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락교수의 이야기 경제학-1]서양은 언제부터 우리를 앞섰나



어떤 사람들은 서양잣대로 볼 때 우리 것은 틀리므로 많이 뜯어고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외환위기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서양인들 중에는 서양 것이면 무조건 흉내내려고 하는 한국인들을 혼이 빠진 사람처럼 보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포겔 시카고대 교수는 얼마 전 서울에 와서 한국인들에게 서양을 똑바로 알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그렇게 모방하려고 하는 서양이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1750년부터라고 했다.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가 서양을 앞섰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서 그게 사실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그렇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
1750년 전까지는 동서양이 모두 농경사회였는데, 농경사회란 인간이 대자연을 상대로 열심히 농사짓는 사회이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거나 병들어 죽기 쉬운 사회인데,
이 점에서 동서양의 차이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인쇄술, 도자기, 화약, 침술, 측우기 등을 먼저 발명한 동아시아가 서양을 앞선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 교수인 윌리엄 보몰과 앨런 브라인더 교수도 서양은 그 이전 1500년간이나 경제성장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로버트 조지라는 동서양 문화 전문가는 ‘동서양의 시계추’란 책을 통하여
동아시아는 1750년이 아니라 1793년까지 서양을 앞서 있었다고 했다.
그는 종이의 발명과 사용에 있어서 동아시아는 서양을 1400년 앞서 있었고, 도자기는 1700년, 우산은 1200년, 성냥은 1000년, 혈액순환은 800년이나 앞섰다고 했다.
어떤 동아시아 문화 전문가는 중국은 이미 2000년 전에 비단으로 거의 2000 가지의 색깔을 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때의 동서양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많은 경제학자들은 서양이 동아시아를 확실하게 앞서기 시작한 해를 1776년으로 잡는다.
그 이유는 그 해에 애덤 스미스가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과학적 방법을 제시한 ‘국부론(國富論)’을 펴냈고, 영국은 그 처방에 따라 국력을 본격적으로 키운 결과 세계 최고의 강국이 되었다.




또한 그 해에 미국은 마침내 독립국가가 되어 세계 최강의 부국(富國)이 되는 첫발을 내디뎠고, 수백년간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비전 곧, ‘생명, 자유 및 행복(Life, Liberty and Happiness)’을 독립선언서에서 잘 밝혔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애덤 스미스의 처방을 그 이후 줄곧 잘 따랐다.
경제학이 학문으로서 자리잡은 것도 이때부터이다.


요약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들이 동아시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그 이유는 ‘국부론’의 과학적인 경제처방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동아시아가 서구선진국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 것은 우리의 사상, 인간성, 문화가 모두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이 처방을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도 1960년대부터 이 처방을 따른 결과 경제성장률 면에서 서양을 능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내용출처:한류열풍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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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에서 배달로

배달겨레 9200년 국통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

국조단군 영정



환국(桓國) 환인 계보 (7대, 재위년수 : 3,301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B.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B.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내용출처: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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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고고학협회,‘가짜유물’논란에 쐐기


일본 열도의 인류역사에서 전기 및 중기구석기는 없었던 것으로 일본 고고학협회가 최종결론을 내렸다고 일본언론들이 25일 보도했다.
고고학협회는 구석기 유적 날조 파문의 장본인인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전 도호쿠(東北)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 발굴한 구석기 유적에 대해 “학문적 자료로 다루기는 불가능하다”고 최종 확인했다.

이로써 약 7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일본열도의 인류역사는 4만∼5만년 전으로 뒷걸음질치게 됐다.

고고학협회는 후지무라 전 부이사장의 유적 날조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해 5월 구석기문제 조사연구특별위원회를 구성, 관련 유적들의 진위 여부를 조사해 왔다.

후지무라 전 부이사장은 전국 200여곳의 구석기 유적 발굴에 관여했으나 전기 및 중기 유적은 모두 학문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내용출처: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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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납토성의 저자 김태식씨께서 소개해주신 사이트입니다.

    교과서에서 다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 (history21.org)
    
http://www.history21.org

    
http://my.netian.com/~greatkan/frame.htm

2. 한국역사연구회
    
http://www.koreanhistory.org/
 

3. 인터넷 역사 연구회
    
http://myhome.shinbiro.com/~his96/korea.htm


4. 사이버 백제역사 문화관
    
http://paekche.provin.chungnam.kr/ie/index.html

5. 가림토의 역사여행
    
http://home.megapass.co.kr/~millg/

6. 우리역사 바로알기 시민연대
    
http://www.historyworld.org 

이 외에도 올바른 우리 역사를 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기관, 대학,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웹사이트가 많습니다.
좋은 웹사이트가 있으면, 서슴없이 정보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출처:한류열풍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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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되찾아야할 간도입니다. 2009년까지 되찾아야 하는데 ㅜㅜ 통일이 안 되서


<내용출처: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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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언스지에서 아주 흥미로운 논문 두편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농업과 언어의 전파"라는 논문이고
논문 저자 -( Jared Diamond and Peter Bellwood)





또 하나는 "헬리코 파이로린 박테리아의 유전자로 추적한 인류이동"이라는 논문입니다.

두편의 논문은 공교롭게도 지금으로 부터 1만2천년~8천년전 사이에 동북아로부터 어떤 집단의 세계적인 확산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의문을 품고 추적하던 문제에 직접 해명을 주는 논문이더군요...





▲농경기술의 전파와 언어이동






▲노란색 부분이 동아시아의 조상형 (헬리코 피로린 박테리아의 유전적분포)






맨위.. 동아시아 조상형으로서 한국인이 11개의 고립된 헬리코의 원시유전자를
독립적으로 보유 (아프리카나 유럽형 유전인자가 섞이지 않음)




특히 헬리코 파이로린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통한 인류의 이동 추적논문을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을 비롯 수메르지역의 이라크인들에게는 동아시아에서 고립되어



조상화된
헬리코 피로린의 원시 유전가 분포되어 있고 그 동아시아형 (EA형)의 고립된 시조는
오로지 한국인에게서만 100% 독립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입니다



번역]



5,000-year-old "Pyramid" Found in Inner Mongolia  



5천년전  "피라미드"를 내몽골(만주 북서부)에서 발견했다.



Chinese archaeologists has discovered a pyramid-shaped building, dating back more than 5,000 years ago, in the Inner Mongolia Autonomous Region, in north China.



중국 고고학자들은 중국북부의 내몽골 지역에서 5천년이상 된 피라미드 모양으로 된 건물을 발견하였다.


The "pyramid", located on a mountain ridge one kilometer north of Sijiazi Township in the Aohan Banner (county), is a three-storied stone building, with the bottom layer being more than 30 meters long and 15 meters wide.



이 피라미드는, Aohan Banner의 Sijiazi Township의 북쪽 1킬로미터의 산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3층의 돌로된 건물이고, 밑 바닥은 30미터가 넘고 폭이 15미터 이상 된다.



The "pyramid" belongs to the Hongshan Culture period of 5,000 to 6,000 years ago, according to Guo Dashun, a famous Chinese archaeologist who works in Liaoning Archaeological Research Institute.



Liaoning(랴오닝 - 요녕)고고학 연구소안에 일하는 유명한 중국 고고학자 "GuoDashun(구오다쉰)"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는 5천~6천년전 의 [홍산문화]에 속한다,



Seven tombs and ruins of an altar were found on the top of the "pyramid."

At the site of the altar there are many fragments of broken pottery carved with the Chinese character “mi" (rice).

Archaeologists said that the character "mi"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people's understanding of astrology in ancient times.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제단의 7개의 무덤과 유적을 발견하였다.

제단의 위치에 한자로 "Mi"(米 - 쌀)이 새겨져있는 많은 도자기의 파편들이 있었다.



In one of the tombs, archaeologists found a bone flute and a stone ring, and they unearthed a stone sculpture of a goddess the size of a human body in another tomb.



고고학자들은 무덤의 한곳에서 뼈대와 돌반지,

그리고 다른 무덤에선 사람 몸크기의 돌로 조각된 여신상을 발굴했다.



Archaeologists were surprised to find a stone-carved linga on the wall of a tomb and a small stone statue of a goddess below the linga in the same tomb.



동일한 무덤안의 돌로 된 벽에 새긴 Linga와 이 밑에 있는 작은 돌로된 여신상을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Archaeologist Guo said that many of the relics were first-time discoveries and they are of great significance in studying the burial customs, religious and sacrifice rituals, and the social structure of the Hongshan Culture.



고고학자인 구오(Guo)는, "유적의 많은 부분이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홍산 문화에서 그들의 매장풍습, 종교와 제사 그리고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의미이다." 라고 말하였다.



He pointed out, the discovery of the "pyramid" is also of great significance in exploring the origin of the Chinese civilization.



그는 피라미드의 발견은, 중국문명의 원류를 밝혀내는 중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The Hongshan Culture, belonging to the Neolithic culture, is mainly distributed in the juncture area between Inner Mongolia, Liaoning and Hebei provinces.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홍산문명"은 Liaoning(랴오닝)이 Hebei(허베이)성과 만나는 지역안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이역사학자가 한말 )중국은 황하 문명을 탈피해 다문화 원류로 역사를 개정해야한다고 했다


Q. 중국 장안유역의 피라미드는 누가 건설한 것인가 ?
단군조선(BC2333)보다 128년 늦게 출발한 중국최초의 나라 ‘하나라’ 이전 중국역사는 없습니다
오직 고조선 환국(이족/한국/한웅)의 역사가 있을 뿐입니다


→ 그렇다면 그 피라미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만년전 그땅에 누가 살았는가 ?



Q. 멕시코 마야문명의 피라미드 주인공은 누구인가 ?


→ 히스토리 채널을 보셨는지요? (history chanel)

현지인들의 증언 “피라미드는 서쪽에서 온 엉덩이에 푸른반점있는 사람들이 건설한것이다”(출처 히스토리 채널)



Q. 이집트 피라미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비흑인 침략자"


→ ‘편두’는 동이족의 가장큰 특징입니다(쌍각지/변발과 함께)편두는 신라에도 있는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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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터(?)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온 비흑인 침략자’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가.



"왕조시대 직전 이집트인들은 동방에서 온 새로운 종족에 의해 정복당했다"



- 영국의 이집트 학자 브라이언 에머리(영국)-

"고왕국의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아시아에서 황인 침략자" - 플린더스 페트리(영국)-


<내용출처: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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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한류열풍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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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제국이 건국된 기원전 30년대 당시 가림토를 한자와 함께 써온 비석이 있기에

그 비석의 구절을 검토하여 원문으로 추출된 자료들이 몇개 있었습니다.

예전에 인터넷 논문에서 찾았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군요.

그래도 그 원문 내용을 복사해서 보관해두고 있기에 여기 올립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 이마 모스기 하다라키가?

 

이번엔 반드시 성공하리라.

 

=> 이브늘 불휘히 사마시니라.

 

물을 마시고 프다.

 

 => 믓그늘 사맛다아.

 

아련히 신의 뜻을 거스를까 이몸은 두렵소이다.

 

=> 아르하듬 가미사메 트거스르메 오래완 모스게맛다.

 

모두 되찾아와야겠다.

 

=> 민나 다무라칸데쟈.

 

내 잃어버린 것이 있어 그것을 도로 가지러 왔다.

 

=> 비 아므러브나 헤토이테 다로미 가지메 지헤.

 

죽여주십시오.

 

=> 두문줄기 이시브르.

 

용서하십시오.

 

=> 다무이 어달라.

 

돌아가겠다.

 

=> 카에리다큿다.

 

이 중에 상당수가 일본어와 매치(match) 되던데 서역에서부터 이주해온 아랍틱한 외모의

기마민족인 맥족(돌궐족과 아이누족과 일맥상통)이 세운 고구려와 백제, 부여족 사람들이

자국 멸망 뒤 대거 일본 열도로 이주하면서 언어도 함께 정착된 것 같습니다.


<출처:사이버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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