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19일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 제독(李舜臣提督;1545.3.8.- 1598.11.19)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투중에 54세를 일기로 순국하신지 4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여러 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 해전(世界四大海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 B.C. 480년 그리스의 데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제독의 살라미스(Salamis)해전

- 1588년 영국 하워드(Howard) 제독의 칼레(Calais) 해전

- 1592년 거북선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李舜臣) 제독의 한산대첩(閑山大捷)

- 1805년 영국 넬슨(Nelson) 제독의 트라팔가(Trapalgar) 해전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순신 제독의 승리는 가장 값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07년 막강한 러시아 극동함대(露西亞 極東艦隊)와 싸워 이김으로써 전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의 토고제독은 주위에서 그를 이순신 제독과 같은 위인이라고 칭송하자 이에
“나의 공로를 영국의 넬슨 제독에 비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순신 제독의 업적에는 따라갈 수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를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서 구한 세계적인 위인으로 존경 받고 있으며, 그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거북선(龜船)은
미국 워싱톤의 전쟁기념관 (War Memorial Museum), 영국 해사박물관(Maritime Museum), 중국, 독일, 불란서,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역사기념관(歷史紀念館)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순신제독 관련 말말


글은 조금 오래된 글입니다...

읽어보면 꽤, 흥미로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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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부터 장군으로서 奇正分合의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全으로써 그 分을 쳤다'라고 하는 것도 이 뜻에 틀림없다. 그런데 해군장군으로서 이를 살피면 먼저 동양에 있어서는 한국의 장군 李舜臣, 서양에서는 영국의 장군 넬슨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이순신은 실로 蓋世의 海將이다. 불행히도 생을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勇名도 智名도 서양에 전하지 않고 있지만, 불완전하지만 임진왜란에 관한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 장군이다. 서양에 있어서 이에 필적할 자를 구하면 확실히 네덜란드의 장군 로이텔(Ruyter Michiel, 1607~1678) 이상이라 하지 않으면 안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 없다. 이 李장군은 실로 長甲艦의 창조자이며 300년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전술로써 싸운 戰將이다. 야간의 경계법이라든가 또는 '붐스'의 응용이라든가 실로 감복할 것이 많다. 사람들은 방어수뢰를 공격수뢰로 전환한 우리 해군의 큰 업적을 떠들 것이나, 이것은 과연 후세에 전하여 자랑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어찌 알랴, 李장군은 이미 300년전에 '붐스'를 공세작전에 이용했던 것이다. 벽파정에서 管正陰의 전사는 이 소식을 전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여간 이 蓋世의 해장 이순신은 견내량의 해전에서 확실히 포위, 집중포화의 전술을 썼다고 보인다."
(해군대좌 사토오 데츠다로, '帝國國防史論', 1908)

"이순신은 서양 사학가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로 하여금 넉넉히 위대한 해군 사령관 중에서도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 원칙에 의하여 항상 鼓舞된 통솔 정신을 겸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전투에서도 그가 참가하기만 하면 승리는 항상 결정된 것과 같았다. 그러나 그의 물불 가리지 않는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강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신중을 기하는 점에서 넬슨과 공통된 점이 있었다. 영국인으로서는 넬슨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기란 항상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인정될 만한 인물이 있다면 그는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고 전투 중에 전사한 이 위대한 동양의 해군 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영국 해군 준장 G.A.Ballard, The Influence of the sea on the political History of Japan, New York, 1921)

위 두 글은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의 전략 전술'(문화관광부-전쟁기념관)에 있는 글들입니다.



"저를 넬슨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나 이순신 장군과는 감히 비교할 대상이 못됩니다. 무릇 전쟁에서 군인의 몫은1%요 국민의 단합된 힘이 99%입니다. 넬슨은 온 국민의 성원과 지지를 받으면서 전쟁을 치렀고 이순신 제독은 온갖 시기와 모함을 무릅쓰면서 싸웠습니다. 이 점 하나만 보더라도 저는 이순신 장군의 비교 대상이 못되며 그분(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전략도 제가 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도고 헤이하치로 연합함대 사령관, 동해해전 승전축하 리셉션에서)

이 말은 아주 유명한 말이죠. 이 글 출처는 엉뚱하지만 애니메이션 잡지 '모션'이 난중일기를 소개하면서 덧붙인 글입니다.



"세계제일의 해군 장군인 조선의 이순신을 머리에 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 능력, 그의 계략, 그의 용맹, 그 모든 것이 최고라고 진심으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가와다 이시오 소좌, 동해해전 직전 이순신 장군 영정에 빌며 한 말)

이 말은 '일본인이 쓴 조선왕조 멸망기'(가다노 쯔기오 저) 라는 책에 나옵니다.

이 글은 하이텔 군사동호회에서 퍼온 글입니다. 저자는 김정민이란 분입니다. 저자께는 허락받지 않고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외국인들이 알고있는 이충무공
언젠가 홈월드(우주에서 함대전을 벌이는 벌이는 3차원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입니다) 에서 영국인들을 본 적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사람이라고 했던가.
대단한 고수들이었다. 하이퍼 스페이스를 이용한 신출귀몰의 게릴라전과 스트라익
크래프트의 능숙한 운용술. 나는 4번중 그들에게 3번을 맥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마지막판에서 이를 악물고 플레이하는 나에 대해서 그들은 대단해 하는
눈치였다.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내가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나는 솔직히 한국인이라고 하는것이 부끄럽기가 그저없었다. 베틀넷에서의
한국인들의 행패. 그들이라고 모를리 없다. 전세계 게이머들이 알고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이라고 정직히 대답했다. 다음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이러한 것이었다.
"do ya know Admiral Yi sun shin"
그의 황당한 질문에 나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었지만 그는 분명 이충무공에 대해
묻고있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안다고 대답했다. 한국인이라면 이충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또한 일본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거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있은후 우리는 한참동안 이충무공에 대해 토론했다. 정말, 생각만 해도
경이롭고,신비스런 일이다. 넬슨이라면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더라도 서양에서
이충무공을 알고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 파트너였던 사람
역시 이충무공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름만 들어봤다고 했고, 나에게 처음
그 질문을 던진 사람은 한국인보다야 못해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학익진도 알고 있었다.
마지막판에서 나의 극적인 승리도 그의 주력함대가
학익진에 완전히 넘어가 버린 탓이었다. 그는 홈월드 최강의 화력이라 할 수 있는
헤비크루저를 무려 13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밖에 미사일 디스트로이어 몇대와
아이언프리깃까지 거의 40대에 육박하는 대규모 함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에비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미사일 디스트로이어 24대,아이언 프리깃 10대. 나는
언제나 학익진을 시작할 때 처럼 어택버머를 회피모드로 놓고 적 함대를 해집고
다녔다. 에너지가 떨어진 유닛은 즉각 가미가제를 시키면서 계속 유린하자 은근히
화가난 그는 주력함대와 스카웃 수십기를 이끌고 나를 뒤쫓았다. 그러다 내
주력함대가 언뜻 보였지만 그리 당황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길수 있다고
자신했는지 그는 함대를 월 대형으로 해 놓고 그대로 돌진해 왔다. 나는 계속
도망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모든 함대를 학익진으로 돌렸다.
다행히 그의 스카웃은 적극적 모드로 되어있었는지 미사일 디스트로이어가
뿜어대는 미사일에 모두 격추되었고,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포트 프리깃 몇대와
세부대로 이루어진 멀티건 콜벳 수십대로 완전히 감싸버렸다. 처음엔 자신만만하던
그도 이렇게 넓게 포위되어 버리자 완전히 굳어버린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미사일
디스트로이어가 그에비해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포위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훨씬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헤비크루저가 많았지만 공격범위로 치면 미사일
디스트로이어에 비해 훨씬 불리하다. 결국 학익진 대형을 넓게 잡았던 나는 월
대형으로 밀집해 있던 그의 함대를 철저히 유린할 수 있었다. 이에는 뒤에서 포위를
한 세부대의 멀티미사일 콜벳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내가 제일 처음으로 노린것은
역시 몇기의 미사일 디스트로이어. 아이언 프리깃으로 그의 미사일 디스트로이어를
하나하나 찍으니 디스트로이어들은 금방 괴멸하고 말았다.
남은 함선들,특히 헤비크루저들은 선회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뒤에서 멀티건
콜벳이 쉴세없이 쏴 대는 포에 그대로 다 맞아줄 수 밖에 없었고 나는 결국 미사일
디스트로이어 10대정도만을 잃고 승리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쓴 이 전술을 알고 있다고 했다. 책에서 얼핏봤던 동양 최고의
해군전술가 이순신의 'harpy wing' 대형이 아니냐고. 하피 윙이라. 학익진이 그렇게
알려져 있었나. 진짠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충무공에 대한 극찬을 들으니 기쁘기가 그지없다. 그저 우리나라에서만
최고의 전술가라고 평하는 이충무공이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외국에서도 넬슨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 생각만 해도 흐뭇한 일이다.
그의말에 따르면 유럽의 많은 해전전술가들이 이충무공을 넬슨보다 한수 위라고
평하고 있다는데 그게 진짠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럼 모두들 즐통세요^^


 

<내용출처:한류열풍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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