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s 뉴스 화면캡쳐 : 위의 환단고기의 한사군 위치 지도와 비교해보십시요 >

“고조선 중국내륙에”

 

앵커: 고조선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더 넓었다는 학설이 제기됐습니다. 고조선 계통의 유물이 중국 요서 지방에서 출토됐습니다. 김성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기원전 108년, 한나라에 의해 설치된 한 4군은 지금의 평양의 낙랑, 오른쪽에 임둔 , 오른쪽에 진번 그리고 만주 동부와 함경도에 현도가 위치했는 게 통설입니다. 그런데 임둔 이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이 중국 요서지방인 요녕성 진시시(錦西市) 소왕대에서 발견된 사실이 최근 단국대 박물관 복귀대 박사의 논문에서 밝혀졌습니다.

 

공문서를 넣은 상자 등에 함부로 뜯어볼 수 없도록 진흙을 바르고 직인을 찍은 봉니가 바로 그 유물인데 규격과 서체로 볼 때 한의 중앙 정부가 인근 태수에게 보낸 것입니다. 더욱이 복리 출토 성토에서는 고조선 계통의 유물이 다량으로 나와 바로 이곳이 임둔 소재지임을 밝혀준다고 복 연구원은 말합니다. 임둔 이 요서지방에 있었다면 낙랑은 그 왼편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한 4군의 전신인 위만조선과 고조선의 위치가 한반도가 아니라 요하를 중심으로 한 중국 내륙쪽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인터뷰: 우리나라의 상고사인 고조선이 만주지역으로 비장이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럼 만주지역으로 비정이 된다고 할 때는 우리나라 상고사 전체의 틀이 한번 바뀔 수 있는 거죠.

 

기자: 이번 연구결과로 일제시대 일인학자들이 한반도 위치설의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했던 평양지역의 낙랑유물 유적부터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MBC뉴스 김성우입니다.


[김성우 기자]

 

 

 

 

 

김종서씨 “고조선-한사군 中대륙 깊숙한 곳에 위치”

 

 

출처 : [동아닷컴]2006.2.27일자 옮김

 


고대 한반도 북부에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 허베이(河北) 성 동쪽에서 랴오허(遼河) 서쪽으로 길게 자리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종서(51·중앙대 강사) 씨는 최근 중앙대 사학과 박사학위 논문으로 통과된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연구’에서 문헌 고증과 수학적 위치 고증방법을 통해 고조선과 한사군의 위치가 중국 대륙 깊숙한 곳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 논문에서 적용한 수학적 위치 고증방법은 중국 사서에 나오는 거리를 현재의 지도에 적용해 그 위치를 역추적하는 방법.


중국 한대의 역사서인 ‘후한서(後漢書)’의 군국지(郡國志)에는 당시 한의 수도였던 뤄양(洛陽·허난 성 서쪽의 도시) 동북쪽으로 5,000리에 낙랑군이, 4,000리에 현도군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한서(漢書)’의 무릉서(茂陵書)에는 장안(뤄양보다 더 서쪽에 있는 현재의 시안·西安)에서 6,138리에 임둔군이, 7,640리에 진번군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1리는 당대(唐代) 이후 0.393km로 고정된다. 그러나 한나라 시절, 1리가 얼마인가에는 논란이 있다. 김 씨는 위나라 기록에 등장하는 뤄양 및 장안과 현재까지 남아 있는 도시들의 거리를 비교해 한대의 1리가 현재 거리의 75% 미만일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한대의 기록과 현재 지도상의 거리 비교를 통해 한사군의 위치를 추정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평양지역으로 추정돼 온 낙랑군의 경우 중간에 산악지대가 하나도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랴오닝 성 서부 진저우(錦州)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 또 압록강 북쪽에 있었다고 알려진 현도군은 허베이 성 동쪽과 랴오닝 성 서부를, 황해도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진번군은 압록강 서북쪽을 넘어설 수 없다.


김 씨는 여기에 한대의 도로 굴곡지수를 감안할 경우 한반도에서 가장 멀었던 현도군은 현재 베이징(北京) 동북쪽 지역,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웠던 진번군은 랴오닝 성 서부 다링허(大凌河) 유역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1990년대 초반 랴오닝 성 진저우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라는 직인이 찍힌 봉니(封泥·공문서 등을 봉할 때 사용한 진흙덩이)가 발굴된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일치한다.


이 논문은 랴오허 동쪽의 만주와 한반도에서는 초기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지 않아 고조선의 실재를 뒷받침할 수 없다는 ‘물증 부족’의 비판에 대한 새로운 반론이다. 또 흥륭와, 홍산, 하가점 등 랴오허강 유역의 고대 신석기·청동기 문명과 고조선의 연관관계를 뒷받침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네이버 “한사군, 고조선 멸망전 한반도에 있었다”

[도깨비뉴스   2005-05-05 19:31:30]
 
 

 

[도깨비 뉴스]

 


'한사군(漢四郡)'이란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멸망시키고 그 곳에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으로 '낙랑군'·'임둔군'·'현도군'·'진번군'을 말한다고 중국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국내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고조선이 망하기 전 지도에 망한 후에 설치된 '한사군'중 '임둔'과 '진번'이 한반도 중북부지방에 있었던 것으로 표기되어 있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위 이미지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백과사전에서 '고조선(古朝鮮)'을 검색했을때 나오는 지도입니다. 지도의 이름은 '고조선의 위치'이고, '고조선'이란 붉은 글지가 대동강 오른쪽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글자의 위에는 '임둔'이 적혀 있고, 아래에는 '진번'의 오타인 '짐번'이 적혀 있습니다.

 

이 지도만 보면 마치 고조선이 망하기 전부터 한반도에 중국 한나라의 식민지격인 '임둔'과 '진번'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서' 등 중국 사서의 기록에도 나와 있듯이, '한사군'은 BC 108년 고조선 멸망 후에 설치된 것입니다. 또한 이를 두고 한국의 학자들은 "조작된 것이다" VS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중국 요서 지방에 있었던 것이다" VS "한반도 북부에 있었던 것이다"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으로 한사군은 아직까지 뚜렷한 실체 및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더하여, 연합뉴스는 2002년 "중국의 요서지방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라고 적힌 임둔의 봉니(封泥)가 출토되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었습니다. '봉니'란 고대 중국에서 공문서 등을 봉할 때 사용한 진흙덩이 를 말합니다. 당시 연합뉴스에 소개되었던 복기대 박사의 논문에는 "이 봉니는 한나라 중앙에서 임둔군 태수에게 보낸 것이 확실하고, 출토된 곳이 한사군 중에서도 임둔군에 속했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93~94년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진시시(錦西市)에서 출토된 임둔의 봉니 [연합뉴스]

 

이 복기대 박사의 논문으로 인해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고, 리포터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확인해 본 결과 현행 국정 국사 교과서에는 한사군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네이버 백과사전의 '고조선 위치' 지도에는 학계에서 인정하지도 않고 국사교과서에도 없는, 한사군 중 임둔과 진번이 각각 현재의 평안남도와 함경남도 부분에 표기되어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 지도는 고조선의 수도를 '왕검성(王儉城)'이 아닌 '완검성'이라고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왕검성'은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에 나오는 지명으로,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면서 만든 이름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왕검성'을 현재의 평양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리포터는 "혹시라도 '王儉城'을 중국어 발음으로 적어 놓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검색해 봤지만, '왕검성'의 중국어 발음은 '왕졘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완검성'이라고 지도에 표기해 놓은 것은 오타인 것이 확실합니다.

 


왼쪽 붉은 상자는 임둔의 봉니 출토 지역, 오른쪽은 네이버 백과사전에 표시된 임둔 지역

 

그렇다면, 고조선이 망하기 전인 이 지도에 진번과 임둔이 표기되어 있고, 오타가 적힌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네이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백과사전은 '두산 엔싸이버'에서 제공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두산 엔싸이버' 담당자는 이 지도에 대해 "80년대에 나온 두산세계대백과에 수록된 것이다. 당시에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바로 수정할 수 있냐"라는 질문에 "바로는 불가능하다. 최대한 빨리 수정하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중국은 고조선과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근거로 "한국의 역사가 중국의 식민지 '한사군'에서 시작되었고, 그 위치는 지금의 북한 지역이었다"라고 말하고 있고, 바로 이를 근거로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즉 네이버 백과사전에 올라온 지도는 중국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일조한 꼴이 되는 것입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어린 학생들도 많이 찾는 곳입니다. 이 지도를 보는 학생들은 한국 고대사에 혼란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지도 바로가기 : http://100.naver.com/media.php?type=image&media_id=1062&id=14543&dir_id=10020202

 

'임둔 봉니' 기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152227&menu_id=106

 

도깨비뉴스 리포터 아사달 youngkang21@dkbnews.com 

 

 

 

 

 

[주몽깨기]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드라마 주몽 1회는 정말 영화같이 시작한다 액션도 과감하고 판타스틱한 면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역사의 큰 틀은 있는 그대로를 그려야 하는 것이 제작자의 책임인 것을..

불행하게도 첫 도입부의 성우의 설명부터 우리나라 역사를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의 입맛에 맞게끔 제작되었다고 하는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주 무대가 되는 한사군 중 일부인 현토군이 그렇다.

주몽 드라마에 나오는 한사군 .... 그 중에서 드라마의 배경인  현토군은 어디에 있는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한 한사군의 위치

안타깝게도 위의 지도와 드라마 화면과 동일하다 ㅠㅠ

 

 

 

 

위 사진은 환단고기에 나온 한사군의 위치라는 군요.

 

 

 

 

 

참 신기하다.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과 위의 '임둔'이란 글자가 새겨진 봉니가 출토된 지역이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위치와 거의 일치한다.

 

 

 

 

 

 

 

 

 

 

하여튼 주몽은,, 정말,,,,

 

 

 

 

 

 

 

 

 

 

 

 

 

 

 

 

 

 

 

 

그리고 위 논쟁과 상관 없는 건데,,,

 

 

 

 

 

 

 

 

 


고조선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의 3조선으로 분류되는데 빨라야 BC 15세기에 청동기문명이 시작되었다면 BC 23세기에 수립된 단군조선은 자연히 허구가 되고,우리 역사는 기자,위만 등 중국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중국인들이 만주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한들 현행 교과서를 가지고는 반박의 논리가 궁색하다.

그러나 현재 단군조선의 중심지였던 만주지역에서는 BC 20세기 이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청동기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서 단군조선이 역사적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행 국사교과서는 이런 내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국민들의 역사관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우리 사학계에 팽배해 있는 친일사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반성을 통해 단군조선의 문제도 현재의 신격화차원에서 탈피해 한반 도 및 한반도 북부에 실존한 국가라는데 대한 연구 범위를 확대해야한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

우리 스스로 왜곡시킨 국사 교과서로 인하여 우리는 단군조선의 역사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있습니다현재 우리의 교과서가 그런 지경이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학술적인 반발도 제대로 못하고잇는 실정입니다 단군조선을 인정해야합니다 고조선이 세워졌다 카더라 라고 하는 추측적인 역사서술이 아니라
진정 우리땅에 있었던 실증의 역사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

아래의 천문학적 근거 하나만으로도 단군조선은 실제있었던 역사로 인정받아야 하며 환단고기는 사서로써 마땅히 검토되어야 합니다 .


TV책을 말하다 -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편



박창범 교수는 기록에 나타난 기원전 1733년을 기점으로 전후 약 550년 동안의 오행성의 결집 현상을 조사한 결과 기록보다 1년 전인 기원전 1734년에 오행성 결집 현상을 발견했다. 이 해 7월 13일 초저녁 다섯 개의 별이 지상에서 볼 때 약 10도 이내의 거리에 모여 있었다. 1년의 오차는 3700년 전과 현재의 시간계산법의 차이로 생기는 오차로 거의 정확한 수치이다. 천문기록은 당시의 국가라는 틀 안에서 측정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후대에 누군가가 이 현상을 작위적으로 기술했을 경우 정답이 될 확률은 0.007퍼센트로 가필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단기고사(檀紀古事)』와 『檀君世紀』의 신빙성도 함께 증명된 셈이다.




기원전 1733년 7월 13일의 오행성 결집 현상. 『단기고사』와 『단군세기』에 기록된 오행성 결집 현상이 사실로 판명됨으로써 이들 기록의 신빙성이 증명되었고 당시의 고조선이 강력한 국가의 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문기록으로 보나, 임둔 위치를 거의 정확히 묘사한 거나,,,  환단고기를 그냥 위서로 치부할 만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단순히 우리가 배워왔던 내용과 달라서? 그렇다면,,, 할말 없고요..

 

물론 확인이 불가능한 것도 있겠지만 저위 임둔의 위치나 천문기록 같은 것은 정말 연구해야할 만한 가칠를 지니고 있는데,,

 

 

위서라 치부하고 완전 거기 나온 건 다 뻥으로 몰아부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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