신화는 대략 한국 이남 위도 지역에 널리 퍼져있고

천손신화는 대략 한국 이북 위도 지역에 널리 퍼져있다.

위그림은 [난생신화와 천손신화의 주요 지역]을 대강 그린 것. (퍼온 그림) 

 

천손신화지역 즉 [범 알타이 지역]은 주로 8천년전 이후에 문명이 전파된다.

또한 그래서 그 지역에는 부계사회의 전통이 강하다. 부권이 비교적 쎄다.

7천년전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다는 [아리안]도 저 경로를 따라 이동한 것으로 본다.

물론 고대한국에서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이동해 갔을 것이다.

한국의 [홍익인간]정신이 괜히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겠다.

실제로 후에 인도에 들어온 아리안(브라만)은 인도 북쪽에서 남하한다. 

 

8천년전 이전에는 고대한국인들(마문명인들)이 주로

한국보다 남쪽지방으로 많이 이동해간다.

지구가 지금보다 추웠으므로.

동남아 등지에는 비교적 모권이 쎄다.

이는 모계사회였던 마문명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

 

( 난생신화 천손신화는 근본적으로는 같다.

알을 알이라 부르는 것은 알이 태양처럼 둥글기 때문.

고대한국에서 태양은 [아, 알, 안] 등으로 불린다.

훌륭한 인물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말하자면 태양의 정기를 타고 났다는 것.

[한국]할때 [한]이라는 한국어는 [하늘, 태양]을 뜻한다.)

 

위 그림의 [난생신화] [고인돌] 그리고 [쌀농사]의 전파는

주로 8천년전 이전부터 많았던 것으로 본다.

물론 마문명은 8천년전 이전 당시 지금보다 훨씬 더 많고 컸던

태평양의 섬들로도 퍼져나갔을 것인데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이 된 것이 [잃어버린 무대륙]이라 본다. 

 

8천년전 이전 - 남쪽 지방 위주로 전파

8천년전 이후 - 북쪽 지방 위주로 전파

 

즉 그 시대의 [대강 현재의 한반도와 비슷한 기온 정도]의 지역으로

문명이 전파돼 나간 것.

 

( 중국에도 난생신화, 천손신화가 전파됐겠지만

후대에 '중국의 자존심' 때문에 많이 전승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8천년전 이후에 대강 만리장성 이북의 대초원 지역을 따라

이동한 [아리안]들은 이미 7천년전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난다.

그리고 중동(수메르), 이집트, 유럽, 인도로 퍼져나간다.  

 

메소포타미아문명 즉 수메르 문명은 대략 6천년전 ~7천년전 사이에

어디에선가 갑자기 문명을 가지고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문명.

최근 들어 수메르문명의 언어가 한국어와 많이 비슷하다는

논문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을 보아도 진실은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하겠다. 시간문제. 

 

터키가 그토록 먼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데에는

이러한 고대역사가 숨어 있다.

터키가 지금 혈통적으로는 한국인과 같음이 적지만

그들에게 문명을 전해준 [문명의 시조]가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

터키가 중국한테는 형제의 나라라고 안하면서

왜 유독 한국한테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지 유념해보자.

 

경주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장식보검

(국립경주발물관 소장 - 보물 635호)

 

위 보검은 동아시아에서는 유일한 것이고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것은 카자흐스탄과 이란 밖에 없다.

 

신라는 고조선의 진한인들 중 만주서부에 살던 사람들이 내려와서

지금의 경상도 지역 원주민과 만나서 생겨난 나라.

그래서 신라유물에는 알타이계 유물이 많이 나온다.

알타이는 만리장성 이북 초원지대.

즉 8천년전 이후 지구가 지금보다 더웠을때

고대한국에서 퍼져나간 [아리안]들이 살던 지역.

 

위 보검은 [아리안]의 전통을 일면 보여주고 있다 본다.

특히 삼태극. 

 

위 보검과 유사한 것들은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와 중동(이란)에서만 발견되었는데

이는 고대한국을 출발한 [아리안]이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동으로 진출한 한 예라 하겠다.

물론 저 보검의 연대가 예를 들어 꼭이 7천년전 것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지금도 한국에서 고려청자를 재현하는 움직임이 있듯이

[아리안]의 후예도 그 선조의 전통을 재현한 것으로 본다. 

 

 

[알타이산 북쪽 파지릭 고원에서 발견된 그림]

 

 

-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지 박물관 소장.

  

위 그림에 보면 동북아인 지도자에게 아랍계 기사가 따르는 모습.

앉아있는 동북아인이 크게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아도

계급이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원조 아리안]은 동북아인이고

중동으로 문명을 전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리안]은 인도에 들어와서 [브라만]이라 불리고

그 후손 중에 한 분이 석가부처님.

그러므로 석가부처님은 고대한국의 후손이라 본다.

 

석가부처님은 왜 귀가 길까.

백제, 신라 유물에서도 보이듯이 고대한국에서는 특히 신분이 높으면

남자도 귀걸이를 했다.

대체로 신분이 높을 수록 큰 것을 했을 것인데

그래서 귀가 늘어진 것으로 본다.

석가부처님이 귀가 길었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불상 등에서 긴 귀로 표현 한 것은 신분이 높은 집안이라는 의미로 본다.

 

천 5백년전 알타이 파지릭 카페트 - 복원품  

http://www.carpetworldwide.net/pakistan/pakistan-1-1-2.htm

 

[아리안]은 3천5백년전에 이미 저러한 카펫을 만들 정도로

문명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왜 널리 알려지지 안았냐면

그동안 세계사가 백인 위주로 많이 쓰여져서 그렇다.

백인들이 세계고대사학회에서 세력이 강했으므로

세계 고대사가 유럽지역에 [유리하게] 홍보되었다.

유럽에서 멀수록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시아 고대사는 중국에 유리하게 홍보되어 왔다.

만리장성 이북, 한반도 등 중국 바깥지역 고대사는 폄하되어왔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황제들이 여러번 한국역사책들을 없애라고 명령을 내리고

실제로 조선 임금들이 조선팔도에 명령을 내려서 한국역사책들을 거둬서 없애버린다.

그리고 후대에 일제도 한국고대역사책들을 전국에서 거둬다가 없애버린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만 남겨놓는다. 그게 제일 만만하니까.

삼국사기는 좋은 면도 많지만 사대주의 성향이 많이 들어가 있고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삼국유사는 '동화식'으로 쓰여져 있다.

일제는 '만만한' 이 2가지 한국사서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다 불태워버리던가

일본으로 가져다가 꼭꼭 숨겨놓는다.

일본 왕실 도서관 창고 깊숙한 곳 같은 데다가.

 

중국과 일제의 오랜 한국고대사 말살 공작으로

한국 고대사서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몇가지 간신히 전한다는 몇가지 사서도 '진위논란' 등으로 발목이 잡혀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

세상이 점점 더 개명되고 과학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한국고대사의 진실, 세계 고대사의 진실은 살아나고 있다 하겠다.  

 

저 기사의 말에는 콧잔등과 가슴에 [곡옥]이 달려있다.

 

[신라 천마총 금관]

위 신라금관에도 수많은 [곡옥]이 달려있다.

신라유물에는 수많은 [곡옥]이 발견된다.

 

[ 신라 금허리띠 ]

위 허리띠에도 곡옥이 매달려 있다

 

백제유물 - 최근 부여 왕흥사터에서 출토

 

위에서 보이듯이 백제도 곡옥을 만들었다.(사진 우상)

 

위 그림의 동북문명 지역 중 홍산문화에서는

수많은 곡옥들이 나오는데 아래 것도 그 중 하나.

 

곡옥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홍산문화는 6천년전~4천2백년전 까지의 문화.

홍산문화는 고대한국에서 퍼져나간 [환웅문화] 중 하나.

 

곡옥은 고대한국의 상징 중 하나.

 

그 곡옥이 중동까지 퍼져 나간 것이 위 [알타이 파지릭 그림]에서도 나오고

백제, 신라 역시 당연히 고대한국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니

곡옥을 많이 만들었던 것.

 

중국에서는 곡옥이 발견되지 않는데

오직 은나라 유적에서만 나온다.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로 유명한 나라.

 

 

8천년전 황해가 완전히 바다가 되고

황해평원 마문명인들이 한반도로 다 올라온다.

마문명은 남한 앞바다(서해,남해)에 존재했으므로

마문명인들은 주로 남한땅으로 올라왔을 것이고

처음 고대한국이 세워진 곳은 남한 땅.

 

그런데 8천년전 이후에 지구기온이 올라가면서

고대한국 즉 [한인(환인)씨의 나라]는
한반도 북부, 만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그 중심지도 차차 북으로 올라간다.

 

한국의 수도는 나중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조선때 한국의 수도는 대동강이 되고

...열국시대를 거쳐서...

고려때 수도는 대동강과 한강의 사이

조선 때는 한강이 된다.

즉 한국의 수도는 남한지역에서 시작되어 북한지역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한으로 내려온다.


처음에는 한강이 한수(漢水), 아리수(알이수) 등으로 불리다가
대동강, 압록강도  한수(漢水), 아리수(알이수) 등으로 불리게 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북한 이북지역으로도 문명이 전파되고

만주에도 문명이 전파되면서

그 중 하나가 만주 서부 [홍산문명]

홍산문명은 6천년전~4천2백년전이니 지금보다 더울때이고

당시 그 지역은 지금보다 따뜻했다. 

 

그런데 홍산문명도 고대한국 문명전파의 일부일뿐.

 

위 그림의 [천손신화 지역]은 대강 [알타이 지역]이라고도 불린다.

8천년전 이후 날씨가 지금보다 더웠을 때 그 지역으로 

고대한국 문화는 활발히 전파되었다.

그래서 [한국문화]와 [알타이문화]는 많이 비슷하다.

알타이문화가 한국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원조 고대한국문화가 알타이로 전파된 것.

(물론 나중에는 서로 문화 교류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전편에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이 남하해서

[황해평원 원주민]들과 만나서 진정한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은 너무 추운 곳에서 왔으므로

황해평원으로 올 때 별다른 문명은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8천년전 이후에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의 후손들 중 일부가 

다시 [바이칼 호수 지역]으로도 [금의 환향]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서 남하했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문명을 가지고. 

 

[압록강 유역 (집안)의 고대한민족 피라미드들 - 1만2천기]

 

위 피라미드들은 중국당국이 새로 보수를 해서 새거처럼 보이지만

아주 오래된 것들.

중국당국은 저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거라고 근거도 없이 우기고 있지만

저 피라미드들은 고구려무덤과는 아주 다르다.

장군총은 저 피라미들 중 좀 큰편에 속한다.

일제와 중국당국은 장군총 등 한국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거라고 믿게 하려고

공작을 많이 벌였다.

그런데 장군총 등이 고구려때 거라는 근거는 전혀없다.

고구려보다 수천년전 거라는 근거는 많다.

 

그런데 동북꽁정이 먹혀들어간다고 생각했는지

탐원꽁정이라 이름을 바꾸더니

(탐원 - 근원을 찾는다.) 

 

최근 들어서는 압록강 유역에 [여명문화]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더욱 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동북꽁정파가 [여명문화] 즉 [처음 시작한 문화]라는

이름 붙인 [신별유적]은 길림성 통화현에 있다.

물론 아직 그 유물들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통화현은 집안시에 붙어있다.

 

위 집안(지안)시는 고구려가 도읍을 했던 곳.

 

그래서 동북꽁정파는 아래 고대 피라미드들을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쳐왔다.

 

 

 

위 사진은 만주서부 홍산문명의 것.

피라미드 위 부분이 없어졌다.

 

압록강변 집안시에는 저런 피라미드들이 널려있는데 (1만2천기)
요하 홍산문명에는 몇개 없다.
 
그런데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들에 대해서는 
중국당국이 5천년 이상 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발표했다.

 

 

한반도에서 비교적 먼
즉 비교적 중국에서 가까운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는
5천년 이상 전 것이라고 이미 발표한 중국당국이
 
그와 똑같은 형식의 [압록강변 집안시]의 피라미드들은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쳐왔던 것.
 
똑같은 것들이 중국에서 가까이 있으면 5천년 이상 전 것이고
한국에서 가까이 있으면 겨우 고구려때 것인가. 
 
꽁정파는 이제 슬슬 더욱 본색을 드러내며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의 유적을 
시작하는 문화 즉 [여명문화]라 이름 붙이며 
점점 더 한국고대사 납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백두산 꽁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감이 잡히시는가.
 
놈들은 이미 [제2차 삼위태백 지역] 즉 압록강 북부 문명이  
홍산문명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그동안은 중국과 비교적 가까운 [홍산문명]에 대해서만
정보를 조금씩 흘리며
마치 거기가 압록강변보다 문명이 더 빠른 것처럼 사기치다가
 
이제는 점점 더 꽁정이 성공할 것 같아서인지
압록강변 고대사까지 삼키려고
압록강변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 문명에다가
[여명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다가온 것이다.
[백두산꽁정]과 함께.
 

그들은 유물, 유적발굴들을 통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대부분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한방에 대대적으로 발표할 것이다.

세계에다가 대고 대대적으로 

'이 압록강 유적들을 봐라~ 중국이 세계고대문명의 시조다~' 라고.

그들이 동북꽁정이니 탐원꽁정이니 백두산꽁정이니 하면서

그리도 '목숨 거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놈들의 꽁정은 치밀하게 장기적으로 감행되어 왔다.
정말 위험한 적은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적.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의 적.
 
필자는 중국당국이 고맙다.

그들의 동북꽁정이 고맙다.

그들은 만주고대사를 중국고대사로 둔갑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래서 만주 고대 유적 유물을 열심히 발굴하고 있다.

머지않아 만주유물들을 모두 공개하면서 중국역사라고 우길려고.

하지만 그들의 만주 고대 유물, 유적 발굴 고마운 것이다.

간단하다. 우리는 단지 그게 한국고대사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 등 한국고대사라는 근거는 너무나 많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만주 특히 압록강변 고대사를 중국고대사로 볼 학자는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사필귀정.

제3국 학자들 즉 세계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서도

한국고대사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동북꽁정이 고마운 것이다.

우리가 힘들게 발굴해야 할 것을 그들이 다 해주니까.

( 고맙습니다. 꽁정파 여러분^^ )

 
문명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역시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 분포도]

 

삼국유사에는 [환인(桓仁)씨] , [환웅(桓雄)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씨]라는 말은 고대에는 극존칭. 아주 훌륭한 분들의 칭호.)

 

삼국유사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동화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황해(+남해)대평원은 1만5천년전~1만4천년전 물이 들어와서

바다가 되었고

다시 물이 빠졌다가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에 다시 물이 들어와서

지금의 바다가 되었다.

 

마문명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황해(+남해)대평원은 대단히 넓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한반도 남부는 그에 비해서는 평야가 좁고 비교적 척박하다.

 

그래서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 지도자의 탄생]으로 본다.

 

그 [남성 지도자]의 존칭호는 원래 [한이]라 본다.

 

[한이]는 [태양(한)같은 사람(이)] , [하늘 같은 이]

- 한민족은 원래 사람을 [이]라고 부른다. (그 이, 저 이, 아이 등등등)

 

[한이]는 후에 [한인]이 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이 바로 [한인]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환]이 아니라 [한]이고

[환인씨]는 원래는 [한인씨]로 발음 되었다.

 

한하다(태양(한)같이 밝다) -> 환하다, 훤하다

 

옥편에도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한]이라고 나온다. 

 

[마문명]에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여성(마할머니)였는데 (모계사회)

차차 한반도 남부로 올라오면서 [한문명]이 되고

남성 최고지도자의 문화가 생겼고 

그 최고지도자를 [태양(하늘)같은 분]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한이]라는 존칭이 나중에 발음이 [한인]으로 바뀌었고

다시 발음이 [환인]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중국역사책에도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마한]을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있던 [진한(辰韓)]과

만주 서부, 중국대륙 동해안에 있던 [변한(弁韓)]은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진한]은 [진국(辰國)]이라 부르기도 하고

[변한]은 [변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변진()]이라는 말은 [변한]이 [진한의 일부]라는 뜻.

즉 변한은 진한사람들이 건너가서 세운나라.

 

[한국]이라는 말은 원래는 [한반도 남부, 중부 지방]을 뜻하는 말

그 [한국]의 지도자가 [한인(환인)씨]

[한인(하늘, 태양같은 분)]이 다스리는 [한국(하늘, 태양의 땅)]

 

영어 등 거의 모든 유럽어는 아리안어족(인도-유럽어)에 속한다.

약 7천년전 중앙아시아에 나타난 아리안이

약 3천5백년전에 인도와 유럽으로 퍼지면서 말을 전파했고 

이 아리안의 말이 현대인도어와 영어, 불어, 독어 등

현대 거의 모든 유럽어의 뿌리라는 것이 세계학계의 정설. (백과사전 참조)

 

필자는 이 정체불명의 민족 [아리안]이 고대 한민족의 이동이라 본다.

 

[아리안(알이안)]의 말이 변한 영어에도 [한이]라는 말이 있다.

Honey

지금은 흔히 [꿀] [부부나 연인 사이에 부르는 호칭]으로 쓰이는데

이 말은 원래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말. (영어사전 참조)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에서 [한국전통 역사책]을 모두

없애버리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조선임금들은 여러번 전국에 영을 내려서

[한국전통 역사책]을 수거해서 없애버린다.

약소국가의 비애.

 

일제 역시 수많은 [한국전통 역사책]을 수거해서 없애버린다.

그래서 [한국전통 역사책]은 거의 없어졌는데

간신히 전해진다 하는 게 [부도지] [규원사화] [한단고기] 등 몇가지.

그 책들을 믿건 안믿건 간에

최소한 연구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책들에 보면 [환인씨]의 나라가 9천년 이상 전에 이미 있었다고 나오는데

황해평원이 물에 잠긴 것이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이니

그 시대가 맞는다.

 

[원래의 마문명 지역] 

 

처음에 [마문명에서 한반도로 올라온 한문명]은

[한반도 남부, 중부]로 올라왔다고 보는데

바다물이 들이찬 1만5천년전~1만4천년에 올라왔을 것이고

 

다시 황해, 남해물이 빠지고 평원이 나타났고 

 

[1만2천년전 ~ 8천년전]사이에 바다물이 다시 들이차서  

마문명인들은 완전히 한반도로 올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전통 역사책]에 [환인씨의 나라]가

9천년 이상 전부터 있었다고 한 것은 맞는 말로 본다.

 

위 그림은 [1만5천년전~1만4천년전]사이에 한반도로 올라온

마문명인들의 주요 영역을 대강 그린 것.

 

삼국유사에 [환인 환웅 단군의 계승]이 나오는데

여러대(여러분)의 환인, 여러대(여러분)의 환웅, 여러대(여러분)의 단군

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문명을 계승한 고대한국(환국)의 최고지도자의 통칭 [환인씨]

[환인씨]의 뜻을 받고 미개지역을 개화시킨 지도자의 통칭 [환웅씨]

 

수천년에 걸친 [역대 환인씨] 시대가 지나고

최고지도자를 [환웅씨]라 부르는 시대가 온 것으로 볼수도 있다.

 

[환웅씨]라는 존칭에는 이 2가지 의미가 섞여있다고 본다. 

 

불교의 절에 가면 중심 건물을 [대웅전]이라 하는데

이는 원래 [환웅씨(한웅씨)]를 모시는 [한웅전] 이었던 것으로 본다.

순 한국어 [한]은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므로 

한자로 옮겨쓰면 [대(大)]자가 된다.

[대웅전] 즉 [한웅전]에 지금은 석가부처님이 모셔져 있지만

그 이전에는 [환웅(한웅)씨]를 모셨다고 본다. 

 

[환웅씨]의 후손 [단군왕검]

 

[단군왕검]께서는 [제1대 단군]으로 본다.

그 이후로 한국의 임금을 [단군]이라 불렀고

수십대 정도의 [역대 단군]의 계승이 있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환인씨]는 문명전파를 위해서

[환웅씨]를 [삼위태백(三危太伯)]으로 보냈다고 했다.

이는 [삼위와 태백의 사이 지역]이란 뜻인데

 

초기 고대한국은 한반도 남부지방이므로

[삼위태백(三危太伯)]이란 태백산 북쪽

즉 대략 한강 이북을 뜻하는 말로 본다. 

 

[1만5천년전~1만4천년전]에 한반도 남부로 올라온 마문명인들 입장에서는

한강 이북은 당시 미개지역.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참 장구한 일이라 하겠다.

 

문명이 한반도 북부보다 남부에서 먼저 생긴 것을 보면

백두산이 태백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나중의 일로 본다.

 

나중에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이 제2 태백산 즉 백두산의  

서쪽의 만주를 뜻하는 말로 바뀐다.

 

 

아래 사진은 [원 태백산]인 강원도 태백산의 천제단. 

 

강원도 태백산 천제단(天祭壇)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28호

 

 

태백산 천제단 해돋이

 

[단군왕검]께서 태백산에 하늘에 제사드리는 천제단을 지으신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보은

 

천제단에는 [환인씨 환웅씨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하겠다. 

 

[단군왕검]께서는 강화도에도 천제단을 지으셨다고 하는데

참성단 

 

위 그림을 보시라.

강화도 앞바다는 [후기 마문명(1만4천년전~1만2천년전)]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그곳에서 한강을 따라 한반도로 [마문명인]의 이동이 추정되니   

 

( 마문명인들의 제2차 이동 - [1만2천년전~8천년전])

  마문명인들의 제1차 이동 - [1만5천년전~1만4천년전])

 

[단군왕검]께서 강화도에 참성단을 지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참성단]은 " 고려 원종 5년 (1264년)에 왕이 친히 이곳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 라는 기록과
또 고려사에는 참성단을 두고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단으로 전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려 원종 이전에 이미 [참성단]이 설치되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고려때도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당시에도 단군왕검을 국조로 모셨다는 것을 알수있다.
 
광복 이후에 소개된 사서에 따르면 " 단군 기원 51년에
단군왕검께서 춘추로 제사를 올리기 위해 참성단을 쌓았다."고 한다.
[참성단]은 조선 인조 17년(1640년) 강화유수 최석항에 의해
일부 무너진 것이 보수된다.
 
강화도 마니산

 

마니산

 

만이산

 

만이의 산

 

만(마의) 이(사람)의 산

 

마 사람들의 산

 

마...마...마...

                                            

 

한반도 중남부로 올라온 마문명인들

그들의 초기 영역은 대략 [한강에서 제주도까지]로 본다.

 

약 1만년전 당시의 한반도는 지금보다 추웠고

한강 이북은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았다.

[한강~제주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또한 세계최고의 고인돌 밀집지역.

 

이러한 이유로 최초의 한국은 대략 한강 이남으로 본다.

 

차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한민족은 북상을 시작했다고 본다.

 

약 1만년전에 [한강유역 이남]에서 시작된 한국은

차차 대동강 유역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한강이 한수(漢水)로 불렸던 것처럼

대동강도 역시 한수(漢水)로 불리게 된다.

 

초기 [환인씨]는 한강 유역에 도읍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차차 기후변화와 문명전파를 위해서

후대 [환인씨]들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겼던 것으로 본다.

 

처음엔 한강을 한수(漢水)로 부르다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기고는 대동강을 한수(漢水)로 부른다.

 

그리하여 결국 한강과 대동강은 모두 한수(漢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수(漢水)는 다른말로 [아리수]라 불린다.

 

아리수

아리의 물

알이의 물

 

아리안

알이안

알이 사람

 

알이 - 태양(알)같은 사람(이)  

 

아 - 떠오르는 해

하 - 다 떠오른 해

 

아 -> 안, 알

하 -> 한, 할

 

[한인(환인)]의 어원으로 보이는 [한이]라는 존칭이  

다 떠오른 밝은 해 (한) 같은 분(이)

즉 최고지도자를 뜻한다면

[알이]는 떠오르는 해같은 젊은 지도자를 뜻한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멀리 가지는 않는다.

젊은 지도자를 보낸다.

그래서 [알이]들은 세계로 퍼졌고

그들은 후에 [알이안(아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에게 전해진다.

 

그런데...알이안의 다른 이름... 

[환웅씨]

[환웅씨]는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를 원했던 젊은 지도자.

 

오랜 기간 역대 [환인씨]들은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환웅씨]들을 떠나보낸다.

 

그 [환웅씨]들 즉 [알이(아리)]분들의 고향에는

강이 있는데 

그 이름이 

아리수

 

즉 알이수...알이의 물

 

역사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리수는 때로는 한강의 이름이고

때로는 대동강을 뜻한다.

 

그리고

아리랑 고개

알이랑 고개

 

고대 한국어에서 태양은 [아],[하],[라]로 불린다.

[랑]이란 [태양같이 밝은 사람]

 

아리랑은 슬픈 노래다.

왜?

떠나가니까.

 

[알이], [알이랑]이 떠나가니까.

한번 가면 살아 생전 돌아올 기약이 없는 길.

문명을 전파하러,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그 길을 간다.

꽃다운 [알이랑]들이.

 

[홍익인간 정신]은 단군왕검 훨씬 이전

[환인씨]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본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다 원래 있었던 것.

그래서 역사를 보는 것일 터.

 

 

 

[환인씨]가 문명을 전파하러 [환웅씨]를 보냈다는 곳이

삼위태백(三危太伯) 또는 흑수백산(黑水白山)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흑수백산(黑水白山)

- 흑수와 백산의 사이 지역

 

고대한국의 제3수도지가 [집안,환인]지역으로 보이는데

집안 바로 위에 [백산시]가 있다.

즉 그 지역에 [백산(白山)]이라는 산이 있다는 것.

 

[고대한국 제3수도] 옆에 [백산]이라는 산이 있었고

좀 더 멀리에 [태백산(큰백산)]이 있었다는 것.

 

[고대한국 제3수도] - [백산] - [태백산(백두산)]

 

고대한국 최고지도자 환인씨는 백산 너머 미개지역에

환웅씨를 보내서 문명을 전파한다.

그곳에는 [곰을 상징동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상징동물로 하는 부족]이 있었다.

 

동북아에는 수많은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들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가 동북아의 대표적인 맹수이기 때문.

 

서경 등 중국고대책에도 [곰 부족]을 그냥 [곰(熊)]이라 부르고

[호랑이 부족]을 그냥 [호랑이(虎)]라 부른 기록이 숱하게 많다.

 

마치 지금 한국 프로야구단중에 [베어스(곰들)]와 [타이거스(호랑이들)]가 있는 것과 같다.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들이 [人]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럼 人 이란 무엇인가.

 

[고대 갑골문의 人 자]

 

고대 갑골문에 보면 人이란 그냥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절을 갖출줄 아는 문명화된 사람]을 뜻한다.

 

즉 원시사회였던 곰부족이 [환웅씨]에게 감화되어

[예절을 갖출줄 아는 문명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런데 고대 중국에서는 그들의 동북방 즉 한국쪽 방향을 

[인방(人方)]이라 부르는 기록이 많다.

 

즉 원래 人 이란 아무 사람이나 다 얘기했던 것이 아니라

고대 한민족을 얘기 했던 것. 

 

[환웅씨]는 미개했던 주변 부족들을 차차

인간다운 인간 즉 [人]으로 만들어나갔던 것.

 

동방(東方)을 인방(仁方)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仁(어질 인)자는 고대문자에 [人人]

즉 人 자가 2개 붙어있는 것.

 

즉 동방(東方) 즉 고대한국을 [人人]의 땅이라 부른 것.

사람다운 사람 즉 고대 한민족 [人] 이

미개했던 곰부족을 교화하여 [人] 으로 만든 것.

 

그게 바로

 

熊(웅) -> 人(인)

 

이러한 교화를 [仁(어질 인)]이라 한다.

[仁] 은 원래 [人人]

즉 [사람다운 사람]이 다른 사람도 이끌어서

그 사람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

그러한 것을 표현한 말이 [仁(어질 인)] 

즉 [어질다(인격이 있다)] 하는 것은 원래 고대한민족을 뜻하는 말.

 

고대한국은 수천년의 기간동안 [여러 역대 환인씨] [여러 역대 환웅씨]의
대이음이 있었을 것인데
그 세월의 끝머리에 [단군왕검]께서 [삼위태백 (흑수백산)]지역에서 탄생하셨다 본다.

 

 

[삼위태백] 이란 [흑수백산]과 같은 의미.

 

국토연구원의 산맥지도에서 보면 오대산 지역에 [백산]이라 해 놓았다.
 
이 [백산]이란 오대산이나 그 옆의 계방산을 표시해 놓은 것.

 

계방산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남한에서 5번째로 높은 산.
오대산보다 더 높다.
[제1차 흑수백산]은 대강 다음과 같다.

 

 백산과 흑수(흑룡강) 사이지역을 뜻한다.

즉 한강 이북에서 만주까지의 지역.
 
후에 고대한국 수도지가 대동강으로 옮겨지고 
[제2차 흑수백산] 개념이 생긴다.

 

함흥 옆의 백산은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

 

원래 남한에 있던 소백산, 백산, 태백산이

북한지역에도 생긴다.
그리고 문명은 계속 북쪽으로 전파된다.
 
나중에 압록강에 고대한국 제3수도지가 생기고
압록강변에도 [백산]이 생긴다.
지금도 그곳에는 [백산시]가 있다.

 

[길림성 지도 남부]

 
[집안시] 위에 [백산시]가 있다.
즉 저 지역에 [백산]이 있다는 얘기.
 
[집안시]는 고대한국 제3수도지로 추정되는 곳.
고대 집안시와 백산의 관계는
지금의 서울과 북한산 정도 되는 관계.

 

( 이를 보면 고인돌 주요 분포지가 왜 저렇게

북으로 툭 튀어 나왔는지 의문이 풀린다 하겠다.
문명의 전파.)
 
이렇게 고대한국 수도지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북한과 만주에도 [백산]이 생기게 된다.
물론 한반도와 만주에 [백산]이라 불리는 산들은 많다.
그 중 대표적 [백산]들로 살펴본 것.
 
[초대 환인씨]이래로 오랜세월이 흐르면서 [원조 한문명 지역(한반도)]과
[새로운 한문명 지역(만주)]이 서로 다른 나라로 변화하는 기미가 보이자 
단군왕검께서 한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해서
대동강에 고조선을 세우셨다고 본다.

 

고조선
古朝鮮
[옛 조선]이라 하여 붙은 이름.
원래 이름은 당연히 [조선(朝鮮)]
( 고려 이후에 건국된 [조선]은 [고조선의 부활]을 뜻한다.)
 
조선(朝鮮)의 [선(鮮)]자는 지금 [고울 선, 빛날 선, 깨끗할 선]등
아주 좋은 의미로 쓰인다.
고조선이 그만큼 빛나는 나라였다는 증거의 하나라 하겠다.
 
[선(鮮)]자는 [물고기 + 양]

 
魚 + 羊
 
위 그림처럼 물고기(魚)는 한반도를 뜻하고
양(羊)은 만주를 뜻한다고 본다. 
 
즉 단군왕검께서는 [원조 한문명 지역] 즉 한반도와
[새로운 한문명 지역] 즉 만주를 다시 확실한 하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대동강에 수도를 세우고 조선(朝鮮)을 건국하신 것.
대동강(大同江)의 이름이 대동(大同)인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대동(大同) - 크게 하나됨. 
 
단군왕검께서는 [고대한국 제2수도지]인 대동강에 도읍하고
[고대한국 제1수도지]인 한강 어귀의 강화도에 [참성단]을 만든다.
[참성단]은 하늘에 성인에 제사드리는 제단인데
강화도는 [마문명]에서 한강을 타고 한반도로 올라온 길목.

 

<내용: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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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고인돌문화는

[ 마문명 -> 한반도 남부 -> 한반도 북부 -> 만주]

로 전파된다.

 

[지구 기온 변화표]

 

추웠던 기후가 점점 더워지면서

현재의 해안선은 8천년전에 완성된다. (지금과 8천년전의 기온이 대강 같다.)

그런데 그후 기후가 계속 더워져서

6천년전 ~ 3천년전에 기온이 최고로 높아지고

그 후 차차 식어서 지금에 이른다.

 

기온변화와 문명전파 등의 이유로 고대한국의 수도는
[한반도 남부 -> 한강 -> 대동강 -> 압록강]으로 이동했다고 본다.

 

더워지는 기후에 따라서 고대한국의 중심지도 북상하게 된다.

대강 말하자면 8천년전에 고대한국의 중심지가 한반도 남부, 중부였다면

지금보다 더웠던 6천년전에는 고대한국의 중심지가 한반도 북부, 만주였다는 것.

 

만주서부 홍산문명이 6천년 전에 시작한 것도

그때쯤 되면 북한과 만주가 지금보다 더 따뜻했기 때문.

본래 문명은 적당한 기후가 되어야 활발히 발전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더욱 그렇다.

 

( 홍산문명은 고대한국 중심지는 아니다.

압록강 유역에서 홍산문명보다 훨씬 더 많은 피라미드 등

고대 유적 유물이 훨신 더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도.

 

압록강 유역에는 홍산문명보다 말하자면 수백배는 더 많은 유적유물이 있다.

대부분 고구려 거로 '둔갑'되어 있거나 비공개로 창고에 감추어 놨다.

 

중국당국이 홍산문명을 부각시킨 이유는 그 지역(만주서부)이

압록강보다 더 중국에 가깝기 때문.

중국당국은 동북꽁정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압록강 유역의 유적 유물들을 급격히 부각시킬 것이다.

특히 집안시와 환인시 지역의 것들을.)

 

위 그림은 고대한국의 주요영역을 시대별로 대강 그린 것.

물론 8천년전 이전에도 문명은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남한에서 시작한 고대한국문명은 또 다른 발전을 보인다.

그래서 7천년에 시작된 산동반도 북신문화나

6천5백년전에 시작된 대문구문화

6천년전에 시작된 홍산문화 등은

8천년전 이후에 다시 시작된 (황해 마문명과는 또 다른)

고대한국문명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산동반도에서 발굴된 고조선족의 팽이형 토기와 아사달 모양(네모 안).

해뜨는 모양(아침 단())을 나타내는 그림 아래

산(당시에는 땅, 산이 ‘달’이라고 불렸음)이 그려져 있다.

중국 측은 기원전 4300년∼기원전 2200년의 유물로 추정한다.

- 사진 제공 신용하 교수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5260044

 

위 토기는 산동반도 대문구문화의 토기.

아사달( 해뜨는 땅, 해뜨는 산) 무늬가 그려져있다.

산동반도가 오래전부터 고대한국의 영향을 받았음은

고인돌들이 발견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후대에 공자도 산동반도 지역 출신이고

[동방불패]라는 말은 중국 동해안 특히 산동반도 쪽 사람들이 뛰어나다는 말.

 

북신문화, 대문구문화, 홍산문화는 당시 중국내륙 문화와 많이 다르다.

당시 한반도, 만주의 문화와 비슷하다. 

돌무덤, 빗살무늬 토기 등

또 하나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

황해마문명의 영향 등으로 대체로 세계는 모계사회였는데

고대한국에서는 부계사회로 바뀐다.

그래서 홍산문명에서도 원주민은 모계사회(여성지도자)이고

고대한국에서 간 환웅씨는 남성지도자.

 

황해마문명의 전파로 세계는 신석기혁명이 일어나고

(대략 1만5천년전~ 8천년전)

그 바탕위에 세계에 다시 고대한국(환인씨 나라)문명이 전해지는 것.

(8천년전 이후 - 이들을 통칭 [아리안(알이안)]이라 한다.)  

 

산동반도 북신문화는 7천년전에 이미 시작되는데

만주서부 홍산문화는 천년 늦은 6천년 전에 시작되는 것은

그 사이 지구기온이 올라가서 6천년 전에는 만주도 많이 따뜻해진것.

( 6천년전 당시 만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지구기온은 6천년전~3천년전 가장 따뜻했다.

그래서 이 때에 고대한국문명은 시베리아 등 북부로도 많이 전해졌다.

당시 시베리아는 지금보다 많이 따뜻했으므로.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 토기 (한국)

 

(지금의 해안선은 8천년전에 이루어진다.

즉 빙하기가 그 때 완전히 끝난 것.)

 

~ 1만5천년전 - 대체로 황해에 물이 빠진 상태.    - 황해는 평원

 

1만5천년전 ~ 1만4천년전 - 물이 들이찬다.         - 황해는 바다 + 평원 

 

1만4천년전 ~ 1만2천년전 - 물이 빠진다.            - 황해는 바다 + 평원 

 

1만2천년전 ~ 8천년전      - 물이 다시 들이찬다. 

 

빙하기 때는 지금의 서해 , 남해의 얕은 바다가 평야지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보다 날씨가 추웠으므로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은 사람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고

위에 녹색 지역이 사람살기 좋았던 곳.

 

 

[지구 기온 변화표]

 

위 표를 보면 [기원전 1만3천년전]

즉 1만5천년 전부터 지구기온이 갑자기 올라간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물도 급격히 높아진다.

그리하여 남부 황해평원(현 충청도, 전라도 앞바다)에서 살던 사람들 중

일부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세계로.

개를 데리고. 

 

세계학자들에 의하면 개는 동북아에서 맨 먼저 길들여졌고

1만5천년 전부터 세계로 퍼졌다.

개는 혼자 이동하지 않는다.

개는 사람을 따라서 이동한다.

사람을 따라서.

 

 

 

1만5천년 전부터 바다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는데

[원조 마야인들(마문명인들)] 중 일부가 세계로 퍼졌다고 본다.

 

일부는 남한지역으로

일부는 북한과 만주로

일부는 북미로 (초기 인디언)

일부는 그리스 부근 바다 (에게해, 아드리아해 - 당시는 평원)로

일부는 태평양의 많은 섬들을 거쳐서 중남미(마야문명)로

 

등등등 세계곳곳으로 퍼졌다고 본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과 [초고대문명]이라는 것.

 

서양학자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 처음 북미로 온 것이 1만4천년전 이라 본다.

그들은 최초의 인디언이 시베리아에서 이동해 왔다고 하는데

그들은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시베리아를 거쳐서 북미로 갔다고 본다.

1만5천년전 이전에는 최소한 수만년간 대체로 지구가 지금보다 훨씬 추웠고

시베리아도 지금보다도 훨씬 추웠다. 사람 살기가 어려웠다.

그러므로 그들은 원래 시베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마문명에서 이동해간 사람들로 본다.

 

 

세계고고학자들의 말

- 약1만여년전에 갑자기 세계 곳곳에서 신석기를 쓰기 시작한다.(신석기 혁명)

 

즉 [1만5천년전~1만4천년전] 사이에 바다물이 급격히 들이차고

원조 마야인들(마문명인들) 중 일부가 세계로 퍼져서 

일어난 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이고

당시에는 빙하가 많아서 바다물이 적었으므로

지금보다 훨씬 더 많고 컸던 태평양의 섬들에 [마문명]이 전파되고

그리하여 후에 서양학자에 의해서 잃어버린 무대륙이라 불리게 되고

그 문명은 중남미까지도 전파되고 - 마야문명

 

그리스 지역으로 간 사람들은 에게평원, 아드리아 평원 등에 정착하고

나아가 대서양의 많은 섬들로도 진출하여

플라톤도 말한 아틀란티스라 불리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1만5천년전에 퍼진 그 문명들은 많이는 계승되지 못하고

[1만2천년전~8천년전] 사이에 지구바다가 높아지면서

대부분 물속에 가라앉아버린다.

 

문명은 보통 [바다에서 너무 멀지않은 낮은 평야지대]에서 발전하는데

(그런 곳이 사람 살기 좋으므로)

[1만2천년전~8천년전] 사이에 대부분 바다속에 가라앉아 버린것.

 

 

 

위 그림들은 한국에서 고인돌,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대강 보여주고 있다.

중국대륙에도 한국에서 전해진 천손신화, 난생신화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후대에 말하자면 [중국의 자존심]에 의하여 사라진 것으로 본다.

 

한국은 [고인돌의 원조국]이고 천손신화와 난생신화가 모두 다 있는 곳.

 

난생신화 - 조상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

천손신화 - 하늘의 자손이라는 신화.

 

난생신화는 쌀농사와 함께 1만년 이상 전부터 동남아, 인도 등으로 퍼진 것.

 

1926년 영국 육군의 예비역 대령인 제임스 처치워드가 쓴 책

『잃어버린 무 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에 보면

인도 고대 사원에는 1만년 이상 된 점토판 책들이 있고 

동방의 어머니 나라 [무]에서 인도로 문명이 전파되어 왔다고 되어 있다.

처치워드는 [어머니 나라 - 무]가 대륙이었다고 보고 있으나

필자는 일단 [무대륙] 이라는 것이 [황해평원 마문명]과 

태평양의 많은 섬들로 퍼진 마문명에 대한 기록으로 본다.

1만년 이상 전에는 태평양의 섬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고 컸다.

 

인도는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들어오기 전에 드라비다어라는 것을 썼다.  

드라비다어는 지금도 많은 인도인들이 쓰고 있는데

한국어와 근본적으로 너무 비슷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그에 대한 글들도 가면 갈수록 많이 나오고 있다.

 

한가지만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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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 닝가룸 서울 완돔          - 인도 드라비다어 타밀방언

나는 니(너)랑 서울 왔다        -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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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도 드라비다어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어가 되지 않았나 하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을 생각하지 않은 데서 나온 착각.

사실은 1만년 이상 전에 일부 고대한국인들이 인도로 이동하고

그들의 말이 지금의 드라비다어의 뿌리로 본다. 

 

그리고 전편에서 밝혔듯이 실제로 한국에서는 세계최초의 쌀농사 유물이 발견되었고 

(충북 청원 - 1만5천년전 것.)

이 재배볍씨 중에서는 한국,일본에서 많이 기르는 쌀인 [자포니카]쌀과 함께

현재 동남아, 인도에서 많이 기르는 [인디카] 쌀도 발견되어서

자포니카와 인디카 모두 한국이 원산지 임을 밝혀주고 있다.

( 전세계 쌀은 크게 자포니카와 인디카로 나뉜다.)

 

즉 세계 모든 쌀의 원산지가 한국.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개가 1만5천년전부터 사람을 따라서 이동하여

전세계 개들의 조상이 되었듯이

고대한국에서 기르던 쌀도 전세계 쌀들의 조상이 된 것.

 

 

 

인도에는 크게 2가지 언어가 있다.

1. 드라비다어

2. 범어 (산스크리트어)

 

둘다 고대한국에서 전해진 언어.

단지 전해진 시기가 다르다.

 

드라비다어가 더 먼저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었는데 (1만년 이상 전부터)

드라비다어는 인도 남부에서 먼저 쓰기 시작한다.

(인도남부 -> 인도 북부로 전파)

 

그런데 그보다 수천년 후에 [아리안]이 인도 북부로 들어오게 된다.

 

아리안 : 고대한국 -> 중앙아시아 -> 인도

 

그들의 말인 범어가 인도북부에서 부터 퍼지기 시작한다.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그림]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당시 제1계급 [브라만]

동북아인의 모습.

[브라만]은 인도로 들어온 [아리안]을 말하는 것이고

7천년 전에 이미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다는 [아리안]은

고대 한국인들의 이동으로 본다. (아리안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다룬다.) 

고대 인도에서는 민족에 따라서 계급이 나뉘었던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인도에는 크게 2번의 문명전파가 있다. 

 

1) 1만년 이상전의 황해평원 마문명의 전파( 쌀농사, 고인돌, 난생신화)

-> 드라비다어

 

2) 8천년전 이후의 [고대한국 -> 중국북부 평원-> 중앙아시아 -> 인도]의 문명의 전파. 

-> 범어 (산스크리트어)

 

1만5천년전부터 황해평원 마문명인들이 세계로 퍼진다.

그래서 개도 1만5천년전부터 퍼진 것으로 유전자 검사상 나타난다. 

그때 퍼진 사람들은 [무]인 , [마]인, [마야]인 등으로 불린다.

 

마야 - 마이아 - 마 사람(이)의 땅(아)

 

이 사람들이 세계로 퍼진 것은 대략 1만년 이상 전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지구가 추웠던 때.

( 빙하기는 8천년전에 끝난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로 지금의 아열대, 열대 지방

즉 동남아, 인도, 태평양의 많은 섬들로 퍼진 것 같다.

당시에는 그 곳들이 지금보다 덜 더웠으므로.

중남미의 마야문명도 그 사람들(혹은 그 후손들)의 문명으로 본다.

중남미 마야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 [서쪽(태평양쪽) 먼나라]에서 왔다고

기록해 놓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

당시 세계로 퍼진 [황해평원 마문명인]들은

고인돌, 쌀농사, 난생신화등을 세계로 퍼뜨린 것으로 본다.

물론 개를 데리고 갔을 것이다. 

 

후에 

 

대략 8천년전부터 다시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세계로 퍼진다.

이들을 [아리안]이라 한다.

세계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아리안]은 이미 7천년전에 중앙아시아에 나타났고

인도, 유럽 등으로 퍼지면서 문명을 전파한다.

인도 범어와 거의 대부분의 유럽어가 이 [아리안]의 말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

즉 [아리안]의 언어가 그 언어들의 뿌리라는 것이

세계학자들간의 정설.

그래서 백과사전에도 [인도-유럽어]를 [아리안 어족]이라 부른다. 

 

대략 [1만수천년전부터 수천년전까지] 황해평원과 한반도에서

여러차례 세계로 사람들이 퍼져나가고

예를들어 8천년전부터 퍼진 [아리안(고대한국인)]의 말이

인도 범어(산스크리트어), 영어, 불어, 독어,등

수많은 나라의 말의 뿌리가 된다.

사실은 세계의 '말다운 말'은 모두 고대한국어가 전해져서 생긴 것.

언어가 원래 하나였다는 바벨탑 전설이 괜한 것이 아닌것.

 

수메르인들 (어디선가 나타나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 역시

아리안의 일종으로 본다.

그들은 6천~7천 년전에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머리카락이 검은 사람들]

 

[5천년전에 만들어진 수메르 왕조 지도자 '구데아(gudea)'의 인물상]

 

수메르의 말이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밝혀낸 바 있다. 

 

고대 이집트에도 고대한국인들의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집트의 창조여신 하토르(Hathor)의 부조상]

 

얼굴이 넓적하고 쌍꺼풀이 없는 동북아시아적인 얼굴.

 

[하토르 여신의 조각상]

 

역시 동북아시아적인 얼굴.

이집트의 여왕 하트셉수스의 묘지에 있다.

 

[아주 고대의 이집트 왕족들]

- 이집트 창건의 전설적 인물인 [Tiu(티우)] 관련 왕족들.

 

[스핑크스]

 

스핑크스는 코가 떨어져 나갔는데

(후대에 어느 군대의 대포에 맞았다고 한다.)

얼굴이 사람(여성)

그런데 광대뼈가 튀어나온 동북아 여성의 얼굴!

 

 

고대한국인들은 개를 데리고 가서 그 개들이 세계 개들의 조상이 됐으며

고대한국인들의 문명은 예를 들어 [신석기 혁명], [농사], [토기] 등

세계 문명의 뿌리가 된다.

 

세계 고고학 발전이 거듭될수록 이같은 사실이 증명 되고 있으며  

전공자가 아니시더라도 이 시리즈를 끝까지 보시면 대강은 감이 잡히실 것이다.

 

인류문명의 시원과 전개를 총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어찌 쉽기만 하겠는가.

하지만 이미 밝혀진 것만 하더라도 많은 것이 드러나 있다 하겠다.

찬찬히 하나씩 살펴보자.

 

일단 한반도 주위의 상황부터 보자.

 

1만5천년전부터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간다.

1만4천년 전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된다.

 

마문명의 중심지는 경기도 앞바다로 이동한다.

기온이 올라갔으므로 예전에는 비교적 추웠던 경기도 앞바다 쪽이

좀 더 따뜻해졌다. 예전의 전라도, 충청도 앞바다 평원처럼. 

 

붉은점은 강화도

단군왕검께서 왜 강화도에다가 참성단을 만드셨는지 알 수 있다. 

 

1만2천년전~8천년전까지 다시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들이차고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은 현 남한지역으로 대대적으로 올라온다.

 

전남 화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

즉 8천년전 고인돌이 있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강원도 양양군에서 발견된 8천년전 빗살무늬토기 역시 마찬가지.

 

빗살무늬토기(한국)

 

빗살무늬 토기 (한국)

 

물론 한반도에도 8천년 이상에도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한반도가 비교적 높은 지대였고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아서

(당시에는 사람들이 대부분 황해, 남해 평원에서 살아서)

8천년 이상 전에는 한반도에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8천년 이상 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하겠다.

한반도의 황해, 남해속에는 8천년 이상 전의 수많은

고인돌과 빗살무늬토기가 묻혀있을 것이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문화로 본다.

 

왜 한반도에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지

왜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있는지

이러한 상황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하겠다.

 

 

 

[고인돌(전남 화순)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눈에 보기에도 참 오래된 고인돌들이다.

현재 확인된 것이 8천년전 것인데

그보다 더 오래된 것들도 있다고 본다.

 

저 돌의 아래에 땅을 파고 석관을 만들고 사람을 매장했다.

 

사람을 매장하지 않은 고인돌들도 있는데

이는 제단(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인 것으로 본다.

 

큰 건 3백톤 짜리도 있다.

저렇게 큰 돌을 사람이 깍아서 만들고

그것을 옮겨서 세웠다는 것.

 

이상 고인돌 (전남 화순)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ongjukmae/12153933?nil_profile=blog

 

 

강화도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진 출처 - http://cafe133.daum.net/_c21_/home?grpid=dfsj

 

경상북도 창녕 고인돌

전북 고창 고인돌

 

강원도 양구 고인돌 - 북방식 고인돌

(장승(황헌만 사진, 이종철 외 3인 지음, 열화당, 1993)에서 인용)

 

 

남방식 고인돌의 원조는 대강 남한 지역이고

북방식 고인돌의 원조는 대강 북한 지역.

 

[고인돌 집중지역]

 

 

고대황해평원 마문명에서 남한땅에 전해진 고인돌문화는

차차 황해도 등으로 북상한다.

 

대동강에서 제주도까지의 영역은

세계고인돌의 절반이 몰려있는 대단히 특수한 곳.

 

[한반도 남부]의 고인돌문화는 차차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된다

 

[고인돌 분포도]

 

고인돌 문화는 차차 퍼져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되고

산동반도와 일본 규슈 지방으로도 전파된다.

 

물론 산동반도의 고인돌도 한국보다 훨씬 늦은 것들이고

일본의 고인돌은 한국보다 5천년 이상 늦다.

 

일본의 고인돌은 약 2천4백년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준 것인데

그들은 쌀농사와 금속문명도 같이 전파해준다.

그전까지 일본은 원시석기시대였고

기원전 4백년에 한국인들에 의해서 문명화된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야요이(彌生) 문명]이라 부른다.

이때가 되서야 일본은 비로소 원시석기시대에서 벗어난다.

한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늦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지식인들의 심각한 [역사 컴플렉스]가 되어

일제 때 극심하게 한국고대사를 왜곡, 날조하게 된다.

 

 

검룡소 [] -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에 있는 소().

남한강 발원지.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검룡소[]의 검[儉]자는 [단군왕검 儉]의 검[儉]자. 

게다가 주변 가까운 곳에 [단군왕검]께서 만드셨다는 [태백산 천제단]이 있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강줄기를 거슬러 왔다]는 얘기는

고대 황해대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으로 볼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검룡[]인가.

검(儉)은 [僉人] 즉 [僉의 사람]이라는 뜻.

 

[僉자 분석]


 

口 口

人 人

 

 

맨위에 人 모양은 신전의 지붕을 뜻하고

고대에 입 구(口)는 그냥 입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말하는 성인의 입]을 뜻했다.

그래서 兄(형) 자는 원래는 형,동생할때 형이 아니라 [훌륭한 스승(성인)]을 뜻했다.

聖(성스러울 성)자는 성인이 하늘의 뜻을 듣고(耳)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口)

그리하여 하늘과 사람과 땅 (三)을 통하게 한다(王)는 뜻.

 

 

口 口

人 人

 

부분은

[성인(聖人)들의 가르침(口)을 사람(人)들이 잘 알아듣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僉]자는  

[신전에서 성인들이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하는 모습]이고 

원래는 [황해 평원 마문명]의 문화를 뜻하는 말이라 하겠다.

 

고대한국은 마문명에서 올라온 분들이 이룩한 문명이므로

후에 [단군왕검 儉]께서도 [儉] 즉 [僉의 사람(人)]이라 불리우고

선조 즉 [마문명인들(초기 고대한국인들)]이 한반도로 올라온

길목의 상징적 장소인 강화도에 참성단을 건립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태백산에도 천제단을 건립하셨다 하는 것은 

그 곳이 한강(남한강)의 발원지이기 때문.

 

고대부터 한강이 얼마나 중요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고

한반도 북부보다 한반도 남부에서 먼저 문명이 꽃피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라 하겠다.

 

마야 - 마이아

마이(마사람)의 땅(아)

 

마이(매)란 말은 지금도 어매(어마이), 아지매(아지마이) 등의 말 속에 남아있다.

 

이렇게 주로 한반도 남부, 중부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황해평원을 [마]라 불렀듯이 한반도 중남부를 [마]라 불렀고

이 지역은 나중에 [마한]이라 불리게 된다.

 

마한은 5세기(삼국시대 후반부)까지 존재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고대에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은 압록강 , 황해대강을 지나서
한라산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백두대간
결국 한라산까지 이어진다.
 
[물]로도
[흙]으로도
[백두와 한라]는 이어져 있다.
 
그리고 희한한것이 백두산과 한라산은 둘 다 화산폭발을 했고
둘 다 정상에 호수가 있다. (천지, 백록담)
 
그리고 그 중간에 세계 최고의 절경이라는
[금강산]이 있다.
 
그 넓다는 중국땅에도 감히 [금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은 없다.
옛날 중국인들은 흔히 " 한국의 금강산 한번 보고 죽는게 소원이다." 했고
중국 황제들도 뻑하면 한국의 금강산 그림을 가져다 보고자 했다.
그래서 또한 옛날 한국화가들도 금강산 그림을 많이 그렸고 
지금 남아있는 옛 금강산 그림들도 그래서 그려진 것들 많다.
 
진시황도 불로초를 한국땅에서 찾고자 했다.

 

백두산 주위부터 한라산 주위까지 고대부터 대대로 한민족의 영토였다.
그래서 한민족은 무의식적으로라도 [백두에서 한라까지]를 외치는 것 같다.
  

저 [황해평야 대강]을 고대한국인들은 [밀이내(미리내)]라 불렀을 것이다.

[밀이의 강]이라는 것.

[밀이]는 [마 사람(이)]이라는 뜻이고

지금도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칭할때 [무리(물이)]라는 말을 쓴다.

 

당시 사람들은 황해평원을 [ㅁ.] 라 불렀을 것이다.

 

 

[ㅁ.]는 [ㅁ.ㄴ] , [ㅁ.ㄹ]로도 변화 발전한다.

 

( ㄴ 과 ㄹ 은 현대 한국어에서도 ~한, ~할 등에 쓰여서

단어를 [근본은 같게] [사용은 다르게] 변화시킨다.) 

 

 

[말(언어), 멀이(머리), 물이(무리)] 

 

말(언어)도 원래 [마]에서 쓰던 것이고

멀이(마 사람)이 머리 즉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지식과 지혜가 있어야 하므로

멀이(머리)라는 말은 인간의 두뇌를 뜻하는 말로 변화한다. 

 

나중에 [미리내(밀이내)]는 [은하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원래는

땅에는 땅의 미리내 - 대강(大江)

하늘에는 하늘의 미리내 - 은하수

 

둘 다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 강.   

 

고대한국어로 용(龍)을 [미르(밀으)]라 한다.

 

[미르 - 밀으 : 용]와 [미리내 - 밀이내 : 밀이의 강(내)]

 

한국어로 [사람들]을  [물이(무리)]라 한다.

 

[물이(무리)]와 [밀이(미리)]는 같은 말로 본다. 

 

 

황해대강은 대표적 [물]이었고

 곡식 [밀]도 황해,남해 평원에서 처음 기른 것으로 본다.

쌀농사가 한국이 원조인 것이 밝혀진 것처럼

밀농사도 한국이 원조인 것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 본다

천상열차분야지도(圖) - 국보 제228호

 

조선 태조 4년(1395)에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천문도 각석.

한국 하늘의 별들을 돌에 새긴 것. 

 

위의 둥그런 [노란 강]이 바로 미리내(밀이내 - 은하수)

그런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좌우가 [서동(西東)]이 아닌 [동서(東西)]로 되어있다.

 

                      북

                 동      서

                      남

 

으로 되어있는 것.

 

위 그림처럼

 

                               북 현무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

이것을 동과 서를 바로잡으면

은하수의 모양은 다음과 같이 반대방향이 된다.

 

은하수는 대강 위 그림처럼 왼쪽(서쪽)으로 불룩한모양. 

서울을 지나는 한강(漢江)이 왜 은하수 한(漢)자를 썼는지 알수 있다. 

[한강 미리내(은하수)]를 보시라.

 

위 그림은 서울 한강이 대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가는 모습.

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모습.

 

( 북한강은 금강산 부근에서 시작하고

  남한강은 태백산 부근에서 시작한다.

 금강산과 태백산 ! )

 

은하수를 한자로 [천한(天漢)] 즉 [하늘의 한(漢)]이라 하듯이

(백과사전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0045900)

 

[한강 - 황해 대강]은 그냥 [한(漢)]이고

은하수는 [천한(天漢)]인 것.

 

[한강(漢江)]이 왜 [한강(韓江)]으로 안불리고

[한강(漢江)]으로 불려 왔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고대 기록의 한강 즉 한수(漢水)는 3군데.

한강, 대동강, 압록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부른 기록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 그림을 보면 쉽게 아실 수 있다.

 

[대동강 미리내]

 

[압록강 미리내]

 

고대에 나오는 한수(漢水)라는 기록은 한강, 대동강, 압록강 중 하나다.

3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불렀다.

 

중국의 한수(漢水)라는데는 양자강 지류에 불과한 일종의 [모방]

이는 [원조인 한국 김치]와 일본 기무치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漢)]자가 가리키는 [종족이름]은 원래는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황해평야 대강] 지역 특히 그 동부에 살았던 민족이 한민족.  

한민족의 [한] 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한자가  

桓(한), 韓(한) 뿐만 아니라

漢(한)도 있었던 것.

 

그래서 서울에도 [한강(漢江)]이 흐른다.

서울 한강이 [한강(韓江)]이 아니고 [한강(漢江)]인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

즉 고대 한민족은 (서울) 한강을 (황해대평원) 한강으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강으로 보았던 것. 

 

원조 漢(한)민족은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중국이 스스로를 漢(한)족이라 하는 건 일종의 '짝퉁'인 면이 많다.

강북 

                                      ㅣ            ---------------------------------------

                                      ㅣ               <- <- <-   (서울) 한강(漢江)

                                      ㅣ           ㅣ--------------------------------------

                                      ㅣ           ㅣ               강남

                                      ㅣ           ㅣ

                                      ㅣ           ㅣ              경기도  

                                      ㅣ           ㅣ

                                      ㅣ 한강    ㅣ

                                      ㅣ (漢江)  ㅣ             충청도

                                      ㅣ            ㅣ

                                      ㅣ = 황해  ㅣ

                                      ㅣ  대강   ㅣ              전라도

                                      ㅣ            ㅣ

 

 

원래 [황해평야 대강]을 가리키는 글자인 [漢(한)]자는

 

[夫 + 口 + 풀(草)] 의 물(水) 라는 말.

夫(지아비 부)자는 원래 [하늘(天)에 관통한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고

口(입구)자는 원래는 [훌륭한 사람(성인)이 진리를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대강]을 가리키는 [漢(한)]자는

[풀이 많이 있는 (평야지대인 황해대평원)에서 성인(聖人)이 진리를 말하는

그 곳의 물(水 : 강)]

을 뜻하는 말.

 

나중에 먼 훗날 중국 한고조가 나라이름을 [한(漢)]이라 지은 것은

이러한 것을 흉내낸 일종의 [짝퉁]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한족(漢族)]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조 한족(漢族)]은 [황해대평원 대강 즉 한강(漢江)]의 동쪽에 살고 있던 민족.

그 민족은 스스로를 태양민족, 하늘민족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그 [한]을 한자로 쓴 것이 [桓(한)]이고 [韓(한)]이고 [한(漢)]

 

황해대강(大江)의 이름이 [한(漢)]이었다는 것은

한라산 []의 위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편에 나왔던 호주 시드니대학 보고서의 그림.

 

위 그림에서 보이듯이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하고 있다.

한라산[]의 한자 뜻은

한[]을 끌어당기는[拏: 당길 라] 산이라는 뜻.

 

절묘하지 않은가.

실제로 한라산[]은 한[] 즉 황해대강을 끌어당기고 있다!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해서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라산은 한라산[]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라산 []이 한라산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사람들이 다 잊어버렸던 황해대강의 존재를 

한라산은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다.

 

1만 2천년전 낙동강 하류 김해평야 삼각주 기름진 들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지금의 부산 앞바다가 당시에는 평야지대.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이 한국 제2의 도시인 것처럼.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부산의 어느 산 이름이 부산이었다고 본다.

 

고대의 낙동강 삼각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위치는 지금의 부산, 마산 앞바다.

 

고대 [낙동강 삼각주] 사람들은 지금 마산의 어느 산을

[마산] 즉 [어머니산]이라 부르고

지금 부산의 어느 산을 [부산] 즉 [아버지산]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현재 낙동강 삼각주]

 

삼각주는 농사짓기도 좋고 바다와도 가까와서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지금의 낙동강 하류 바다속에도 많은 고대 유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낙동강 삼각주 마문명]은 [영남문화권]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본다.

습관처럼 [마...그래서...마...그런데...마...]하는 [마...문화권]

 

[영남 문화권]

 

위 [영남 문화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년전 배가 발견된 곳

 

저 곳에서 발견된 배는 발견 위치를 보아도

시골에서 쓰던 작고 단순한 것에 불과.

당시 진짜 큰배들은 남해 바다속에 묻혀있을 것이다.

 

남한의 서해 남해는 세계최고의 고대유물 보고.

섬들이 많다고 하여 다도해라 부르는데

그 섬들이 고대에는 산들.

 

[울산 반구대 암각화]

 

위 반구대 암각화는 8천년전 것.

그런데 저 그림에는 배타고 멀리 나가야만 볼수 있는 큰 고래들 그림이

자세히 그려져 있고

실제로 배타고 나가서 고래잡이하는 그림도 있다.

고대 한국인들은 8천년전에 이미 상당히 멀리 배타고 나가서

고래를 잡았던 것.

작은 통나무 배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

그 때 이미 상당한 수준의 배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내용출처: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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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한국문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에는 '무시무시한' 연대의 세계 최초 유물들이 이미 발견되었다.

 

그 중 몇가지 보자면

 

1. 쌀농사 세계 최초 - 1만 5천년전        (충북 청원군 출토 - 1998년)

2. 신석기 세계 최초 - 2만년전              (전남 장흥군 출토 - 2004년)

3. 토기 세계 최초급 - 1만 수천년전       (제주도 고산리 출토)

 

전남 장흥군의 2만년전 신석기 사진

 

모두 [기존의 세계 최초라는 것들] 보다 최소한 수천년 빠른 것들.

그것도 모두 남한에서 발견된 것들.

세계 고고학계가 알게 모르게 경악하는 일.

 

기존에는 신석기문명이 1만년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종의 [상식]이었는데

(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석기 혁명])

그보다 무려 1만년 빠른 신석기 문명이 발견됨으로 해서

세계 고대사 학계가 뒤집어진 것.

 

(일본에서도 [빠른 신석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건너간 것.

일본은 약 2천4백년전 한반도 사람들이 건너가서

쌀농사,금속문명을 가르쳐 주기 전까지는 계속 원시석기시대였다.

그러므로 일본의 고대문명은 한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늦다.

그래서 일본 지식층은 [한국에 대한 극도의 역사 컴플렉스]를 많이들 갖고 있다.

그래서 일제 때 한국고대사를 무지하게 왜곡했다.

 

인류 근본문명을 찾기 위해서

일단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1만년전 피라미드부터 보자.

오끼나와는 일본과 대만 중간 정도 지역에 있는 섬들.

일본이 오키나와를 합병한 것은 19세기의 일.

그전에 오키나와는 독립국으로서 조선에 조공도 계속 하고 그랬다.

원래 오키나와는 일본보다는 한국에 속하기를 바랬다.

(조선왕조실록 참조)

 

위 그림의 [류쿠열도] 라는 데가 바로 오키나와

 

바다속에 잠겨 있는 오키나와 피라미드

- 수심 약 20~25m 지점에 위치

 

 

 

 

[오키나와 피라미드 전체 그림]

 

위 사진의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1만년 이상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

즉 땅위에 피라미드를 만들었는데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서

바다가 높아지면서 지금은 바다 속에 있게 된 것.

 

(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외국의 다큐멘타리에서 이미 많이 다루어졌던 것.

위의 사진들도 외국 다큐멘타리의 캡처 사진. )

 

저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당시 일본도 중국도 석기시대였다.

그럼 도대체 저 [오키나와 피라미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원조 한문명] 즉 [고대 황해대평원 문명] 사람들이 건너가서 만들었다는 것. 

 

위 그림은 2004년 호주 시드니대학 고고학센터 연구보고서에 나오는 그림.
( 동해를 재팬씨라 써논 것만 필자가 동해로 고침)

 

황해(서해)는 세계적으로 얕은 바다로 유명한 곳.
빙하기 때는 북극 남극 등에 얼음(빙하)이 많으므로
세계 바다물이 얕아진다. 
 
위 그림은 대강 2만~1만2천년전 고대 한반도 주위를 대강 그린 것.
그런데 당시에는 현 서해(황해)지역이 바다가 아니라 육지  
(물이 들어찬 현재의 해안선은 약 8천년전에 완전히 이루어진 것.)
 
즉 지금의 서해(황해)지역에는 말하자면 [고대 황해대평원]이라는
거대한 평야가 있었다.
그리고 그 평야의 가운데를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황하]+ [요하] + [한반도 서부의 모든 강들]이 합해지는
실로 거대한 큰강이었다.
그 크다는 황하보다 훨씬 더 큰 강이었다.
그 강을 대강(大江)이라 이름붙여 보자.
                                
 
                                   요하
                                                                       
                                    ㅣ
                             
                  황하   ->    대    <- 한강 등 한반도 강들
                            
                                   강    
                           
그리고 [고대 황해대평원]의 지도를 단순화 시켜보자.
 
 
                                    ㅣ      ㅣ       
                                    ㅣ      ㅣ      
                                     ㅣ대  ㅣ
                                     ㅣ     ㅣ                  ㅣ  경기도
 중국쪽                          ㅣ 강 ㅣ                   ㅣ
                                     ㅣ      ㅣ                    ㅣ 충청도 
                                     ㅣ      ㅣ                     ㅣ
                                     ㅣ       ㅣ                    ㅣ 전라도    
                                      ㅣ      ㅣ                   ㅣ----------  (현재의 해안선) 
                                      ㅣ      ㅣ
                                      ㅣ       ㅣ                    
------------------------ㅣ       ㅣ-------제주도----------- (당시의 해안선) 
 
                             바                              다     
 
 
당시 황해평야는 강동(江東: 대강의 동쪽)과 강서(江西: 대강의 서쪽)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강동(江東) 즉 한반도 쪽만 해도 거대하게 넓었다.
 
그런데 이 [고대 황해평야]는 강동(한반도쪽)이 강서보다 살기 좋았을 것이다.
진흙탕물인 황하같은 강이 흐르는 강서 (중국쪽) 보다
모든 강이 맑은물이 흐르는 강동(한반도쪽)이 훨씬 더 살기 좋았을 것이다.
( 한반도의 강들은 인간이 오염시키지 않는 이상 흐린 강이 없다.
이런 곳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그래서 매년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날아오는 가창오리(바이칼 오리)도
중국쪽으로는 거의 안가고 대부분 한국쪽으로 날아온다.
그만큼 한국땅이 살기 좋다는 뜻.

 

[빗살무늬토기 : 한반도쪽에서 시작하여 -> 시베리아 ->유럽으로 퍼진 것]

 

가창오리(바이칼 오리)도 저 지도의 빗살무늬 길을 따라서 

바이칼 호수에서 매년 대부분 한국으로 날아온다. (철새)

그래서 한국에서는 세계 가창오리(바이칼 오리)의 대부분을 매년 볼 수 있다.
(수십만 마리)
가창오리는 세계적인 희귀조 중 하나.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체수가 적다.

 

[가창오리(바이칼 오리)]

 

그리고 중국농산물들이 한국거보다 싼 이유도

한국땅이 그만큼 더 좋다는 것.

 

그러므로 [고대 황해대평원]도 강동이 강서보다 더 살기 좋았을 것이다.

당연히 살기 좋은 강동(한반도 쪽)에 사람들이 몰리고

문명이 발전했을 것이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내려온 [바이칼리안 (밝할인)] 도

중국쪽보다는 한반도쪽으로 왔을 것이다.

 

마치 중국으로 안가고,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한국으로 오는 저 [가창오리(바이칼 오리)]처럼.

 

 

유전자 분석으로 보면 현생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생겨났고

( 약 20만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음)

그들은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다.

 

아시아로 온 고대인류 중 일부는 바이칼호수 지역으로 갔고

빙하기에 바이칼 호수가 고립되면서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생겼고

간빙기(빙하기 중간 중간에 비교적 따뜻해진 때)에 [바이칼리아(밝할인)]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서 가창오리떼처럼 한반도 쪽으로 내려오고

 

살기 좋은 황해대평원에 도착해서 당시 원주민들과 화합을 이루었다 본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바이칼리아(밝할인)]의 특성이

많이 남아있는 민족이 한민족.

이는 생김새도 그렇고 [헬리코박터균]으로도 증명된다. 

바이칼리안(밝할인)은 별다른 물질문명은 없었던 것으로 본다.

원래 극히 추운 곳이나 극히 더운 곳에서는 고도문명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칼리안은 극도의 추위를 이겨낸 강한 정신력이 있었다 본다.

한국인의 뿌리는 [고대 황해대평원 동부지역 (한반도 포함) 원주민]과

[바이칼리안 (밝할인)]의 만남으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는 말하자면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와 비슷하다.

온달(밝할인)이 따뜻한 땅을 찾아 남하해서 황해대평원에서

평강공주(황해대평원 원주민)을 만나고

시너지효과로 [온달과 평강공주]가 진정한 인류문명의 시조가 된다. 

이는 한민족 창세신화의 [나반(那般)과 아만(阿曼)]으로 볼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한민족은

[고대 황해대평원 대강 동부지역 (한반도쪽) 원주민]을 어머니로 하고

[바이칼리안 (밝할인)]을 아버지로 하여 탄생한 민족. 

이는 [한민족의 탄생]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류역사]의 시작이 된다.

드디어 [인간다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것. 

 

                                    ㅣ      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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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ㅣ대  ㅣ
                                     ㅣ     ㅣ                  ㅣ  경기도
               중국쪽             ㅣ 강 ㅣ                   ㅣ
                                     ㅣ      ㅣ                    ㅣ 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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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ㅣ       ㅣ                    ㅣ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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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ㅣ      ㅣ
                                      ㅣ       ㅣ                    
------------------------ㅣ       ㅣ---------제주도----------  (당시의 해안선) 
 
                             바                              다     

 

 
자 그럼 한번 보자.
세계 최초 쌀농사 ( 1만 5천년전) 유물이 발견된 곳이 충북 청원군
세계 최초 신석기 ( 2만년전) 유물이 발견된 곳이 전남 장흥군 
세계 최초급 토기 ( 1만 수천년전) 유물이 발견된 곳이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

 

모두 한반도의 남한 지역.

 

이 유물들은 중국보다 최소한 수천년 빠른 것들. 
( 신석기(갈아만든 석기)는 중국보다 1만년 빠르다.) 
대강의 서쪽(중국쪽)보다 동쪽에서 먼저 문명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강(大江)의 서쪽(중국쪽)사람들이 보기에
해는 대강 건너 보이는 [대강의 동쪽 땅] 즉 한반도쪽에서 떠올랐을 것이다.
 
 
          동쪽                                  해돋이
                              -----------------------------------                             
                                   대강의 동쪽 땅 (한반도 쪽)
                              ~~~~~~~~~~~~~~~~~~~~~~~~
                                                대강(大江)
                         ~~~~~~~~~~~~~~~~~~~~~~
 
        서쪽              대강의 서쪽 땅 (중국 쪽) 사람들
 
 
대강의 서쪽(중국쪽) 사람들이 보기에 해는
항상 [대강 건너 동쪽 땅]에서 떠오른다.
즉 그들이 보기에 해는 바다에서 뜨는 것이 아니라
[대강의 동쪽 ] 즉 한반도쪽 땅을 [뚫고] 떠오른다.
 
땅.을.뚫.고.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해뜨는 땅] 즉 [아사달(아ㅅ달)]
 
[아] - 떠오르는 해 ( 예: 아침, 아이)
[달] - 땅               ( 예:  양달, 응달, 비달(탈)) 
 
땅에서 해가 뚫고 나오는 땅 [아사달]
 
즉 [원조 아사달]은 [고대 황해대평원 대강의 동쪽 ]을 의미했다.

 

그  [원조 아사달]의 문명은 지금 황해바다 아래 가라앉아 있지만
드문 드문 발견되는 것이 바로 위에서 예를 든 
세계 최고로 오래된 [신석기, 쌀, 토기] 등인데
 
당시 한반도, 제주도는 지금보다 [높은 지대]였기 때문에
유물이 발견된 곳들은 말하자면 [원조 아사달의 첩첩 산골]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현재 발견된 [신석기, 쌀, 토기] 등도
당시에는 '첩첩 산골에서 쓰는 것'에 불과했고
[진짜 당시 문명의 정수]는 지금 황해바다 속에 있다고 볼수 있다.
누군가의 발견을 기다리며.
 
1만 2천년 전부터 [고대 황해대평원]에 차차 바다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차차 높은 지대 즉 산(山)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산들은 섬이 되었다.
그 섬들에는 평야지대에 살던 [수준높은 문명인]들이 살게된 것.
나중에는 그 섬들마저 다 물에 잠긴다.
물에 잠긴 그 섬들 (원래 산봉우리들)
이리하여 [이어도 전설]이 생긴 것으로 본다. 
 
대강(大江)의 동쪽땅을 [아사달]이라 불렀는데
그 말을 줄여서 그냥 [아]라고도 불렀다.
그 땅은 [마아] 또는 [이아]라고도 불렀다.
(마아 - 마의 땅, 어머니 땅)
 
[이아]는 [이들이 사는 아(땅)]라는 뜻.
한민족은 원래 스스로들을 [이]라고 많이 부른다. 
(그 이, 저 이, 가는 이, 오는 이, 아이 등등등)
 
그래서 중국인들은 한민족을 [동이(東夷)]라 부른다.
[동쪽에 사는 이(夷)]라는 얘기.
 
즉 [이]라는 한국말을 한자로 표현한게 [이(夷)]
[이(夷)]는 大 + 弓 
즉 한민족은 위대하고, 활을 좋아한다는 것.
(중국 고대 한자사전 [설문해자] 참조)

 

그 [이아]에 차차 바다물이 들이차면서 [산]들이 [섬]이 된다.
그 섬들의 이름이 [이아도] 즉 [이아의 섬]
그 [이아도]들은 평지의 문명인들이 올라와서 살기좋은 곳이 되었고
하지만 차차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황해대평원 -> 이아도(이어도) -> 바다]         

                                                        

제주도에는 [이어도의 전설]이 있다 .
제주도에서 배타고 가다보면 물 속에 [이어도]라는 [지상낙원]이 있다는 것.
 
[ㅇ.] -> 아, 어

 

 

제주인들이 본 [이어도]들은 대강 저기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제주도 남서쪽 바다에도 [이어도]가 있었을 수 있다.)

 

[나일강 삼각주]

 
[삼각주]는 큰강의 하류에 생기는 기름진 땅.
농사 짓기에 좋고 바다가 가까워서 고대문명이 많이 있던 곳.
바다가 가까우면 소금을 얻기도 편하다.
조개 미역 바다물고기 등 해산물도 쉽게 얻을 수 있다.
               
[이아]는 다른 말로 [마아]
[마의 땅] 즉 [어머니 땅]이라는 뜻.
어린애가 처음 말을 할때 [엄마]라고 하기 전에 [마] 라 한다.
중남미의 [마야] 문명은 [황해대평원 원조 마아]에서 세계 여러곳으로 퍼진
사람들 중 한 무리인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해서는 후에 차차 다룬다.
마야 - 마이아 - 사람()의 땅(
한국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마고(麻姑) 할머니]라는 분이 있다.
[고(姑)]자는 [고(古)의 여인(女)]이라는 말로 [위대한 여성 지도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마고(麻姑)] - [마 할머니]
흔히 [마고할미] [삼신할미] 등으로 불리는 고대 한국의 여성지도자분들.
황해대평원의 [원조 한문명] 즉 [마 문명]의 최고지도자는 여성으로 본다.
 
[마이]는 [마의 사람]이라는 뜻인데
[마이]를 축약해서 발음하면 [매]가 된다. 
지금도 한국에는 [어매(어머니)] [아지매(아주머니)]라는 말이 있다.
[매] 즉 [마이]가 여성에게 붙는 호칭임을 보아도
[마문명]의 최고 지도자는 여성으로 보고 (모계사회)
세계학자들도 아주 오래전에는 모계사회로 보고 있듯이
황해에 물이 다 찬 8천년 이전의 마문명은 모계사회로 본다.

 

지리산 [마고할미 공기돌] 바위

 

[마고할미]가 가지고 놀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지리산 마고할미 공기돌 바위.

 

여러분 보시기에 저 '공기돌'들이 저렇게 서있는 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 보시는가.

 

안에다가 강철심 등을 박았거나
과학적 설명이 안되는 신비한 현상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돌을 깍아서 끼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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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ㅣ                                                 ㅣ
                    ㅣ                       돌                       ㅣ
                    ㅣ                                                 ㅣ
                    ㅣ-------ㅣ                 ㅣ---------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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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ㅣ                        돌                      ㅣ


 

어찌됐던 [마고할미]는 한민족의 [큰(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고(麻姑: 마 할머니)란 [마]의 땅 즉 [원조 한문명]의 여성지도자를 뜻하는 말로 보인다.
삼베를 만드는 마(麻)라는 식물은 [마 할머니]땅의 중요한 것 중 하나여서
[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원조 한문명] 즉 [마 문명]에서는 [마(麻)]로 만든 옷

즉 [삼베옷]을 많이 입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삼베옷(수의)를 입혀서 매장하는

전통이 이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 마(麻)로 만든 옷에는 살균효과가 있어서 건강에 좋다.) 


게다가  [마(麻)]라는 글자에는 [조칙]이라는 뜻도 있는데

조칙은 [임금이 내린 명령]을 뜻하는 말이니
[원조 임금]은 [마 문명]에서 나온 것이라는 증거 중 하나로 보인다.

 

 

고인돌 문화는 마문명 고유의 문화로 보이는데
마문명이 바다물이 차오르면서 그 사람들이 많이 올라간 곳이
한반도 남부지방 .
 
진도개로 유명한 진도는 마문명 지역에 가까이 있었던 곳.
진도개의 혈통이 우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마문명 개들의 비교적 순종 혈통이 진도개, 제주개 등) 

 

<내용출처: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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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9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리(D’Anville)가 제작한‘et des Rojaumes de COREE ET DE IAPAN’ 지도.

한국 평안도(PINGAN·왼쪽 밑줄)가 압록강 이북의 현 중국 집안지역까지로 돼 있고,
함경도(HIENKING·오른쪽 밑줄)도 두만강 이북 간도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당빌리는 프랑스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었다.

 1745년 키친(T. Kitchin)이 제작한 ‘A Map of QUAN-TONG or LEA-TONGE PROVINCE ; and the KINGDOM of KAU-LI  or COREA’ 지도.

 

 

1740년 예수회가 선교를 목적으로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로 제작한

‘La CHINE avec la KOREE et les Parties de la TARTARIE’ 지도.
(만주의 많은 영역이 한국땅으로 되어 있다.)

 

1771년, ‘본 도법’으로 유명한 지리학자 본이 제작한

‘CARTE DE LA TARTARIE CHINOISE’ 지도.

 

1778년 잔비어(Janvier, j. & Santini, F) 등이 제작한

‘L、ASIE divisee en ses principaux Etats’아시아 지도.
중국과 한국의 국경선이 압록강, 두만강 이북에 형성된 것으로 나온다.
한국을 녹색 테로 둘러 ‘COREE’라고 표기했으며 동해는
‘MER DE COREE (한국해)’로 표기했다.

 

1794년 윌킨슨(R. Wilkinson)이 제작한

‘CHINA, Drawn from the Latest & Best AUTHORITIES’ 지도.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했다.

 

1920년 로마교황청이 작성한 교구도.  

한반도를 서울, 대구, 원산의 3개 교구로 나눴는데,
간도 지역이 ‘원산(Wonsan) 교구’에  포함돼 있어
간도와 한반도가  동일 생활권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09년 일본 조선통감부  임시 간도파출소 잔무정리소가 제작한‘백두산 정계비 부근 수계 답사도’.  

백두산(검정색 원) 정계비는“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을 압록강-토문강으로 한다”고 적고 있는데,
이 지도는 토문강(土門江·갈색 원)과 두만강(豆滿江·청색 원)은 다른 강이며,  
두만강 이북에 토문강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사진2>18세기 영국서 제작한 아시아전도.흑룡강성 일대를 조선에 포함시켰다.

<사진3>1769년 프랑스에서 제작한 아시아지도.
압록~두만강 이북의 간도 일부를 조선의 영역으로 그렸다.
<사진4>러시아에서 1854년에 제작한 아시아전도.
만주 일부를 조선의 땅으로 표기했다.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정병준 교수(40)는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영국정부의 자료를 발굴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해 연합국과 패전국일본이 1951년 9월 8일에 조인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준비과정에서 유일하게 작성된 지도이자,
독도를 한국영토로 명백히 규정한 자료다.
1951년 9월에 개최된 샌프란시스코평화회담 직전인 그해 4월 7일 제작한
연합국 일원인 영국정부의 일본 영토지도에 다케시마로 표기된
독도는 한국 영토에 포함돼 있다.
사진에서 화살표로 표시된 부분이 다케시마로 표기된 독도이다.

그동안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약에 일본영토를 확실히 하는 지도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빌미로
독도를 포함해 러시아와 북방 4개 섬, 중국과의 조어도 영유권 분쟁을 야기해 왔다.

 

부산외국어대 김문길 교수는 1785년 일본의 대표적 지리학자인 하야시 시혜이가 제작한
'조선팔도지도'를 발견했다며 원본을 공개했다.
한반도 전체를 노란색으로 채색한 이 지도에는 북위 39도에
울릉도와 독도(우산국)가 하나의 큰 섬으로 그려져 있고,
울릉도 우측 바다가 '일본해'가 아닌 '동해'로 표기돼 있다.
 
이상 출처 - http://blog.empas.com/pp337337/list.html?a=6624028&c=90044

 

<내용출처 : 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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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고인돌문화는

[ 마문명 -> 한반도 남부 -> 한반도 북부 -> 만주]

로 전파된다.

 

 

기후변화와 문명전파 등의 이유로 고대한국의 수도는
[한반도 남부 -> 한강 -> 대동강 -> 압록강]으로 이동했다고 본다.

 

즉 고대한국 즉 [한인(환인)씨의 나라]는
대강 현 남한 지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 북부, 만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 한국의 수도는 나중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조선때 한국의 수도는 대동강이 되고

...열국시대를 거쳐서... 

고려때 수도는 대동강과 한강의 사이

조선 때는 한강이 된다.)


처음에는 한강이 한수(漢水), 아리수(알이수) 등으로 불리다가
대동강, 압록강도  한수(漢水), 아리수(알이수) 등으로 불리게 된다.

 

 

[압록강 유역 (집안)의 고대한민족 피라미드들 - 1만2천기]

위 피라미드들은 중국당국이 새로 보수를 해서 새거처럼 보이지만

아주 오래된 것들.

중국당국은 저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거라고 근거도 없이 우기고 있지만

저 피라미드들은 고구려무덤과는 아주 다르다.

장군총은 저 피라미들 중 좀 큰편에 속한다.

일제와 중국당국은 장군총 등 한국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거라고 믿게 하려고

공작을 많이 벌였다.

그런데 장군총 등이 고구려때 거라는 근거는 전혀없다.

고구려보다 수천년전 거라는 근거는 많다.

그런데 동북꽁정이 먹혀들어간다고 생각했는지

탐원꽁정이라 이름을 바꾸더니

(탐원 - 근원을 찾는다.) 

 

최근 들어서는 압록강 유역에 [여명문화]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더욱 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동북꽁정파가 [여명문화] 즉 [처음 시작한 문화]라는

이름 붙인 [신별유적]은 길림성 통화현에 있다.

물론 아직 그 유물들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통화현은 집안시에 붙어있다.

 

위 집안(지안)시는 고구려가 도읍을 했던 곳.

 

그래서 동북꽁정파는 아래 고대 피라미드들을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쳐왔다.

 

 

위 사진은 만주서부 홍산문명의 것.
피라미드 위 부분이 없어졌다.

 

 

압록강변 집안시에는 저런 피라미드들이 널려있는데 (1만2천기)
요하 홍산문명에는 몇개 없다.
 
그런데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들에 대해서는 
중국당국이 5천년 이상 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발표했다.

 

 

한반도에서 비교적 먼
즉 비교적 중국에서 가까운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는
5천년 이상 전 것이라고 이미 발표한 중국당국이
 
그와 똑같은 형식의 [압록강변 집안시]의 피라미드들은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쳐왔던 것.
 
똑같은 것들이 중국에서 가까이 있으면 5천년 이상 전 것이고
한국에서 가까이 있으면 겨우 고구려때 것인가. 
 
꽁정파는 이제 슬슬 더욱 본색을 드러내며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의 유적을 
시작하는 문화 즉 [여명문화]라 이름 붙이며 
점점 더 한국고대사 납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백두산 꽁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감이 잡히시는가.
 
놈들은 이미 [제2차 삼위태백 지역] 즉 압록강 북부 문명이  
홍산문명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그동안은 중국과 비교적 가까운 [홍산문명]에 대해서만
정보를 조금씩 흘리며
마치 거기가 압록강변보다 문명이 더 빠른 것처럼 사기치다가
 
이제는 점점 더 꽁정이 성공할 것 같아서인지
압록강변 고대사까지 삼키려고
압록강변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 문명에다가
[여명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다가온 것이다.
[백두산꽁정]과 함께.
 

그들은 유물, 유적발굴들을 통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대부분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면 한방에 대대적으로 발표할 것이다.

세계에다가 대고 대대적으로 

'이 압록강 유적들을 봐라~ 중국이 세계고대문명의 시조다~' 라고.

그들이 동북꽁정이니 탐원꽁정이니 백두산꽁정이니 하면서

그리도 '목숨 거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겠다.

 
놈들의 꽁정은 치밀하게 장기적으로 감행되어 왔다.
정말 위험한 적은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적.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의 적.
 
필자는 중국당국이 고맙다.

그들의 동북꽁정이 고맙다.

그들은 만주고대사를 중국고대사로 둔갑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그래서 만주 고대 유적 유물을 열심히 발굴하고 있다.

머지않아 만주유물들을 모두 공개하면서 중국역사라고 우길려고.

하지만 그들의 만주 고대 유물, 유적 발굴 고마운 것이다.

간단하다. 우리는 단지 그게 한국고대사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고인돌, 빗살무늬토기 등 한국고대사라는 근거는 너무나 많다.

정신병자가 아니라면 만주 특히 압록강변 고대사를 중국고대사로 볼 학자는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사필귀정.

제3국 학자들 즉 세계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서도

한국고대사라는 것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동북꽁정이 고마운 것이다.

우리가 힘들게 발굴해야 할 것을 그들이 다 해주니까.

( 고맙습니다. 꽁정파 여러분^^ )

 
문명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역시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 분포도]

 

삼국유사에는 [환인(桓仁)씨] , [환웅(桓雄)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씨]라는 말은 고대에는 극존칭. 아주 훌륭한 분들의 칭호.)

 

삼국유사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동화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황해(+남해)대평원은 1만5천년전~1만4천년전 물이 들어와서

바다가 되었고

다시 물이 빠졌다가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에 다시 물이 들어와서

지금의 바다가 되었다.

 

마문명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황해(+남해)대평원은 대단히 넓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한반도 남부는 그에 비해서는 평야가 좁고 비교적 척박하다.

 

그래서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 지도자의 탄생]으로 본다.

 

그 [남성 지도자]의 존칭호는 원래 [한이]라 본다.

 

[한이]는 [태양(한)같은 사람(이)] , [하늘 같은 이]

- 한민족은 원래 사람을 [이]라고 부른다. (그 이, 저 이, 아이 등등등)

 

[한이]는 후에 [한인]이 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인]이 바로 [한인]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환]이 아니라 [한]이고

[환인씨]는 원래는 [한인씨]로 발음 되었다.

 

한하다(태양(한)같이 밝다) -> 환하다, 훤하다

 

옥편에도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한]이라고 나온다. 

 

[마문명]에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여성(마할머니)였는데 (모계사회)

차차 한반도 남부로 올라오면서 [한문명]이 되고

남성 최고지도자의 문화가 생겼고 

그 최고지도자를 [태양(하늘)같은 분]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한이]라는 존칭이 나중에 발음이 [한인]으로 바뀌었고

다시 발음이 [환인]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중국역사책에도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마한]을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있던 [진한(辰韓)]과

만주 서부, 중국대륙 동해안에 있던 [변한(弁韓)]은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진한]은 [진국(辰國)]이라 부르기도 하고

[변한]은 [변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변진()]이라는 말은 [변한]이 [진한의 일부]라는 뜻.

즉 변한은 진한사람들이 건너가서 세운나라.

 

[한국]이라는 말은 원래는 [한반도 남부, 중부 지방]을 뜻하는 말

그 [한국]의 지도자가 [한인(환인)씨]

[한인(하늘, 태양같은 분)]이 다스리는 [한국(하늘, 태양의 땅)]

 

영어 등 거의 모든 유럽어는 아리안어족(인도-유럽어)에 속한다.

약 7천년전 중앙아시아에 나타난 아리안이

약 3천5백년전에 인도와 유럽으로 퍼지면서 말을 전파했고 

이 아리안의 말이 현대인도어와 영어, 불어, 독어 등

현대 거의 모든 유럽어의 뿌리라는 것이 세계학계의 정설. (백과사전 참조)

 

필자는 이 정체불명의 민족 [아리안]이 고대 한민족의 이동이라 본다.

 

[아리안(알이안)]의 말이 변한 영어에도 [한이]라는 말이 있다.

Honey

지금은 흔히 [꿀] [부부나 연인 사이에 부르는 호칭]으로 쓰이는데

이 말은 원래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말. (영어사전 참조)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에서 [한국전통 역사책]을 모두

없애버리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조선임금들은 여러번 전국에 영을 내려서

[한국전통 역사책]을 수거해서 없애버린다.

약소국가의 비애.

 

일제 역시 수많은 [한국전통 역사책]을 수거해서 없애버린다.

그래서 [한국전통 역사책]은 거의 없어졌는데

간신히 전해진다 하는 게 [부도지] [규원사화] [한단고기] 등 몇가지.

그 책들을 믿건 안믿건 간에

최소한 연구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책들에 보면 [환인씨]의 나라가 9천년 이상 전에 이미 있었다고 나오는데

황해평원이 물에 잠긴 것이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이니

그 시대가 맞는다.

 

[원래의 마문명 지역] 

 

처음에 [마문명에서 한반도로 올라온 한문명]은

[한반도 남부, 중부]로 올라왔다고 보는데

바다물이 들이찬 1만5천년전~1만4천년에 올라왔을 것이고

 

다시 황해, 남해물이 빠지고 평원이 나타났고 

 

[1만2천년전 ~ 8천년전]사이에 바다물이 다시 들이차서  

마문명인들은 완전히 한반도로 올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전통 역사책]에 [환인씨의 나라]가

9천년 이상 전부터 있었다고 한 것은 맞는 말로 본다.

 

위 그림은 [1만5천년전~1만4천년전]사이에 한반도로 올라온

마문명인들의 주요 영역을 대강 그린 것.

 

삼국유사에 [환인 환웅 단군의 계승]이 나오는데

여러대(여러분)의 환인, 여러대(여러분)의 환웅, 여러대(여러분)의 단군

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마문명을 계승한 고대한국(환국)의 최고지도자의 통칭 [환인씨]

[환인씨]의 뜻을 받고 미개지역을 개화시킨 지도자의 통칭 [환웅씨]

 

수천년에 걸친 [역대 환인씨] 시대가 지나고

최고지도자를 [환웅씨]라 부르는 시대가 온 것으로 볼수도 있다.

 

[환웅씨]라는 존칭에는 이 2가지 의미가 섞여있다고 본다. 

 

불교의 절에 가면 중심 건물을 [대웅전]이라 하는데

이는 원래 [환웅씨(한웅씨)]를 모시는 [한웅전] 이었던 것으로 본다.

순 한국어 [한]은 [크다], [위대하다]는 뜻이므로 

한자로 옮겨쓰면 [대(大)]자가 된다.

[대웅전] 즉 [한웅전]에 지금은 석가부처님이 모셔져 있지만

그 이전에는 [환웅(한웅)씨]를 모셨다고 본다. 

 

[환웅씨]의 후손 [단군왕검]

 

[단군왕검]께서는 [제1대 단군]으로 본다.

그 이후로 한국의 임금을 [단군]이라 불렀고

수십대 정도의 [역대 단군]의 계승이 있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 보면 [환인씨]는 문명전파를 위해서

[환웅씨]를 [삼위태백(三危太伯)]으로 보냈다고 했다.

이는 [삼위와 태백의 사이 지역]이란 뜻인데

 

초기 고대한국은 한반도 남부지방이므로

[삼위태백(三危太伯)]이란 태백산 북쪽

즉 대략 한강 이북을 뜻하는 말로 본다. 

 

[1만5천년전~1만4천년전]에 한반도 남부로 올라온 마문명인들 입장에서는

한강 이북은 당시 미개지역.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은

참 장구한 일이라 하겠다.

 

문명이 한반도 북부보다 남부에서 먼저 생긴 것을 보면

백두산이 태백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나중의 일로 본다.

 

나중에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이 제2 태백산 즉 백두산의  

서쪽의 만주를 뜻하는 말로 바뀐다.

 

 

아래 사진은 [원 태백산]인 강원도 태백산의 천제단.

강원도 태백산 천제단(天祭壇)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28호

 

 

 

태백산 천제단 해돋이

 

[단군왕검]께서 태백산에 하늘에 제사드리는 천제단을 지으신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보은

 

천제단에는 [환인씨 환웅씨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하겠다. 

 

[단군왕검]께서는 강화도에도 천제단을 지으셨다고 하는데

참성단 

 

 

위 그림을 보시라.

강화도 앞바다는 [후기 마문명(1만4천년전~1만2천년전)]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그곳에서 한강을 따라 한반도로 [마문명인]의 이동이 추정되니   

 

( 마문명인들의 제2차 이동 - [1만2천년전~8천년전])

  마문명인들의 제1차 이동 - [1만5천년전~1만4천년전])

 

[단군왕검]께서 강화도에 참성단을 지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참성단]은 " 고려 원종 5년 (1264년)에 왕이 친히 이곳에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 라는 기록과
또 고려사에는 참성단을 두고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단으로 전한다" 라고 기록하고 있어
고려 원종 이전에 이미 [참성단]이 설치되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고려때도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고려 당시에도 단군왕검을 국조로 모셨다는 것을 알수있다.
 
광복 이후에 소개된 사서에 따르면 " 단군 기원 51년에
단군왕검께서 춘추로 제사를 올리기 위해 참성단을 쌓았다."고 한다.
[참성단]은 조선 인조 17년(1640년) 강화유수 최석항에 의해
일부 무너진 것이 보수된다.
 
강화도 마니산

 

마니산

 

만이산

 

만이의 산

 

만(마의) 이(사람)의 산

 

마 사람들의 산

 

마...마...마...

                                            

 

한반도 중남부로 올라온 마문명인들

그들의 초기 영역은 대략 [한강에서 제주도까지]로 본다.

 

약 1만년전 당시의 한반도는 지금보다 추웠고

한강 이북은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았다.

[한강~제주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또한 세계최고의 고인돌 밀집지역.

 

이러한 이유로 최초의 한국은 대략 한강 이남으로 본다.

 

차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한민족은 북상을 시작했다고 본다.

 

 

약 1만년전에 [한강유역 이남]에서 시작된 한국은

차차 대동강 유역으로 그 영역을 넓혀간다.

 

한강이 한수(漢水)로 불렸던 것처럼

대동강도 역시 한수(漢水)로 불리게 된다.

 

 

초기 [환인씨]는 한강 유역에 도읍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차차 기후변화와 문명전파를 위해서

후대 [환인씨]들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겼던 것으로 본다.

 

처음엔 한강을 한수(漢水)로 부르다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기고는 대동강을 한수(漢水)로 부른다.

 

그리하여 결국 한강과 대동강은 모두 한수(漢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수(漢水)는 다른말로 [아리수]라 불린다.

 

아리수

아리의 물

알이의 물

 

아리안

알이안

알이 사람

 

알이 - 태양(알)같은 사람(이)  

 

아 - 떠오르는 해

하 - 다 떠오른 해

 

아 -> 안, 알

하 -> 한, 할

 

[한인(환인)]의 어원으로 보이는 [한이]라는 존칭이  

다 떠오른 밝은 해 (한) 같은 분(이)

즉 최고지도자를 뜻한다면

[알이]는 떠오르는 해같은 젊은 지도자를 뜻한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멀리 가지는 않는다.

젊은 지도자를 보낸다.

그래서 [알이]들은 세계로 퍼졌고

그들은 후에 [알이안(아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에게 전해진다.

 

그런데...알이안의 다른 이름... 

[환웅씨]

[환웅씨]는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를 원했던 젊은 지도자.

 

오랜 기간 역대 [환인씨]들은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환웅씨]들을 떠나보낸다.

 

그 [환웅씨]들 즉 [알이(아리)]분들의 고향에는

강이 있는데 

그 이름이 

아리수

 

즉 알이수...알이의 물

 

역사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리수는 때로는 한강의 이름이고

때로는 대동강을 뜻한다.

 

그리고

아리랑 고개

알이랑 고개

 

고대 한국어에서 태양은 [아],[하],[라]로 불린다.

[랑]이란 [태양같이 밝은 사람]

 

아리랑은 슬픈 노래다.

왜?

떠나가니까.

 

[알이], [알이랑]이 떠나가니까.

한번 가면 살아 생전 돌아올 기약이 없는 길.

문명을 전파하러,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그 길을 간다.

꽃다운 [알이랑]들이.

 

[홍익인간 정신]은 단군왕검 훨씬 이전

[환인씨]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본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다 원래 있었던 것.

그래서 역사를 보는 것일 터.

 

 

 

[환인씨]가 문명을 전파하러 [환웅씨]를 보냈다는 곳이

삼위태백(三危太伯) 또는 흑수백산(黑水白山)이라는 말로 전해지고 있다.

 

흑수백산(黑水白山)

- 흑수와 백산의 사이 지역

 

고대한국의 제3수도지가 [집안,환인]지역으로 보이는데

집안 바로 위에 [백산시]가 있다.

즉 그 지역에 [백산(白山)]이라는 산이 있다는 것.

 

[고대한국 제3수도] 옆에 [백산]이라는 산이 있었고

좀 더 멀리에 [태백산(큰백산)]이 있었다는 것.

 

[고대한국 제3수도] - [백산] - [태백산(백두산)]

 

고대한국 최고지도자 환인씨는 백산 너머 미개지역에

환웅씨를 보내서 문명을 전파한다.

그곳에는 [곰을 상징동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상징동물로 하는 부족]이 있었다.

 

동북아에는 수많은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들이 있었다.

곰과 호랑이가 동북아의 대표적인 맹수이기 때문.

 

서경 등 중국고대책에도 [곰 부족]을 그냥 [곰(熊)]이라 부르고

[호랑이 부족]을 그냥 [호랑이(虎)]라 부른 기록이 숱하게 많다.

 

마치 지금 한국 프로야구단중에 [베어스(곰들)]와 [타이거스(호랑이들)]가 있는 것과 같다.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들이 [人]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럼 人 이란 무엇인가.

 

[고대 갑골문의 人 자]

 

고대 갑골문에 보면 人이란 그냥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절을 갖출줄 아는 문명화된 사람]을 뜻한다.

 

즉 원시사회였던 곰부족이 [환웅씨]에게 감화되어

[예절을 갖출줄 아는 문명화된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런데 고대 중국에서는 그들의 동북방 즉 한국쪽 방향을 

[인방(人方)]이라 부르는 기록이 많다.

 

즉 원래 人 이란 아무 사람이나 다 얘기했던 것이 아니라

고대 한민족을 얘기 했던 것. 

 

[환웅씨]는 미개했던 주변 부족들을 차차

인간다운 인간 즉 [人]으로 만들어나갔던 것.

 

동방(東方)을 인방(仁方)이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仁(어질 인)자는 고대문자에 [人人]

즉 人 자가 2개 붙어있는 것.

 

즉 동방(東方) 즉 고대한국을 [人人]의 땅이라 부른 것.

사람다운 사람 즉 고대 한민족 [人] 이

미개했던 곰부족을 교화하여 [人] 으로 만든 것.

 

그게 바로

 

熊(웅) -> 人(인)

 

이러한 교화를 [仁(어질 인)]이라 한다.

[仁] 은 원래 [人人]

즉 [사람다운 사람]이 다른 사람도 이끌어서

그 사람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

그러한 것을 표현한 말이 [仁(어질 인)] 

즉 [어질다(인격이 있다)] 하는 것은 원래 고대한민족을 뜻하는 말.

 

고대한국은 수천년의 기간동안 [여러 역대 환인씨] [여러 역대 환웅씨]의
대이음이 있었을 것인데
그 세월의 끝머리에 [단군왕검]께서 [삼위태백 (흑수백산)]지역에서 탄생하셨다 본다.

 

 

[삼위태백] 이란 [흑수백산]과 같은 의미

 

 

국토연구원의 산맥지도에서 보면 오대산 지역에 [백산]이라 해 놓았다.
 
이 [백산]이란 오대산이나 그 옆의 계방산을 표시해 놓은 것.

 

계방산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남한에서 5번째로 높은 산.
오대산보다 더 높다.
[제1차 흑수백산]은 대강 다음과 같다.

 

백산과 흑수(흑룡강) 사이지역을 뜻한다.
즉 한강 이북에서 만주까지의 지역.
 
후에 고대한국 수도지가 대동강으로 옮겨지고 
[제2차 흑수백산] 개념이 생긴다.

 

함흥 옆의 백산은 백두대간의 한 봉우리.

 

 

원래 남한에 있던 소백산, 백산, 태백산이
북한지역에도 생긴다.
그리고 문명은 계속 북쪽으로 전파된다.
 
나중에 압록강에 고대한국 제3수도지가 생기고
압록강변에도 [백산]이 생긴다.
지금도 그곳에는 [백산시]가 있다.

 

[길림성 지도 남부]

 
[집안시] 위에 [백산시]가 있다.
즉 저 지역에 [백산]이 있다는 얘기.
 
[집안시]는 고대한국 제3수도지로 추정되는 곳.
고대 집안시와 백산의 관계는
지금의 서울과 북한산 정도 되는 관계.

 

( 이를 보면 고인돌 주요 분포지가 왜 저렇게
북으로 툭 튀어 나왔는지 의문이 풀린다 하겠다.
문명의 전파.)
 
이렇게 고대한국 수도지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북한과 만주에도 [백산]이 생기게 된다.
물론 한반도와 만주에 [백산]이라 불리는 산들은 많다.
그 중 대표적 [백산]들로 살펴본 것.
 
[초대 환인씨]이래로 오랜세월이 흐르면서 [원조 한문명 지역(한반도)]과
[새로운 한문명 지역(만주)]이 서로 다른 나라로 변화하는 기미가 보이자 
단군왕검께서 한민족의 [대동단결]을 위해서
대동강에 고조선을 세우셨다고 본다.

 

고조선
古朝鮮
[옛 조선]이라 하여 붙은 이름.
원래 이름은 당연히 [조선(朝鮮)]
( 고려 이후에 건국된 [조선]은 [고조선의 부활]을 뜻한다.)
 
조선(朝鮮)의 [선(鮮)]자는 지금 [고울 선, 빛날 선, 깨끗할 선]등
아주 좋은 의미로 쓰인다.
고조선이 그만큼 빛나는 나라였다는 증거의 하나라 하겠다.
 
[선(鮮)]자는 [물고기 + 양]
 
魚 + 羊
 
위 그림처럼 물고기(魚)는 한반도를 뜻하고
양(羊)은 만주를 뜻한다고 본다. 
 
즉 단군왕검께서는 [원조 한문명 지역] 즉 한반도와
[새로운 한문명 지역] 즉 만주를 다시 확실한 하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대동강에 수도를 세우고 조선(朝鮮)을 건국하신 것.
대동강(大同江)의 이름이 대동(大同)인 것이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대동(大同) - 크게 하나됨. 
 
단군왕검께서는 [고대한국 제2수도지]인 대동강에 도읍하고
[고대한국 제1수도지]인 한강 어귀의 강화도에 [참성단]을 만든다.
[참성단]은 하늘에 성인에 제사드리는 제단인데
강화도는 [마문명]에서 한강을 타고 한반도로 올라온 길목.

 

모든 일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우리가 알던 모르던 간에.

 

<내용출처 : 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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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고인돌문화는

[ 마문명 -> 한반도 남부 -> 한반도 북부 -> 만주]

로 전파된다.

 

[마문명]에 대한 기록은 신라재상 박제상이 옛기록을 전한

[부도지]에 나온다.

 

삼국유사에는 [마문명]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지만 

[환인(桓仁)씨] , [환웅(桓雄)씨]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씨]라는 말은 고대에는 극존칭.

아주 훌륭한 분들의 칭호.)

 

삼국유사에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동화식]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황해(+남해)대평원은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에 물이 들어와서

바다가 되었다.

 

마문명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로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황해(+남해)대평원은 대단히 넓고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한반도 남부는 그에 비해서는 평야가 좁고 비교적 척박하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데

그 중 하나가 [남성 지도자의 탄생]으로 본다.

 

그 [남성 지도자]를 [한인]이라 불렀다.

[한이]즉 [태양(한)같은 사람(이)] , [하늘 같은 이]가 변해서 생긴 말이라 본다.

 

[한이] -> [한인]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환]이 아니라 [한]이고

[환인씨]는 원래는 [한인씨]로 발음 되었다.

 

한하다(태양(한)같이 밝다) -> 환하다, 훤하다

 

옥편에도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한]이라고 나온다. 

 

[마문명]에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여성(마할머니)였는데 (모계사회)

차차 한반도 남부로 올라오면서 [한문명]이 되고

남성 최고지도자의 문화가 생겼고 

그 최고지도자를 [태양(하늘)같은 분]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한이]라는 존칭이 나중에 발음이 [한인]으로 바뀌었고

다시 발음이 [환인]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중국역사책에도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마한]을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 있던 [진한(辰韓)]과

만주 서부, 중국대륙 동해안에 있던 [변한(弁韓)]은

그냥 [한국(韓國)]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진한]은 [진국(辰國)]이라 부르기도 하고

[변한]은 [변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변진()]이라는 말은 [변한]이 [진한의 일부]라는 뜻.

 

이를 보아도 [한국]이라는 말은

원래 한반도 남부, 중부 지방을 뜻하는 말

그 [한국]의 지도자가 [한인(환인)씨]

한인(하늘, 태양같은 분)이 다스리는 한국(하늘, 태양의 땅)

 

[한인]은 원래는 [한이]였다고 본다.

한민족은 원래 사람을 [이]라고 부른다. (그 이, 저 이, 아이 등등등)

 

영어 등 거의 모든 유럽어는 아리안어족(인도-유럽어)에 속한다.

약 7천년전 중앙아시아에 나타난 아리안이

약 3천5백년전에 인도와 유럽으로 퍼지면서 

말을 전파했고 이 아리안의 말이 현대인도어와

현대 거의 모든 유럽어의 뿔리라는 것이 세계학계의 정설.

 

필자는 이 정체불명의 민족 [아리안]이 고대 한민족의 이동이라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차 다루기로 하자. 

  

영어에도 [한이]라는 말이 있다.

Honey

지금은 흔히 [꿀] [부부나 연인 사이에 부르는 호칭]으로 쓰이는데

이 말은 원래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말. (영어사전 참조)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에서 [한국전통 역사책]을 모두

없애버리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조선임금은 여러번 전국에 영을 내려서

[한국전통 역사책]을 수거해서 없애버린다.

약소국가의 비애.

 

일제 역시 수많은 [한국전통 역사책]을 수거해서 없애버린다.

그래서 [한국전통 역사책]은 거의 없어졌는데

간신히 전해진다 하는 게 [부도지] [규원사화] [한단고기] 등 몇가지.

그 책들을 믿건 안믿건 간에

최소한 연구가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책들에 보면 [환인씨]의 나라가 9천년 이상 전에 이미 있었다고 나오는데

황해평원이 물에 잠긴 것이 [1만2천년전~ 8천년전] 사이이니

그 시대가 맞는다.

 

[원래의 마문명 지역]

 

 

 

붉은 점 은 강화도(마니산)

 

[1만5천년전 ~ 1만4천년전]에 황해에 물이 들어온다.

바다가 높아진다는 것은 지구가 따뜻해졌다는 얘기고

따라서 또한 [충청도, 전라도 앞바다 마문명]은

[경기도, 충청도 앞바다]로 올라갔을 것이다.

 

( [1만4천년전~1만2천년전] 사이에 물이 다시 빠졌다가

[1만2천년전 ~ 8천년전] 사이에 물이 다시 찬다.)

 

전반적으로 [마문명에서 올라온 한문명]은

[한반도 남부, 중부]로 올라왔다고 보는데

그 때가 [1만2천년전 ~ 8천년전]사이이니

대강 1만년전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전통 역사책]에 [환인씨의 나라]가

9천년 이상 전부터 있었다고 한 것은 맞는 말로 본다.

 

삼국유사에 [환인 환웅 단군의 계승]이 나오는데

 

여러대(여러분)의 환인

여러대(여러분)의 환웅

여러대(여러분)의 단군

 

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단군왕검]께서는 [제1대 단군]으로 본다.

 

그런데 단군왕검께서는 왜 하필 강화도에 참성단을 지으셨을까.

(참성단은 성인(하늘)에 제사드리는 제단.)

 

위 그림을 보시라.

강화도 앞바다는 [후기 마문명]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그곳에서 한강을 따라 한반도로 [최초 환인씨]의 이동이 추정되니   

[환인씨 환웅씨]를 계승했다는 단군왕검께서

강화도에 참성단을 지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마니산

만이산

만이의 산

 

마의 이(사람)의 산

 

마...마...마...

  

모든 일에는 다 그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내가 알던 모르던 간에.

 

 

[초기 환인씨 나라]

 

한반도 중남부로 올라온 마문명인들(원조 마야인들)

그들의 초기 영역은 대략 [한강에서 제주도까지]로 본다.

 

약 1만년전 당시의 한반도는 지금보다 추웠고

한강 이북은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았다.

[한강~제주도]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또한 세계최고의 고인돌 밀집지역.

 

이러한 이유로 최초의 한국은 대략 한강 이남으로 본다.

 

차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한민족은 북상을 시작했다고 본다.

 

 

 

약 1만년전에 [한강유역 이남]에서 시작된 한국은

차차 대동강 유역으로 그 영역을 넓혀갔을 것이다.

 

한강이 한수(漢水)로 불렸던 것처럼

대동강도 역시 한수(漢水)로 불리게 된다.

 

 

 

초기 [환인씨]는 한강 유역에 도읍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차차 기후변화와 문명전파를 위해서

후대 [환인씨]들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겼던 것으로 본다.

 

처음엔 한강을 한수(漢水)로 부르다가

대동강으로 도읍을 옮기고는 대동강을 한수(漢水)로 부른다.

 

그리하여 결국 한강과 대동강은 모두 한수(漢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한수(漢水)는 다른말로 [아리수]라 불린다.

 

아리수

아리의 물

알이의 물

 

아리안

알이안

알이 사람

 

알이 - 태양(알)같은 사람(이)  

 

아 - 떠오르는 해

하 - 다 떠오른 해

 

아 -> 안, 알

하 -> 한, 할

 

[한인(환인)]의 어원으로 보이는 [한이]라는 존칭이  

다 떠오른 밝은 해 (한) 같은 분(이)

즉 최고지도자를 뜻한다면

[알이]는 떠오르는 해같은 젊은 지도자를 뜻한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멀리 가지는 않는다.

젊은 지도자를 보낸다.

그래서 [알이]들은 세계로 퍼졌고

그들은 후에 [알이안(아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인들에게 전해진다.

 

그런데...알이안의 다른 이름... 

[환웅씨]

[환웅씨]는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를 원했던 젊은 지도자.

 

오랜 기간 역대 [환인씨]들은 세상에 문명을 전파하기 위해

많은 [환웅씨]들을 떠나보낸다.

 

그 [환웅씨]들 즉 [알이(아리)]분들의 고향에는

강이 있는데 

그 이름이 

아리수

 

즉 알이수...알이의 물

 

역사책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리수는 때로는 한강의 이름이고

때로는 대동강을 뜻한다.

 

그리고

아리랑 고개

알이랑 고개

 

고대 한국어에서 태양은 [아],[하],[라]로 불린다.

[랑]이란 [태양같이 밝은 사람]

 

아리랑은 슬픈 노래다.

왜?

떠나가니까.

 

알이, 알이랑이 떠나가니까.

한번 가면 살아생전 돌아올 기약이 없는 길.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그길을 간다. 꽃다운 [알이랑]들이.

 

[홍익인간 정신]은 단군왕검 훨씬 이전

[환인씨]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본다.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다 원래 있었던 것.

그래서 역사를 보는 것일 터.

 

삼국유사에는 [환인씨]는 [환웅씨]를 [삼위태백(三危太伯)]으로 보낸다.

 

 

백두산 의 옛 이름이 태백산

[삼위태백]의 태백은 백두산으로 본다.  

 

 

 

위의 [제1차 삼위태백]지역에는 고인돌도 많고

고인돌이 발전한 피라미드도 많다.

 

 

[압록강 유역의 피라미드들]

 

장군총 말고도

압록강 유역에는 저러한 피라미드들이 1만기 이상 있다.

그런데 중국당국은 저 피라미드들이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를 쳐왔다.

압록강 유역은 역사적으로 중국영역이라고 주장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를 쳐왔다.

 

그런데 동북꽁정이 먹혀들어간다고 생각했는지

탐원꽁정이라 이름을 바꾸더니

(탐원 - 근원을 찾는다.) 

 

최근 들어서는 압록강 유역에 [여명문화]라는 이름을 붙여가며

더욱 더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동북꽁정파가 [여명문화] 즉 [처음 시작한 문화]라는

이름 붙인 [신별유적]은 길림성 통화현에 있다.

물론 아직 그 유물들을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그런데 통화현은 집안시에 붙어있다.

 

위 집안(지안)시는 고구려가 도읍을 했던 곳.

 

그래서 동북꽁정파는 아래 고대 피라미드들을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쳐왔다.

이 피라미드들은 [압록강변 집안시]에 있는 것.

중국당국이 보수를 해서 새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오래된 것.

 

 

 

 

위 사진은 만주서부 홍산문명의 것.
피라미드 위 부분이 없어졌다.

 

 

압록강변 집안시에는 저런 피라미드들이 널려있는데
요하 홍산문명에는 몇개 없다.
어디가 원조일까.
 
그런데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들에 대해서는 
중국당국이 5천년 이상 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발표했다.

 

 

한반도에서 비교적 먼
즉 비교적 중국에서 가까운 홍산문명의 피라미드는
5천년 이상 전 것이라고 이미 발표한 중국당국이
 
그와 똑같은 형식의 [압록강변 집안시]의 피라미드들은
고구려때 거라고 사기쳐왔던 것.
 
그러다가 이제 슬슬 더욱 본색을 드러내며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의 유적을 
시작하는 문화 즉 [여명문화]라 이름 붙이며 
점점 더 한국고대사 납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백두산 꽁정]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감이 잡히시는가.
 
놈들은 이미 [제1차 삼위태백 지역]이 홍산문명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중국과 비교적 가까운 [홍산문명]에 대해서만
정보를 조금씩 흘리며
마치 거기가 압록강변보다 문명이 더 빠른 것처럼 사기치다가
 
이제는 점점 더 동북꽁정이 성공할 것 같아서인지
압록강변 고대사까지 삼키려고
압록강변 집안시 바로 위 통화현 문명에다가
여명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다가온 것이다.
[백두산꽁정]과 함께.
 
놈들의 꽁정은 이렇게 치밀하게 장기적으로 감행되어 왔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하고 있나.
정말 위험한 적은 보이지 않게 다가오는 적.
그리고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의 적.

 

 

 

[홍산문명]도 [삼위태백문명]이 전해진 것일 뿐.
 
문명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역시
아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고인돌 분포도]

 

 <내용출처 : 세계속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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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DNA분석

지구상에 퍼져 있는 모든 개의 조상이 1만 5,000여 년 전 동아시아에서 길들여진 회색 늑대

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위 이야기는 사실은 개들이 길들여진게 1만 5천년 전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개들이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 1만 5천년전이라는 얘기

즉 동아시아에서 개가 처음 길들여 진것은 그보다 더 이전이라는 얘기.)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는 최신호(22일자)에

“지금까지 개의 기원과 행태에 대한 수많은 추측만 난무했을 뿐 입증된 것은 거의 없었다”며

개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스웨덴 왕립기술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전세계 500종 이상의 개의 DNA를 분석한 결과,

동아시아의 개가 유전적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 지역의 개가 가장 오래 전에 가축화했음을 의미 하는 것이다.

또 오늘날 북미와 남미에 살고 있는 개와 과거 아메리칸 인디언이 길렀던 미국 토종개도

모두 이 지역 토종이 아닌 유라시아 동일 모계의 후손임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초기 인류가 1만 4,000년 전 베링 해협(러시아와 알래스카 사이)을 건너 미주 대륙에 정착할 무렵

가축으로 데리고 간 회색 늑대가 이들의 조상일 것으로 추정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원문-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161469&section_id=104&menu_id=104

 

 

[미국의 생물 교과서에 나오는 개의 기원]

 

아시아 동북부에 사는 늑대가 세계 모든 개의 기원이라는 설명.

위 미국교과서에 개의 기원지를 저 곳에 표시해놓은 이유는

 

1. 동북아가 개의 기원지다.

2. 세계 개들에는 모두 회색늑대의 유전자가 있다.

3. 세계 개들의 턱뼈와 같은 턱뼈를 갖은 늑대는

오직 [한국-중국] 붉은(황색)늑대 뿐이다.

이렇게 해서 개의 기원지가 저기 만주 서부에 [대강] 그려지게 되었다.

 

[회색늑대 서식지]

 

 

[아시아 붉은늑대 서식지]

위 그림에서 보이듯이

[회색늑대]와 [아시아 붉은늑대]가 다 사는 곳은

한반도와 만주 서부 뿐이다.

 

그래서 미국교과서에 만주서부가 개의 기원지라고 그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정확하지 않은 표기.

 

만주 서부(홍산문명)은 6천년전에 시작된문명. (약 6천년전~ 4천3백년전)

그런데 개는 1만5천년 전부터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대강 9천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개의 기원지는 홍산문명이 아니다.

개의 기원지는 고대 황해대평원 마문명

 

개가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1만 5천년전에

황해는 바다가 아니라 사람이 살기 좋은 대평원이었다.

당시는 빙하기라  만주는 지금의 시베리아처럼 추웠다.

사람이 살기에 안좋았다.

그러므로 문명은 만주보다 황해평원에서 먼저 생겼다고 보는 것이 맞고

당연히 개도 황해평원에서 처음 길러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모든 개의 조상은 약 10만년 전 동아시아의 늑대

 

[한국일보 2004-02-16 ]

 

모든 개의 조상은 약 10만년 전 동아시아의 늑대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찰스턴대 연구팀은 최근 미국과학진흥회(AAAS)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요크셔테리어처럼 작은 개에서부터 조랑말만큼 큰 아이리시울프하운드까지

모든 개는 하나의 조상을 갖고 있다”며

“그 조상은 바로 10만년전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인간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한

동아시아의 늑대들”이라고 주장했다.

연구팀의 데보라 린치 박사는

“길들여진 개의 출현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전의 일”이라며

“개들은 인간의 사랑과 보살핌에 대한보답으로 인간의 사냥을 도왔다”고 말했다.

린치 박사는 또 “동아시아에서 길들여진 개들은 인간이 이동한 경로를 따라

미주 대륙 등으로 건너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인류는 특정한 소질이 있는 개들을 선별해 교배 시키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사냥용, 목동용, 공격용 등 다양한 용도의 개들을 키웠다.

때문에 개는 형태, 크기, 색깔에서 종류가 가장 다양한동물이 됐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품종은 300종에 이른다.

린치 박사는 “인간이 어떤 목적으로 개를 사육했느냐에 따라 개의 모양이달라졌다”며

“실제로 대부분의 경비용 개가 검은 색깔인 점을 보면 그런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원문-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8&article_id=0000220375&section_id=104&menu_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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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료들이 보여주는 것.

 

1. 개가 처음 길들여진 것은 동북아시아

2. 약 1만 5천년전부터 개들이 사람들을 따라 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도개들은 [황색늑대]와 [회색늑대]의 

혈통이 동시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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