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민족의 국통과 신교문화

우리 민족의 뿌리역사 왜곡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를 개척한 주인공의 인물사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인물사가 모두 신화로 채색되어[환국-배달-고조선-북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뿌리 역사에 관한 내용이 송두리째 빠져 있습니다. 왜곡된 한민족사를 바로 잡는 핵심명제는 끊어져 버린 우리의 국통과 신교 문화 의 도통맥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환인은 동서 시원문화의 뿌리조상이며, 백두산에 오시어 동방문명을 개척한 환웅은 한민족사의 시조신이며, 단군은 한민족 문화시대를 뿌리내린 분 입니다.
따라서 한민족사의 국통맥은 [ 환국 - 배달 - 조선 - 북부여 - 고구려.백제.(전)신라.가야 - 대진국(발해). 통일신라(후신라) - 고려 - 조선 - 임시정부 - 대한민국 ] 입니다.


 

한민족과 인류문명의 뿌리 - 환국(桓國)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는 천산(天山) 동방에 자리한 광역동방문명권의 환족(桓族)입니다. [삼국유사] [고조선기]에 도 우리 민족의 시원역사에 대해, [석유환국(昔有桓國)] 즉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민족의 문명뿐 아니라 동.서 인류문명의 뿌리되는 세계 최초의 시원문명국가는 '천산(天山, 7200m )의 동방'에 위치한 광명의 나라, [桓國]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류의 아버지 문명인 환국은 시베리아 전역에 위치하고 있었 으며, 남북 5만리의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 옵니다. 이 환국의 문화는 인류문명사의 제 2변기라 할 수 있는 약 6천년 전, 기후변동에 따른 인류의 이동과 더불어 동서 사대문명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 황하)으로 흘러 들어 갔습니다.

동방 한민족사의 기원 - 배달국(倍達國)

동서 4대문명권은 본래 약 1만년 전의 환국으로 부터 분기해 나간것입니다. 그런데 이 환국의 정통정신을 계승한 인물은 누구 일까요? 환국 말경에 환인(환국의 통치자)은,
'서자부(庶子部)의 수장(首長)인 환웅에게 인간을 널리 구제하라는 명(命)을 내리시어, 동방의 태백산으로 파견하였습니다. (일연, 삼국유사, 고조선기 참고)
원시의 미개생활을 하던 동방 땅의 인간을 널리 개벽시켜 구제하고 싶은 간절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환웅은, 환인 께서 종통계승의 신권의 상징으로 내려 주신 천부인 3개와 동방문명 개척단 3천 명을 이끌고, 동방의 태백산에 정착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1대 배달 환웅은 원주민인 웅족(熊族)과 호족(虎族)을 통합하여, 3천 명을 이끌고, 동방의 태백산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제1대 배달 환웅은 원주민인 웅족과 호족을 통합하여 3천명의 문명 개척단과 함께 수도를 신시에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 아닌 토템사상에 의해 족호를 나타낸 것임] 이때 환웅천황은 신교 신앙을 기반으로 신시에서 배달나라를 일으키고, 백성에게 천경신고(天經神誥:천부경과 삼일신고)를 가르치고 삼신상제(三神上帝)님의 진리로 백성을 교화하였습니다.


동아문명의 종주 - 단군임검의 고(古)조선시대

고조선의 시조 단군성조는 배달의 말기, 신묘(辛卯, 서기전 2370)년 5월 2일에 탄생하였습니다. 신인(神人)의 덕으로 원근(遠根)에서 친송을 받아오던 단군성조는 38세 되는 무진(戊辰, 서기전 2333)년에 배달국 말기의 혼란을 바로 잡고 아사달에서 천제로 추대되어 제위에 오르셨습니다.
단군성조는 환국과 배달국의 정통정신을 계승하여 옛 신시(神市)의 신교(神敎)정신을 크게 부흥시킨 분입니다. 이 신교 문화는 한민족 고대문화사상의 총결정체로서 고조선 문화의 정치제도, 종교신앙, 경제, 풍속, 지리와 당시 동북아의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관건이 되는 열쇠 입니다.
고조선 시대는 동방문명권을 통일하고 '황하.양자강 유역, 만주, 한반도'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통치한 한민족 사의 최대의 전성기 였습니다. 단군성조는 고조선의 전 영토를 삼한(三韓:진한,번한,마한)으로 나누어 진한(만주)은 단군전체가 직접 통치하고, 마한(한반도)과 번한(요서,북경일대)은 부단군격인 왕을 두어 다스렸습니다. 당시의 요임금 과 그를 계승한 순은 단군성조 관경(管境)의 제후였습니다.
단군의 고조선 왕조는 모두 47세 단군 열조가 2,096년동안 다스렸습니다. 이 시대가
바로 동아시아 전역을 광역동방 문화권으로 묶어두고 통치한 고대 한민족사 최대의
전성기이며 유.불.선.기독교 문화의 뿌리인 삼신 신앙의 신교문화 융성기였습니다.

<내용출처:한류열풍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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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 상계신(환인) 중계신(환웅) 하계신(단군)이 몸붙여 의탁할 곳이 없나니 환부역조하지말고 잘 받들기를 글로써 이렇게 경계하노라.(도전 5:259:20)

한민족사의 국통

1. 삼성조시대

환국(환인)서기전7199~3898(3301년)
배달(환웅)서기전3898~2333(1565년)
조선(단군)서기전2333~ 238(2096년)

2. 열국시대

북부여 서기전239~58년
남삼한-마한,변한,진한(서기전194~서기8년)
최씨낙랑국(서기전195경~서기37년)
동옥저

3. 사국시대

고구려(서기전58~서기688)
백제(서기전18~서기660)
신라(서기전18~서기668)
가야(서기42~서기532)

4. 남북국시대

대진국 발해(668~926)
통일신라(후신라,668~935)

5. 고려(918~1392) 요,금,원

6. 조선(1392~1910) 청

7. 임시정부(1919~1945)

8. 남북분단시대

대한민국(1948~)

북한(1948~)


 

<내용출처:한류열풍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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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국에서 배달로

배달겨레 9200년 국통

고조선의 삼한관경(三韓管境)

국조단군 영정



환국(桓國) 환인 계보 (7대, 재위년수 : 3,301년)

1대 안파견(安巴堅) 환인(B.C.7199)
2대 혁서(赫胥) 환인,
3대 고시리(古是利) 환인,
4대 주우양(朱于襄) 환인,
5대 석제임(釋提任) 환인,
6대 구을리(邱乙利) 환인,
7대 지위리(智爲利) 단인(檀仁이라고도 한다)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재위년수 : 1,565년)

1대 거발한 환웅(居發桓, 94, B.C 3897, 120세, 일명 배달 환웅)
2대 거불리 환웅(居佛理, 86, B.C.3803, 102세)
3대 우야고 환웅(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모사라 환웅(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태우의 환웅(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다의발 환웅(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거련 환웅(居連, 81, B.C.3320, 140세)
8대 안부련 환웅(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양운 환웅(養雲, 96, B.C.3166, 139세)
10대 갈고 환웅(葛古 또는 독로한(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 거야발 환웅(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 주무신 환웅(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 사와라 환웅(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 자오지 환웅(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 치액특 환웅(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 축다리 환웅(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 혁다세 환웅(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 거불단 환웅(居弗檀, 48, B.C.2380, 일명 단웅(檀雄), 82세)



단군조선 단군 계보 (47대, 재위년수 : 2,096년)

가. 송화강 아사달(하얼빈)시대: 초대 단군임검∼21세 소태(蘇台) (B.C.2333∼1286 : 1048년간)

1대 단군 임검(王儉, 93, B.C.2333)
2대 부루 단군(扶婁, 58, B.C.2240, 태자)
3대 가륵 단군(嘉勒, 45, B.C.2182, 태자)
4대 오사구 단군(烏斯丘, 38, B.C.2137, 태자)
5대 구을 단군(丘乙, 16, B.C.2099, 羊加)
6대 달문 단군(達門, 36, B.C.2083, 牛加)
7대 한율 단군(翰栗, 54, B.C.2047, 羊加)
8대 우서한 단군(于西翰, 8, B.C.1993, ? )
9대 아술 단군(阿述, 35, B.C.1985, 태자)
10대 노을 단군(魯乙, 59, B.C.1950, 牛加)
11대 도해 단군(道奚, 57, B.C.1891, 태자)
12대 아한 단군(阿漢, 52, B.C.1834, 牛加)
13대 흘달 단군(屹達, 61, B.C.1782, 牛加)
14대 고불 단군(古弗, 60, B.C.1721, 牛加)
15대 대음 단군(代音, 51, B.C.1661, ? )
16대 위나 단군(尉那, 58, B.C.1610, 牛加)
17대 여을 단군(余乙, 68, B.C.1552, 태자)
18대 동엄 단군(冬奄, 49, B.C.1484, 태자)
19대 구모소 단군( 牟蘇, 55, B.C.1435, 태자)
20대 고홀 단군(固忽, 43, B.C.1380, 牛加)
21대 소태 단군(蘇台, 52, B.C.1337, 태자)

나. 백악산 아사달시대 : 22세 색불루(索弗婁)∼43세 물리(勿理) (B.C.1285∼426 : 860년간)

22대 색불루 단군(索弗婁, 48, B.C.1285, 욕살 고등의 아들로 우현왕을 거쳐 단군으로 즉위)
23대 아홀 단군(阿忽, 76, B.C.1237, 태자)
24대 연나 단군(延那, 11, B.C.1161, 태자)
25대 솔나 단군(率那, 88, B.C.1150, 태자)
26대 추로 단군(鄒魯, 65, B.C.1062, 태자)
27대 두밀 단군(豆密, 26, B.C.997, 태자)
28대 해모 단군(奚牟, 28, B.C.971, ? )
29대 마휴 단군(摩休, 34, B.C.943, ? )
30대 내휴 단군(奈休, 35, B.C.909, 태자)
31대 등올 단군(登 , 25, B.C.874, 태자)
32대 추밀 단군(鄒密, 30, B.C.849, 아들)
33대 감물 단군(甘物, 24, B.C.819, 태자)
34대 오루문 단군(奧婁門, 23, B.C.795, 태자)
35대 사벌 단군(沙伐, 68, B.C.772, 태자)
36대 매륵 단군(買勒, 58, B.C.704, 태자)
37대 마물 단군(麻勿, 56, B.C.646, 태자)
38대 다물 단군(多勿, 45, B.C.590, 태자)
39대 두홀 단군(豆忽, 36, B.C.545, 태자)
40대 달음 단군(達音, 18, B.C.509, 태자)
41대 음차 단군(音次, 20, B.C.491, 태자)
42대 을우지 단군(乙于支, 10, B.C.471, 태자)
43대 물리 단군(勿理, 36, B.C.461, 태자)

다. 장당경(開原) 시대 : 44세 구물(丘勿)∼47세 고열가(古列加) (B.C.425∼B.C.238 : 188년간)

44대 구물 단군(丘勿, 20, B.C.425, 욕살) : 나라 이름을 대부여라 고치고 三韓을 三朝鮮으로 개정
45대 여루 단군(余婁, 55, B.C.396, 태자)
46대 보을 단군(普乙, 46, B.C.341, 태자)
47대 고열가 단군(高列加, 58, B.C.295, 대장군)

계해 58년(B.C.238) 단군조선을 폐관하고, 이후 6년간 오가(五加)들이 함께 다스린다.

 

<내용출처: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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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공정은 동이의 상고사 침탈전략이다

그들은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우리의 민족사서인 한단고기를 연구해 왔다
일본은 이미 1980년대에 연구를 하여 자국역사화 하였고 ...

우리만 위서라 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비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바보들이 어디 있는가 ?

천벌을 받을 짓들이다....


(기존 게시물)


이내용은 1993년도에 발표된 내용이다

일월선인 님의 "중국의 동북아 고대사 약탈 프로젝트 배경 분석" 내용처럼
그들은 이미 오래전 부터 우리의 "한단고기"를 입수하여 이미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료를 소개해주신 오정윤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오정윤) 1990년대부터 중국은 "한단고기"를 연구/인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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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출처:한류열풍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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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존재 인정" 단군 관련 史書 日왕실도서관에 가득

일제(日帝) "단군 존재 인정"

총독부시절 문헌 발견

   일제시대 일본이 단군의 존재를 인정한 자료와 함께 단군에 대해 종합적으로 연구한 문헌 3권이 발견됐다. 서지학자 이종학(李種學ㆍ독도박물관장) 씨는 2일 단군 존재를 인정한 이왕직(李王職)의 문서 일부(9쪽)와 단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은 조선총독부 중추원(中樞院) 발행 조선사료(朝鮮史料) 3권을 공개했다.

   이왕직이란 일제시대에 조선왕족의 재산 등을 관리하던 기관. 이 기관에서 1938년 발행한 제목ㆍ필자 미상의 문서 중 종묘(宗廟)의 기원 부분에 "단군은 정사(正史)에 전하지 않아 설 이 분분하지만 단군에 대한 기록을 사실로 본다"며 "특히 사마천의 기록과 삼국유사ㆍ동사 고기 등 많은 역사서를 참고해 볼 때 단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공개된 조선사료 중 '단군조선(檀君朝鮮)' '단군건국설(檀君建國說)' '기자조선(箕子朝鮮)' 편은 단군의 출생과 이동, 그리고 신화의 구체적인 내용 등을 삼국유사ㆍ동국통감ㆍ동사강목 등 다양한 역사책을 바탕으로 총정리 해놓고 있어 일제의 단군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반영한다.

  李관장은 "한반도 강점 후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던 일제가 발행한 문서에 단군의 존재가 인정돼 있는 것은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1999년 10월 3일자 10면  



2."단군 관련 史書 日왕실도서관에 가득"

일제시대 관련 책자 분류작업 박창화씨 해방후 최기철 서울대 명예교수에 증언

   한민족의 뿌리가 되는 '단군조선'의 실체를 알릴 자료가 어딘가에 쌓여 있다면 우리 상고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상고사에 관한 국내의 기록은 수많은 전란(戰亂)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되고 삼국유사 등 일부 서책에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단군조선에 관한 책들을 몽땅 약탈해 태워버렸다는 설까지 있다. 해방 후 출간된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나 '제헌국회사' 등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명령에 의해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말까지 1년2개월 동안 고사서 51종20여만권을 약탈 했으며, '단군조선'에 관한 서적 대부분이 이때 소실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일본 궁내청 쇼료부(書陵部:일명 황실도서관)에 '단군조선'과 관련된 책들이 쌓여 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관심을 끈다.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자료에 목말라 하는 상고사 연구자들에겐 '단비'와 같은 소식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주장을 한 사람은 1962년에 사망한 박창화(朴昌和) 씨, 1933년부터 12년간 쇼료부에서 우리 상고사 관련 사서를 분류하는 일을 담당했던 朴 씨는 해방 후 이 사실을 최기철(崔基哲) 서울대 명예교수(담수생물학연구소장)에게 털어놨으며, 최근 崔 교수가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1900년초 한성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충북 영동(永同)소학교와 배제고보 등에서 역사를 가르친 朴 씨는 한국상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쇼료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한다.

   崔 교수는 "내가 청주사범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1945년에 朴 씨를 역사교사로 채용했으며, 그 후 쇼료부에 단군조선 관련 서적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으나 나와 전공이 무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며 "당시 朴 씨가 쇼료부에서 읽었던 단군조선 관련 서적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으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쇼료부 소장본들은 목록으로 정리된 것들만 접근이 가능해 朴 씨의 말이 사실이라도 확인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새로운 한ㆍ일 교류의 시대를 맞아 일본측이 쇼료부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면 몰라도.
 
김국진 기자<KOOKJIN@JOONGANG.CO.KR> 중앙일보 1999년 12월 6일자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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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인정한 일본 문서 발견

한국 강점후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던 일본이 사실상 단군을 인정한 문서가 발견됐다.
서지학자 이종학(73) 씨는 개천절을 앞둔 2일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왕실의 재산, 문화재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이왕직이란 기관이 발행한 문서 9쪽을 공개했다.
이왕직 장관을 지낸 시노다 지사꾸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는 소화 13년(1938년) 8월 이왕직에서 발행한 것으로 적혀있고, `종묘의 기원'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이 문서는“단군의 사실여부에 관한 분분한 의견이 있으나 단군에 대한 기록이 사실임을 확신한다”면서, 단군의 근거로 “사마천의 사기 등 많은 기록과 동사고기, 삼국유사 등에서 단군에 대한 기록이 이미 있었다”고 주장했다.
문서는 또“배씨와 기씨 등 조선내 일부 가문의 족보에도 단군 개국설을 인정하는 기록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경성제대 총장을 역임했던 시노다 지사꾸는 조선역사에 정통했던 일본인이었다”며 “자료는 한반도 강점후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던 일제의 역사 왜곡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기록한 조선사료 중 3권을 공개하고 “조선사료에 단군의 출생과 사망, 유적, 평론 등과 단군건국에 관한 내용들을 상세하게 기록한 점으로 미뤄 당시 일본이 단군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수원=연합]
1999.10.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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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얼마나 우리역사를 왜곡하고자 노력했는지

다시한번 알았으면 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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