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의 탄생지]

 

백인의 탄생지는 스웨덴의 베네른호수와 베테른호수 주위로 추정된다.

세계학자들의 유전자연구로 보면 현생인류는 약 2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생겨나서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빙하기가 닥치고 북유럽은 얼음벌판이 되었다.

원래 호수(물) 주위는 비교적 덜 춥고

온천이 많을 경우 인간의 생존이 가능하다.

 

 

                         얼음벌판

 

얼음벌판               호수               얼음벌판

 

                         얼음벌판    

 

 

빙하기 때 [바이칼리안(밝할인)]이 바이칼 호수에 고립되어

가는 눈, 큰 광대뼈, 두터운 눈꺼풀 등 고유의 특성이 생겨났고

그들이 남하하여 한민족의 뿌리 중 큰 축이 되었듯이  

빙하기 때 스웨덴의 베네른호수와 베테른호수 주위에서

오래도록 고립되어 살던 사람들이

머리카락과 피부의 색깔이 탈색되고 (흰머리, 흰피부)

눈동자 색깔도 달라지는 등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원조 백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겠다.

 

 

위 그림처럼 탈출한 밝할인(바이칼리안)들이

남하하여 동북아로 퍼져나갔듯이

 

백인들 역시 스웨덴을 탈출하여

남하하여 유럽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백인들의 이동]

 

이렇게 퍼져나간 백인들은 당시 [중부유럽, 납부유럽 원주민]들과 만난다.

당시의 [중부유럽, 납부유럽 원주민]들은 지금의 백인들과는 많이 다르고

차라리 지금의 아프리카원주민들과 더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자생적인 고대문화가 생겨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흔히 그리스문화를 유럽문화의 시초로 보는데

그리스문화 역시 동방 즉 아시아의 문화가 들어와서 생겨난 것.

예를들어 그리스인들은 특이하게도 머리가 [단두형(短頭形)]

 

[단두형(短頭形)]은 비교적 뒤통수가 덜 튀어나와서

비교적 공모양에 가까운 둥그런 머리통을 말한다.

유럽에서 [단두형(短頭形)] 머리는 거의 그리스에서밖에 발견되지 않는다.

([장두형(短頭形)]은 뒤통수가 많이 튀어나와서 뒤로 길쭉한 머리통)

 

세계적으로 [단두형(短頭形)] 머리통 즉 비교적 둥근 머리통은 

주로 아시아 사람들 중에서 나타난다.

특히 대표적인 사람들이 한국인들.

 

[단두형(短頭形)] 머리통 즉 덜 길쭉하고 비교적 둥근 머리통은

열 손실이 적다.

공모양에 가까울수록 [부피 당 표면적]이 작아서

열 손실이 적다.

이는 극심한 추위 속에서 조금이라도 열손실을 줄이도록 진화한

[밝할인(바이칼리안)]의 특성.

한국인은 [밝할인(바이칼리안)의 특성]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둥근 머리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스인들이 [단두형(短頭形)] 머리통을 가지고 있을까.

이는 그리스인들에게 [밝할인(바이칼리안)]의 피가 많다는 얘기인데  

언제 [밝할인(바이칼리안)]들이 그리스로 이동했을까.

 

[한반도와 밝한반도]

 

한국은 한반도에 있고

그리스는 밝한반도(발칸반도)에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두형(短頭形)] 머리통 사람들이고

그리스는 유럽에 있지만 특이하게도 [단두형(短頭形)] 머리통 사람들 많다.

 

고대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이 [물, 불, 공기, 흙]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했고

고대한국인은 세상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했다.

[지수화풍(地,水,火,風)]이나 [물, 불, 공기, 흙]이나 똑같은 소리.

 

이외에도 고대그리스와 고대한국은 여러가지로 공통점을 보이는데

그토록 멀리 떨어진 두곳에서 어떻게 이런일이.

 

특히 [밝할인(바이칼리안)의 특성]인 [단두형(短頭形)]이

어떻게 머나먼 그리스에서 나타날까.

 

이 비밀을 풀자면 [개의 이동]이 힌트가 된다.

개는 혼자서 이동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따라 이동한다.

 

세계 학자들은 개가 동북아에서 처음 생겨나서

1만5천년전부터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보고 있다.

 

혹독한 추위를 피해서 탈출에 성공한 [밝할인(바이칼리안)]들은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서 남하한다.

당시 황해(서해)는 바다가 아니라 육지였다.

빙하기때는 육지얼음이 많아서 세계의 바다물이 적었다.

( 황해가 바다가 된것은 1만2천년~8천년전)

 

 

사람이 살기좋았던 고대황해대평원에 도착한 [밝할인(바이칼리안)]들은

당시 그곳 원주민들과 만나서 [시너지효과]가 일어나고

그리하여 그들은 인류문명의 시원이 된다.

 

실제로 고대유물들도 한국이 인류문명의 시원이라는 것을 차차 증명하고 있다.

2만년전 신석기, 1만5천년전 쌀농사, 1만 수천년전 토기 등등.  

 

[단두형(短頭形)] 머리통이 [밝할인(바이칼리안)의 특성]이라는 점

또한 한국땅에서 세계최초 유물들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고대그리스인들이 고대한국으로 이동해온 것이 아니라

고대한국인들이 고대그리스로 이동해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한반도와 밝한반도(발칸반도)는 위도도 비슷하고

자연환경도 비슷하다.

개를 데리고 이동해간 고대한국인(밝한인)들은 그리스에 도착해서

좀 놀랐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비슷한 곳이 있었다니' 하고.

그리하여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게 되고

그 땅 이름도 [밝한(발칸)]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들의 고향이 밝한(고대한국)이니까.

 

그럼 언제 처음 고대한국인들이 고대그리스로 이동해갔을까.

이러한 이동은 [최소한 1만2천년 이상 전]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세계학자들이 말하는 개의 이동도 1만5천년 전에 시작됐고

이집트 대피라미드도 1만2천년 이상 전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는 근거가 많다.

그 피라미드가 나중에 보강된 것도 같지만

처음 만들어진 것은 1만2천년 이상 전이라는 얘기.

 

 

 

황해(서해)가 1만2천년 이상 전에는 바다가 아니라 대평원이었듯이

에게해 역시 당시에는 바다가 아니라 평원.

 

1만2천년 이상 전에 [에게 평원]으로 이동해 간 고대한국인들에게

올림푸스산은 그들의 상징산이었을 것이다.

올림푸스산은 [고대 에게평원] 바로 옆에 붙어있다.

 

고대한국인들이 [에게 평원]에서 문명을 이루고

이는 후대에 [에게 바다]가 [전설의 바다]가 된 이유가 된다.

 

그리하여 아직도 그리스인들에게서는 아직도 특이하게도

한국인의 특성인 [단두형(短頭形)] 머리통이 많고

(물론 후에 피가 많이 섞였지만 아직도 고대한국인의 특성이 남아있는 것.)

그리고 고대그리스문명은 서양문명은 근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에게해의 에게 즉 [엑에]라는 이름은 원래는

[악아] 즉 [아가]였을 것으로 본다.

즉 에게평원을 당시 고대한국인들은 [악아]라 불렀고

이는 [떠오르는 해와 같은 땅(사람)]이라는 뜻.

고대한국어로 [아]는 떠오르는 해

[하]는 다 떠오른 해

[라]는 완전히 아주 높이  떠오른 해. 

 

한국에서는 아직도 아이를 [악아(아가)]라 부른다.

아이가 [떠오르는 해같은 사람]이라는 뜻.

 

고대그리스인 중에 [아가멤논(악아멤논)]이라는 이름도 있고

지금 서양인들 중에도 [아가사]라는 이름도 있다.

 

 

고대한국인들은 그리스 뿐만 아니라

부근의 이집트에도 정착했을 것이다.

당시 이집트 나일강가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기후가 좋고 땅이 좋았다.

 

[이집트 대 피라미드]

 

이 피라미드는 지금은 사막 가운데 있지만

1만년 이상 전의 이곳은 사람이 살기 좋은 비옥한 땅.

 

그런데 스핑크스!

스핑크스의 얼굴은 [동북아 여성]의 얼굴.

스핑크스는 코가 떨어져 나갔는데

얼굴이 사람(여성)이다.

그런데 광대뼈가 튀어나온 동북아 여성의 얼굴!

 

이집트의 창조여신 하토르(Hathor)의 부조상

얼굴이 넓적하고 쌍꺼풀이 없는 동북아시아적인 얼굴.

 

왜 피라미드를 수호하는 스핑크스의 얼굴이 남자가 아니고 여자인가.

이는 고대 모계사회의 전통이 배어나온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러므로 스핑크스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스핑크스에는 극심한 폭우로 몸체가 파인 흔적이 있는데

이정도 폭우는 최소한 1만년 이상전에 일어난 것이라 한다.

 

이래저래 그리스와 이집트에는 1만년 이상전에

고대한국인들이 이동해간 흔적들이 보이는데

신라 박제상이 고대 기록들을 찾아서 전했다는 [부도지(符都誌)]에는

고대 황해평원 마문명에서 동서남북으로 사람들이 이동해간 귀절들이 보인다. 

그들은 황해대평원에 바다물이 들어차기 전

즉 1만2천년 이상 전에 각지로 이동해간다.

 

[부도지(符都誌)]에 나오는 그 귀절들을 그림으로 그리면

대강 다음과 같다.

 

황궁씨는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환인씨의 선조이고

청궁씨는 군자국의 선조.

 

흑소씨는 동남아와 태평양 일대의 섬들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는데

백소씨가 바로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로 이동해간 사람들로 본다.

 

 

고대한국인들은 [에게평원]과 [고대 이집트]에도 정착하지만

이탈리아 동북부 [아드리아 평원]에도 정착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곳이 바다가 되고 [아드리아해]로 불린다.

아드리아는 [아들이아] 즉 [아들의 땅]이라는 얘기.

원래[이아]라는 말은 바다가 아니라 [땅]에 붙이는 이름.

세계에는 수많은 [이아]가 있다.

불가리아(붉알이아), 러시아(럿이아), 루마니아(루만이아), 오스트리아(오스틀이아)

등등 수많은 [이아]가 있다.

[아드리아해]는 원래는 아드이라 즉 [아들이아]라는 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들의 땅

예를 들어 고조선을 고대한국어로 아사달 , 앗달, 아달이라 불렀다.

[아달]과 [아들]은 같은 말.

실제로 아드리아해는 아주 얕은 바다이고

1만 2천년 이상 전에는 바다가 아니라 평원지대(땅)였다. 

 

근래들어 아드리아 바로 옆의 보스니아(보슨이아)에서

놀라운 피라미드가 발견되었다. 

 

[보스니아 피라미드]

 

저 산을 파보니 속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서

세계적으로 상당히 보도되었다.  

 

겉보기엔 그냥 산인데

파보면 산이 온통 인위적으로 [돌]로 덮어져 있다.

 

 

 

그리고 저 산에는 아래와 같은 돌길들이 있다.

 

이 길은 지하 옆으로 계속 건설되어 있다.

 

 

보스니아 피라미드를 대강 그려본 것.

산을 돌로 덮고 속에다가 돌로 통로를 만들고

다시 산전체를 흙으로 덮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흙으로 덮은 후 1만년은 지난 것으로 추정된다.

1만년전이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됐다'고 하는 때인데

저런 돌들을 깍아서 산전체를 덮을 정도의 문명은 놀라운 일.

 

출토 유물 중 하나

 

 

 

 

 

보스니아 피라미드산 주변에서 나온 돌알들 중 일부.

이러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보스니아 피라미드 사이트

  http://www.piramidasunca.ba/

 

위 사이트에 가면 많은 사진들과 함께

CNN BBC 내셔날지오그래픽 등에서 심층 취재한 동영상도 있다.

 

 

위 사진처럼 보스니아피라미드 주위에서는

많은 돌알들이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최근에 중국에서도 이와 똑같은 돌알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 중국 후베이성에서 발견된 돌알]

 

뉴스기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105&article_id=0000006261&section_id=104&menu_id=104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고대 원조한문명(마문명)이 중국을 거쳐서 멀리 발칸(밝한)반도까지 갔고

이 사람들은 1만2천년 이상전 황해가 물에 잠기기전에

서쪽으로 이동한 [백소씨 일행]이 아닌가 한다.

 

<내용출처 : 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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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분포도]

 

한반도는 세계고인돌의 절반이상이 존재하고

가장 오래된고인돌도 존재하는 (전남 화순 - 8천년전 것.)  

자타가 공인하는 고인돌 원조국.

 

위 그림을 보면 왜 고구려가 [요동]을 그토록 지키려 했던가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특히 [요동]부터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전통 한국 땅이었기 때문.

 

산동반도에도 일찍부터 고대한국의 문명이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동방불패(東方不敗)]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알 수 있다 하겠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산동인은 뛰어나다]는 는 말을 흔히 해왔다.

공자도 산동 출신.

 

[고인돌을 만드는 사람들] 즉 [고대 한국인들]은 일본으로도 건너가는데

그게 약 2천 4백년전.

그 때 주로 북규슈 지역으로 건너가는데

일본에는 그때서야 비로소 금속문명과 쌀농사가 전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야요이(彌生)문명]이라는 것.

약 2천 4백년전 한반도 남부인들이면 [마한]사람들.

( 마한, 진한, 변한 즉 삼한(三韓)이 [고조선연방]을 이루고 있었다.

마한은 고조선이 문을 닫은 후 다시 따로 독립하여 5세기 까지도 독립국으로 존재.)

 

이런 이유로 일제는 [마한 역사]에 대해서 철저히 파괴, 축소 공작을 감행한다.

자신들에게 금속문명과 쌀농사를 처음 전해준 것이 [마한]인데

그 사실이 너무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

사실 이것은 일본 지식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지독한 '역사 컴플렉스'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일제가 선택한 공작방법은

고구려, 백제, 신라 이전의 한반도 (특히 중부 남부 지방)에는 

별다른 문명국가가 없었던 것처럼 조작하는 것.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강 2천년전에 건국된 나라들이기 때문에 

2천 4백년전에 자신들에게 문명을 전해준 사람들은 될 수 없다는 점

이것을 그들은 노렸을 것이다.

 

그래서 숱한 마한의 유물, 유적들이 백제, 신라 등의 것으로 '둔갑'된다.

 

그 중에 하나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아리랑2호에서 본 풍납토성 (서울 한강 이남)]

 
풍납토성은 둘레 3,740m( 약 3.7 킬로미터)에
성벽은 밑바닥층의 너비가 50~60m,
높이는 원래 15m ( 6층 아파트 높이)의 거대한 성벽.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 발표)

 

 

풍납토성

 

출처 - http://cafe.naver.com/hisda

 

위 사진은 지금 남아있는 풍납토성의 성벽.

풍납토성은 돌을 거의 안쓰고 거의 [고운 모래]로 쌓은 성인데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렇게 건재하다.

그 사실 자체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라 하겠다.

 

그런데 풍납토성이 기원전 1세기

즉 2천1백년전부터 쌓은 성이라는 것이 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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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최몽룡교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풍납토성 서벽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에서
“탄소방사성연대 측정결과와 삼중의 환호·판축토성·제사터·회청색경질토기 등
발굴유물을 볼때
풍납토성 축조연대는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문화일보 2003-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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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전 1세기면 백제가 건국도 하기 전.

즉 백제 이전에 이미 풍납토성이 있었다는 얘기.

 

고구려, 백제의 성은 모두 돌로 쌓은 성들.

그런데 풍납토성은 돌이 아니라 모래로 쌓았다.

( 모래에다가 뭔가를 섞어서 콘크리트 처럼 만든것으로 보인다.)

 

즉 풍납토성은 백제가 쌓은 성이 아니라

마한의 성이라 보는 것이 옳다 하겠다.

 

나중에 백제가 풍납토성을 쓰긴 했겠지만

풍납토성을 만든 것은 마한이라는 얘기.

 

백제는 서기 475년까지 수도를 남한 땅으로 옮기지 못한다.

이는 마한이 그만큼 왕성했다는 것.

 

 

[초기 백제의 이동]

( 위에 나오는 [낙랑]은 한사군의 낙랑이 아니라
고조선의 일부였다가 후에 독립한 [최씨 낙랑국]을 말한다.
[예성강]은 [위례성강]의 준말 정도로 보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13년에 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 5월에 왕이 신하에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백제)의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어...

도읍을 옮겨야 하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漢水)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가을 7월에 한산(漢山) 아래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들을 옮겼다.

8월에 사신을 마한에 보내 도읍을 옮긴 것을 알리고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하였는데...]

 

위에서 온조왕은 한수(漢水) 남쪽에 하루만에 다녀온다.(어제 순행)

청천강에서 한강까지 하루만에 왔다 가기는 어렵다.

즉 위의 한수(漢水)는 한강이 아니라 대동강이라 봐야할 것이다.

 

한국고대사에서 한수(漢水)라 불린 강은 3개.

 

1. 한강

2. 대동강

3. 압록강

 

온조왕은 [사신을 마한에 보내 도읍을 옮긴 것을 알리고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한다.

 

마한과 백제는 상당히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마한은 그전에 변한, 진한인들에게도 우호적으로 땅을 나눠주더니

백제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는 삼한이 [고조선연방]이었던 사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몽촌토성 역시 마한이 만든 성으로 봐야할 것이다. 

 

 

몽촌토성 지도  

 

 

몽촌토성

 

 

몽촌토성 산책로 진입 계단

 

 

무너진 몽촌토성 성벽 위로 만들어진 산책로.

저게 야산이 아니라 사람이 쌓아올린 성벽. 
원래는 저것보다 더 큰 거대한 성벽.
몽촌토성 성벽도 풍납토성 성벽처럼 거대한 것.

 

 

[풍납토성 몽촌토성 위치도 - 서울시 송파구]

 

풍납토성 몽촌토성은 한강 이남을 [절대방어]하려는

마한(馬韓)의 성으로 봐야할 것이다.

 
한반도는 기후도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곳이고
정치적으로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고대사적으로 한국은
남방식고인돌, 세형동검으로 대표되는 마한과 
북방식고인돌, 비파형동검으로 대표되는 진한(변한 포함)의
끊임없는 융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지역은 뿌리가 같기 때문에
결국 단군왕검 때에 고조선연방으로 통합된다.

 

 

  마한 - 오리지날 [세형동검 + 남방식 고인돌] 지역 

 진한 - 오리지날 [비파형동검 + 북방식 고인돌] 지역 

고조선연방 - 포괄적 [ 세형동검+ 비파형동검] 지역 

 

 

 

즉 마한이나 진한이나 고대황해대평원 마문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고조선연방으로 통일될 수 있었고
(마한과 진한의 중앙인 대동강 지역에 수도를 정함)
진한(변한)에서 사람들이 이동해 올 때도 별다른 갈등없이
마한은 땅을 떼어주게 되고
나중에 백제에게도 순순히 땅을 떼어주게 된다.
  
한국은 [마한의 농경문화]와 [진한의 기마 유목문화]가 어우러져서
가장 바람직한 문화의 융합 발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겠다.
 
이는 [마한의 대청마루 문화]와 [진한의 온돌문화]의 융합에서도 보이듯이
서로 다른 두 문화의 장점을 아우르는 문화를 탄생시킨다.
이리하여 한반도에는 대청마루(여름 대비)와 온돌(겨울 대비)가 공존하게 된다.
 
명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쇠를 뜨겁게 달구었다가 식혔다가를 반복하면서
망치 등으로 계속해서 내리쳐주어야 한다. 
그 과정을 많이 할 수록 명검이 된다.
 
한국은 기후적으로도 뜨거운 여름과 차가운 겨울이 계속해서 반복되며
역사적으로 계속되는 강대국들의 들이받음에 의해서   
계속해서 단련이 되어 왔다 하겠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도 가장 적응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아이큐도 세계 1위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 이후 한국이 세계역사상 유래없는
초고속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닐 것이며
앞날도 밝다 하겠다.

 

<내용출처 :  세계속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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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부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우주기구 가맹 11개국이

인공위성을 띄울 로켓을 개발한다.

그런데 그 로켓의 이름이 [아리안]

 

 

 

▲ 유럽 로켓 아리안호, 기아나 쿠루 우주센터  ⓒ

( 사진출처 - 사이언스 타임즈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10000/0000009971.jsp )

 

그런데 왜 그들은 자신들의 로켓에

[아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거의 대부분의 유럽어는

[아리안 어족]에 속한다.

[아리안 어족]은 [인도-유럽어족]으로도 불린다.

즉 인도어와 유럽어는 그 뿌리가 같은 것.

 

세계 학자들은 약 3천 수백년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아리안]이 대거 유럽으로 이동해와서

그들의 말인 [아리안어]가 대부분의 유럽어의 뿌리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3천 수백년전 당시 유럽에는 그리스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발전된 문명이 없었기 때문에

고등문명을 가진 [아리아인(아리안)]들이 유럽으로 와서

문명을 전파하고 유럽에서 그들의 말 즉 아리안어를 

쓰게 되었다는 것.

 

히틀러가 [아리안의 원형]을 찾겠다고 난리를 친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

그런데 3천 수백년전에 중앙아시아에서 이동해 왔다는

[아리안]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굴된 그림]

위 그림은 중앙아시아 알타이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고대인도 브라만과 크샤트리아에 대한 그림.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고대인도 제1계급인 [브라만]

말타고 있는 사람이 당시 제2계급인 [크샤트리아]

[브라만]은 동북아시안의 모습이고 

[크샤트리아]는 백인의 피가 많이 섞인 모습.

 

세계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7천년전에

아리안은 어디론가부터 중앙아시아에 나타났다.

필자는 이 [아리안]이 [한반도-만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건너갔다고 본다.

 

히틀러가 그토록 찾던 [아리안의 원형]은 백인이 아니라

아시아인 그것도 [동북아시아인] 이었던 것.

사실 백인이 유럽의 주류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강 기원전만 해도 독일 프랑스 등 중부유럽과

남부유럽의 주류는 백인이 아니었다. 

 

먼저 백인들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보자.

 

흔히 [몽골리안의 특성] 이라 불리는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실은 빙하기 때 동부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 주위에

고립되어 살다가 생긴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으로 추정되듯이 

(그러므로 [몽골리안]이라는 말은 [바이칼리안]으로 바뀌어야 한다.)

 

흔히 [백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원형은 

빙하기때 스웨덴,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고립되어 살던 사람들이라고 추정된다. 

 

빙하기때 얼어붙은 땅과 바다에 둘러쌓여 고립되어 살던 사람들이

머리카락색깔이 탈색되는 등 현 [백인의 특성]이 나타났다는 것.

 

 

 

아래그림 출처 -  '헬리코박터균'의 분포로 본 과거의 인류이동

(Traces of Human Migrations in Helicobacter pylori Populations)

- 사이언스 2003년 3월 7일자에 실린 연구논문

 

 

 

위 그림에서 노란색 은 [바이칼리안(밝할인) 특유의 헬리코박터균]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세계에서 [바이칼리안(밝할인) 특유의 헬리코박터균]만을 보유한 민족은 한민족밖에 없다.

 

고대 [바이칼리안(밝할인)]들이 고립에서 탈출하여 남하하여

한반도로 내려와서 당시 원주민들과 섞였고

그 후손들이 계속 한반도에서 살고 있다는 근거라 하겠다.

즉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은 한민족에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다.

 

위 그림에서 회색이 백인들의 헬리코박터균으로 볼 수 있는데

분포지역과 빙하기 때 고립될 수 있는 지역으로 보아

백인은 현 스웨덴, 노르웨이 지역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수천년 전에 [한반도-만주]에서 백인들의 지역까지

문명이 전파된다.

 

 

 

빗살무늬토기는 한국이 원조.

한반도에서 8천년전 것까지 발견되었다.

 

그 빗살무늬토기가 멀리 북유럽까지 전파되고 있다.

북유럽의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보다 훨씬 후대의 것.

고대한국인들은 고인돌문화도 전파한다.

고인돌 역시 한반도에는 8천년전것도 있는데

유럽에는 그보다 훨씬 뒤의 것만 있다.

한반도에는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상이 몰려있을 정도로 숫자도 많다.

 

원조백인들 즉 스칸디나비아인들 중 상당수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직접적으로 고대한국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래서 독특한 문화가 생기게 된다.

북유럽 고유의 신화와 언어.

그리고 그들은 생김새도.

 

 

 

 

 

쉽게말해서

원조백인들 중 고대한국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을

역사는 [게르만]이라 부른다.

 

[게르만]은 머리카락이 빨간 것으로 통칭되는데

이는 백인의 흰 머리카락과 동북아인(고대한국인)의 검은 머리카락이

섞여서 나온 색깔로 본다.

그래서 게르만이 노르만보다 먼저 이동을 시작한다.

 

( 뒤늦게 문명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노르만]이라 부른다.

이들은 게르만보다 비교적 더 [원조 백인]의 모습을 보인다.

노르만은 게르만보다 훨씬 더 후에 이동을 한다.)

[게르만의 영역 확장]

 

게르만은 차차 영역을 확장한다.

그리하여 4세기 게르만족의 대이동 전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영역.

 

 

붉은색 이 로마의 영역

초록색 이 게르만의 영역

  

당시 영국인, 프랑스인 등은 지금보다 훨씬 더 [동양적]인 모습이었다.

게르만, 노르만의 대이동 전이므로.

 

지금의 영국인, 프랑스인 등은 당시보다 훨씬 더

[백인화] 된 모습.

 

영국,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1. 약 3천수백년전에 아시아에서 [아리안]이 와서 원주민에게 문명을 전파했다.

그래서 영어, 프랑스어의 뿌리는 [아리안어]

당시 영국, 프랑스에서 살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덜 [백인적]인 모습.

 

2. 후에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영국, 프랑스는 [백인화]가 많이 된다.

 

3. 더 후에 노르만의 이동으로 더욱 [백인화]가 된다.

그리하여 지금의 영국인, 프랑스인의 모습이 생긴다.

 

기원전의 영국인, 프랑스인의 모습과

지금의 영국인, 프랑스인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많이.

 

기원전의 영국, 프랑스는 백인의 영역이라고 보기가 어렵고

원주민+ 아리안(동양인)+백인 등이 섞여 있는 정도. 

 

----------------------------------------

 

영국의 경우 아리안의 흔적 중 하나로 보이는 것이   

바로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이 스톤헨지가 만들어진 것이

학자들 주장으로 보면 3~4천년전.

 

아시아에서 이동해 온 [아리안]의 언어가 지금 거의 모든 유럽의

언어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아리안]의 문명은 당시 영국, 프랑스의 문명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았다고 봐야 할 것이고

그런 면에서 그들이 스톤헨지를 만들었다고 보아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하겠다.

 

3천 수백년전 [아리안]으로부터 문명을 전해받은 영국, 프랑스, 독일.

그래서 히틀러도 [아리안의 원형]을 찾아 헤맸고

현재도 그 나라 학자들이 [아리안]을 찾아 동북아로 온다.

 

 

 

 

위 사진들은 독일학자 하우스돌프 등이 어렵게 찍어서 세계에 알린

중국 서안의 피라미드들.

중국당국의 감시를 피해서 어렵게 찍은 사진들.

이 사진을 찍어 보내고 나서 하우스돌프는 추방된다.

 

중국당국은 왜 이런 피라미드들을 애써 감추고 있을까.

 

원래 중국무덤은 돌무덤이 없다.

역대 중국황제들의 무덤도 모두 흙무덤.

돌무덤은 한반도와 만주 즉 고대한국 고유의 양식.

그러니 고대한국인들이 와서 만든 피라미드들이 분명하니

중국당국이 존재 자체를 애써 감추고 있는 것.

 

 

 

구글어스로 찍은 중국 서안(시안, 옛 장안)의 돌 피라미드들.

중국당국은 애써 흙까지 덮어놨다.

개중에는 일부러 나무까지 심어놓은 것도 있다. 

 

 

[장군총]

고구려때 것이라 알려져 있는데, 고구려때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고구려보다 훨씬 전 것이라는 증거는 많다.

 

 

 [서안 피라미드]

 
위 두 사진을 비교해 보시라.
장군총과 서안피라미드는 그 모양이 똑 같다.
 
그런데 압록강 북쪽에는 장군총 말고도
태왕릉이라 불리는 피라미드가 있다.
장군총보다 밑면적은 4배 크고 , 부피는 7배 정도 크다. 

 

 

[태왕릉]

 

[장군총과 태왕릉의 크기비교]

 

그런데
압록강 주변에는 피라미드들이 무려 1만2천기나 있다.

 

 

이러니 중국당국은 그동안 서안피라미드들을 숨겨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서안피라미드가 만주에서 건너온 것이 분명하므로)

이러한 것이 만주역사를 삼키려는 소위 동북꽁정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언제부터인가 '탐원꽁정'이라 하여 더더욱 야욕을 드러내고 있으며

 

압록강 유역인 길림성 통화현의 유적에 문명의 시작이라는 뜻의

[여명문화]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그 유적 유물은 아직까지 철저히 숨기는 것을 볼때

그들의 소위 동북꽁정이 성공되었다고 '확신'이 서는 날

세계에다 대고 대대적으로 [압록강 유역이 인류문명의 시원]이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그 지역은 쭝국역사]라고 할 계획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장기적으로 결국 세계학자들에 의해서

[압록강 유역은 한민족의 역사]라는 것이 세계에 알려지겠지만.

 

<내용출처 : 세계속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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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한국야생화)
한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를 이뇨,지혈,소염제로 사용.

 

원추리의 원산지는 한반도.

원추리를 한자로는 훤초 (草)라 하는데  

훤()이란 무엇인가.

 

훤()은 [宣(선)의 草(풀 초)]이라는 소리인데 

그럼 [宣(선)]은 무엇인가.

 

 

위 모양은 원래 [신전의 지붕]을 가리킨다.

[성인이 진리를 설파하는 신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위 글자는 원래 고대한국을 뜻하는 글자.

그래서 삼국유사의 환인(桓因)임금 역시  

환(桓)자를 쓴다.

 

환(桓)자의 원래 발음은 환이 아니라 [한]이다.

 

환(桓)자의 나무 목(木)은 한국을 나타내는네 흔히 쓰는 글자였기 때문에 

환(桓)은 원래는

자다.

 

 

[아침 단(旦)자가 발전하여 위의 [한]자가 되고

다시 발전하여 위의 [亶]자가 된다.

자나 자나 모두 해뜨는 곳

즉 한반도와 만주를 뜻한다.

 

고대에 한국은 단주(亶州)라고도 불렸다.

단(亶)은 지금도 [믿을 단]자로 읽힌다.

단군(檀君)임금 할때 단(檀)자 역시 위의 단(亶)자에

한국을 뜻하는 나무목(木)자가 붙은 것.

 

다시 선(宣)자를 보자

선(宣)자는 한국을 뜻하는 자 위에

이 있는 모양.

 

즉 선(宣)자는 

해뜨는 땅 한국의 신전(殿: 성인이 진리를 설파하는 곳)을 의미한다.

그래서 선(宣)자에는

베풀다, 널리 펴다, 밝히다, 임금의 말 등의 뜻이 있다. 

 

한국야생화 원추리를 한자로 훤초 (草)라 하는데  

훤()은 [宣(선)의 草(풀 초)]이라는 소리이니 

이름을 아주 딱맞게 지었다.

 

원추리는 한국을 대표하는 꽃중의 하나이고

고대한국의 신전 주위에도 심어졌던 것으로 본다.

그래서 원추리의 한자이름이 [훤()]이 되고

원래 밝음을 뜻하는 [한하다]라는 고대한국어가

[환하다] [훤하다] 등으로 변화 발전되어 온 것을

또한 알 수 있다 하겠다.

 

한국의 꽃 원추리는 망우초(草) 즉 근심을 잊는 꽃이라고도 불리며 

예로부터 뒤뜰에 많이 심었던 꽃.

 

한자는 중국에서 만든 글자라고 흔히들 알고 있다.

고대 은나라 땅에서 갑골문들이 많이 발견되어

더더욱 중국의 글자라고 알고들 있다.

 

( 갑골문(甲骨文) - 거북이 등껍데기나 소뼈다귀 등에 새겨진 옛 한자.)

 

그런데 사실은 고조선의 영역에서 더 빠른 갑골문들이 이미 많이 발견되었다.

 

 

 

고대기록과 유물들로 보면 고조선과 은나라의 영역은

대강 위 지도와 같다.

 

약 4천2백년전 책이라 하는 [산해경(山海經)]의 해내경(海內經)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하늘이 지극히 아끼는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天毒 其人 水居 偎人愛之]

-----------------------------------------------

여기서 [동해]란 [중국의 동해] 즉 우리가 말하는 [서해(황해)]이고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즉 고대 중국인들은 고조선이 중국동부와 만주서부에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고조선의 영토 중 그들에게 가까운 지역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것.

 

중국땅에서 발견된 갑골문들은 

1. 만주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고

2. 그 다음이 중국동해안 지역

3. 그 다음이 은나라 지역의 것.

 

원래 은나라는 동이족이 건너가서 세운나라로 유명한 나라.

그러므로 만주의 고대한민족의 문명이 중국동해안을 거쳐서

은나라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한자의 전파]

만주 -> 중국 동해안 -> 은나라

 

한자 역시 만주의 고대한민족이 만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땅국이 동북꽁정이라는 어이없는 꽁작을

감행하는 또하나의 큰 이유가 되었다.

만주의 갑골문이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얘기는 

중국문명이 고대한국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존심에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들이 동북꽁정에 그토록 광분하는 것이 이해가 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

 

그런데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바로

무자갑골 (無字甲骨) !!!

무자갑골은 글자가 새겨지지 않은 갑골.

이 무자갑골은 한반도와 만주에서 많이 출토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많이 출토되는 이 무자갑골들은

왜 하나같이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을까.

왜!

 

필자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이 무자갑골들은 송곳 등으로 글자를 새긴 것이 아니라

물감으로 글자를 쓴 것이 아닐까.

오랜세월이 지나면서 이 물감들이 사라지고

갑골만 남은 것이 아닐까.

 

앞으로 첨단과학으로 이 무자갑골들이 분석될 것으로 보고

이 무자갑골의 비밀이 풀릴 것이다.

필자는 이 무자갑골들에도 원래 글자가 써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그 무자갑골들의 원시한자들 중에는

만주와 중국땅의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것들이 있을 것으로 본다.

옛 황해대평원 마문명에서 쓰던

진짜 원시한자들이.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가장 오랜된 갑골문은

황해바다 속에서 발견될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트로이문명이 오랜세월 흙속에 묻혀서

발견되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고 결국 발견되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전설에서 역사로 바뀌었던 것처럼.

 

황해대평원 마문명의 유적 유물이 발견되는 날

세계고고학계는 빅뱅이 일어날 것이고

인류사의 큰 전화점이 될 것이다.

 

<내용출처 : 세계속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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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는 공룡들의 마지막 낙원이었다.

공룡시대 말기인 백악기 때 세계는 화산 폭발 등으로 공룡이 멸종되어 갔고

당시 안전지대인 한반도로 공룡들이 대거 몰려왔다.

원래 한반도에 살던 공룡들과 몰려온 공룡들

즉 한반도는 공룡시대 말기 때 공룡의 천국이었다.

 

2. 한반도에서는 단일면적당 공룡발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등재 추진 중 - 아래 신문기사 첨부)

 

그런데 공룡발자국이 아직도 그렇게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지각변동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

지진, 화산폭발등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공룡발자국이 사라지기 때문.

 

3. 공룡들이 마지막으로 몰려 살았고

지각변동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는

한반도에서 조류와 표유류가 세계최초로 생겼다는 얘기가 된다.

공룡(파충류)가 진화한 것이 조류(새), 포유류이기 때문.

 

익룡(하늘을 나는 공룡)의 발자국과 중생대 새 발자국 화석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연구된 곳도 바로 한국땅 !

(아래 신문기사 첨부) 

 

그러므로 한반도는 조류, 포유류가 처음 탄생한 지역이라는

강력한 가능성이 있다.

 

익룡과 초기 새들의 발자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

한반도

 

4. 공룡들의 마지막 주거지 -> 조류, 포유류 탄생

한국땅에서 첫 포유류가 탄생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 포유류가 세계로 퍼져 나가고 오래도록 진화하다가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조상이 생겨난다.

그리하여 다시 한반도로 들어온다.

세계 학계는 아프리카에서 생겨난 인류의 조상이 세계로 퍼졌다고 하는데

아프리카에서 첫 포유류가 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첫 포유류가 한국에서 생겼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5. 한국땅에서는 예로부터 솟대, 삼족오, 불사조 등

새를 숭배라는 일이 많았다.

이는 한국땅이 조류의 첫 탄생지이기때문이 아닐까.

 

[솟대]

 

최근까지 한국 민간에서 흔히 세우던 솟대는 학계에서도

기원적으로 ≪삼국지≫ 마한전(馬韓傳)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소도]란 원래 [솟오]

[솟오]란 솟아나는 땅, 살리는 땅 이라는 뜻. 

( [솟오]를 소리나는대로 한자로 소도(蘇塗)라 쓴 것.)

 

[솟오]와 [솟대]

[솟오]에 세웠던 [솟대]

 

마한(馬韓)은 한반도 중부 남부에 있던 나라.

즉 [솟대]는 한반도 중부 남부에서 기원한 것.

 

시베리아에서도 솟대가 많이 세워지는데

이는 한반도 중남부에서 건너간 문화.

 

약 4천년전에 쓰여진 책이라하는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중국 고대 책이 있다.

이 책의 해외동경(海外東經)편은 한반도에 대해서 쓴 것.

( 중국의 바다 건너 동쪽 즉 해외동(海外東)은 한반도.

일본은 당시 워낙 미개했기 때문에 별다른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 산해경(山海經) 해외동경(海外東經)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나온다.

 

[東海之外 有山名曰大言 日月所出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大人之堂 有一大人踆其上]

 

- 동해(황해)의 바깥( 즉 한반도)에 [대언(大言)]이라는 산이 있는데

해와 달이 뜨는 곳이다.

그곳에 대인(大人)의 나라, 대인의 도시가 있는데 

[준(踆)]이라는 대인이 그 곳의 지도자다.

--------------------------------------------------

대인(大人)은 훌륭한 인물을 뜻한다.

단지 몸집만 큰 사람은 대인이라 하지 않고 거인이라 부른다.

 

삼족오 

삼족오의 다른 이름이 바로 [금오()] 또는 [준오(踆)]

 

[준오(踆)] = [삼족오]의 백과사전

http://krdic.naver.com/detail.nhn?kind=korean&docid=35080200

 

즉 한반도 지도자의 상징새가 삼족오 였다는 것을

산해경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에 있던 대인의 나라의 지도자 [준(踆)]

그 [준(踆)]의 새 [준오(踆)]가 즉 삼족오 

 

이를 보아도 삼족오가 중국의 새다, 일본의 새다 하는 소리들은

단지 헛소리라는것이 드러난다 하겠다.

 

4천년전 책인 산해경도 삼족오가 한국의 새라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하겠다.

 

 

[고구려벽화 - 주작도]

 

한반도는 공룡의 ‘에덴동산’

발자국 화석 많이 발견 세계 자연유산 등재 추진


 

백악기 당시 세계 곳곳서 화산 폭발할때
한반도엔 물·먹잇감 풍부해 공룡들 몰려

 

허민 전남대학교 교수, 한국공룡연구센터 소장

[조선일보 2007.07.28 ]

 

경남과 전남 등 남해안 일대 공룡 화석지를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사전답사로 국제 자연사 전문가들이

19일 오전 경남 고성군에 산재한 공룡발자국과 새 화석지를 둘러봤다.

(〈연합뉴스 7월19일 보도〉)

 

 

 

우리나라는 공룡발자국 화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발견되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 걸쳐있는 남해안에는 수만 여 점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다.

 

공룡시대 하늘을 지배했던 익룡의 발자국과 중생대 새 발자국 화석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연구된 곳도 바로 한국이다.

 

이들 발자국 화석들은 새로운 종류로 국제학술지에 등재되어 있다.

비록 스페인의 경우 한국보다 더 많은 지역에서 공룡발자국화석이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은 단일 면적당 발자국 밀집도와 다양성에서 세계적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왜 한국에서 이처럼 많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는 것일까.

백악기 당시 한반도는 북미 및 유럽들과 달리 공룡이 생활하기에 적당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 곳곳에서는 화산이 폭발하고 있었고,

고탄소화된 대기는 오존층을 위협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비롯한 몽골,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다행히 공룡들이 생활할 수 있는 물과 먹잇감들이 풍부했다.

쥐라기 이후 그토록 많았던 커다란 목긴 공룡들이

백악기 당시 북미대륙이나 유럽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반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이들 용각류 화석들이 발자국과 뼈로 잘 보존되고 있다.

공룡시대 마지막 낙원이 이 땅에 있었다는 증거다.

 

호수 주변에는 각종 침엽수와 양치류 등의 식물들이 잘 분포되어 있었고

조각류(鳥角類·주로 두발로 걷는 초식 공룡), 수각류(獸脚類·두발로 걷는 육식 공룡),

용각류(龍角類: 네 발로 걷는 초식 공룡) 등 다양한 공룡들이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발굴 연구결과로 나타나면서,

한반도 남해안 지역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제주도에 이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공룡 관련 세계유산지구는 캐나다 드럼헬러의 주립공룡공원(Dinosaur Provincial Park)이 대표적이다.

아직 아시아에서 공룡 관련으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없다.

 

남해안 공룡화석지는 세계적 학술적 가치와 더불어 화석의 밀집도, 종의 다양성,

수많은 개체 등 국제적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공룡발자국과 대규모 공룡알과 알둥지 화석,

세계 최대 규모의 익룡발자국 화석, 새로운 종류의 공룡뼈화석,

규화목, 식물화석, 거북, 악어, 어류 등 각종 척추동물,

무척추동물 및 생흔화석(生痕化石·발자국이나 배설물처럼 생활 흔적이 보전된 화석) 등

공룡 시대에 생활 환경이나 생태계를 되짚어 볼 수 있는 화석들이 다양하게 나오는 곳은 흔치 않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지정을 위해 실무추진단이 전남대학교 한국공룡연구센터에 이미 꾸려졌고,

수 차례의 관계 기관 회의 및 실무자 워크샵이 열렸다.

 

또한, 국내 및 해외 관계 전문가들이 수시로 화석지를 방문하여 현장을 점검하고

세계유산으로 손색이 없도록 보존 관리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뉴질랜드의 폴 딩월, 스위스의 크리스챤 메이어 박사 등

공룡 및 화석 관련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관계 국제전문가 4명과 국내 전문가 10명이

해남, 화순, 보성, 여수, 고성 등 남해안 5개 공룡화석지를 방문하고 종합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7/2007072701020.html

 

<내용출처 : 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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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골제유물 등 다량 발견

 

 

발해 쪽구들 아궁이 등 발견

 

 

옥저와 발해의 온돌 동시 발견

 

 

발해 대형 폐기물구덩이 등 다량 발견

 

 

발해 폐기물구덩이 등 다량 발견

 

 

옥저 토기가마흔적 등 온돌 다량 발견

 

 

 

옥저·발해 온돌 발견…“우리 역사 확실하다”

[경향신문 2007년 08월 24일]
 

러시아 연해주에서 옥저·발해의 온돌(쪽구들)과 ‘ㄷ’자형 아궁이 등이 대거 발견됐다.

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학교 발굴단(단장 정석배)은 러시아 조사단과

지난 6월28일부터 이달 3일까지 연해주 우수리스크 북서쪽에 위치한

체르냐치노 발해 고분유적과 옥저·발해 주거유적에 대해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이 유적의 지표면에는 한인 이주민들이 거주한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 아래에는 발해 문화층과 옥저-끄로우노브카 문화층이 차례로 남아있어

옥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발해(698~926년), 한인 이주민에 걸친

우리 역사의 일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발해인들 돼지·개고기 즐겨먹었다”-

연해주에는 이처럼 세 시기에 걸친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

이는 옥저와 발해, 한인 이주민이 모두 농업을 주업으로 삼았던 동일 민족으로

취락을 위한 자연환경과 입지조건을 보는 눈이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비슷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발해 쪽구들. 완전하지는 못하나

아궁이 일부와 ‘ㄷ’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구들이 남아있다.

 

체르냐치노 2 주거유적에서는 발해의 쪽구들 1기와

다수의 생활 폐기물 유구,

옥저~끄로우노브카 문화의 주거지 4기와 토기가마터 1기가 조사됐다.
특히 발해의 쪽구들은 유적의 낭떠러지 부분에 위치해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아궁이 일부와 ‘ㄷ’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구들(연도)이 대부분 남아 있었다.

아궁이는 바닥을 고르게 만들었으며 2열의 구들과 연결돼 있었다.

또 아궁이의 내부는 재와 무너져 내린 판석들로 채워져 있었고

바닥은 불에 달궈져 매우 단단했다.

쪽구들의 길이는 약 4.5m다.

생활 폐기물 유구는 구덩이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구덩이에서 다량의 동물 뼈와 물고기 뼈, 조개껍데기가 출토됐는데

동물 뼈 중에서는 돼지와 개의 뼈가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이로써 발해인들이 돼지와 개고기를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덩이에서는 조개껍질로 만든 단추,

동물 뼈로 만든 장신구 등도 출토돼 발해인들의 의복장식도 엿볼 수 있다.

옥저 쪽구들.

 

발굴단은 옥저`끄로우노브카 문화 주거지는 모두 4기가 조사됐는데,

모두 발해 시기의 생활 폐기물 구덩이에 의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발굴단이 옥저-끄로우노브카 문화층에서 확인한

중요한 유구 중 하나는 토기 가마의 흔적이다.

이 가마는 한쪽 벽 부분만이 약 10㎝ 정도 남아 있고 나머지 부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잔존 유구는 평면상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다.

발굴단은 이번 조사에 대해

“옥저와 발해의 생활과 역사를 복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옥저와 발해가 우리의 역사임을 증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

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이성희 경향닷컴기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8241537291&code=960201

 

<내용출처:한국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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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갓난애 엉덩이의 푸른 반점을 '몽고반점'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는  '몽고반점'이 아니라 [바이칼반점(밝할반점)]이다.

흔히 '몽골리안의 특성'이라 불리는 [낮은 코, 가는 눈, 튀어나온 광대뼈, 몽고반점] 등은

사실은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이고 

'오랜 세월 고립된 곳에 살다가 생긴 특수한 형질'이다.

즉 이는 오랜 세월 혹독한 추위속에서 빙하기 바이칼호수 주위에

고립되어 살던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 

최근 '몽골인과 한국인이 신석기시대(1만년전)에 이미 분리되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글 아래쪽에 기사)

즉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몽골리안의 특성' 즉 [바이칼리안(밝할인)의 특성]은

징기스칸 때 등 몽골인들이 들어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신석기시대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얘기.

즉 한국인과 몽골인 등에게서 나타나는  '몽골리안의 특성'은 

신석기 시대 이전에 이미 공유하고 있었던

같은 조상의 형질이라는 얘기.

 

 

 

[한국 원주민] + [바이칼리안(밝할인)] = 한국인

[몽골 원주민] + [바이칼리안(밝할인)] = 몽골인

이라는 얘기.

 

참고로 한국인의 뿌리는 크게 4가지

1. 한반도,만주 원주민

2. 북방계 [바이칼리안(밝할인)]

3. 남방계 (동남아 등에서 이주)

4. 약간의 유럽인

 

한국인을 단순히 북방계와 남방계로 나눌 경우

북방계 - 약 2/3

남방계 - 약 1/3

이렇게 북방계가 많다.

 

대체로 한국의 북방계 피는 박력있고, 남방계 피는 평화롭다.

각기 장점이 있다.

요새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이는 [북방과 남방의 장점의 균형]을 이루는 면에서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대체로 동남아가 한국보다 못산다 해서 동남아인들을 무시한다면 우스운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대국인다운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중앙에서 강한 권력으로 장악할 때에는 통합되었고

중앙권력이 약해지면 여러나라로 나뉘어졌다. 항상 그래왔다.

티벳,위구르 등은 물론이고

중국남부와 중국북부의 말은 서로 '외국어'다.

아주 다르다. 한국어와 일본어처럼 서로 다르다.

중국은 한국처럼 작은 땅에 같은 피에 같은 언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중국이 민주화 개방화가 될수록

중국이 쏘련처럼 분열될 날이 가까와 오고 있다 하겠다.

소위 '동북꽁정'이라는 역사왜곡도 이러한 분열을 무의식적으로라도 느끼는 중국인들의 초조함이 불러온 '코메디'라 하겠다.

중국도 민주화 개방화를 안할 수는 없는 일이니 중국도 쏘련처럼 될 것이고

'동북꽁정'은 '한편의 코메디'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한-몽골, 신석기부터 이미 다른 인종


한국인과 유전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인종은 누군가.

아마 상당수가 ‘몽골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낮은 코, 광대뼈, 몽고반점….

하지만 한국인과 몽골인은 청동기시대 이전에 이미 유전학적으로 분리됐음이 드러났다.

이는 ‘한민족이 몽골인과 관계가 깊다’는 막연한 관념과

학계에서 주요 학설로 통용되던 ‘북방 단일 기원설’을 뒤집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한민족 기원 규명 조사’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거주 고대 인류의 기원을 찾기 위해

고대부터 근대까지 한반도에서 출토된 고인골(古人骨) 유전자(DNA)를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는 한민족 기원 규명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번 연구는 2006년 몽골을 시작으로 2007∼2008년 중앙아시아, 2009년 러시아,

2010년 일본, 2011년 중국, 2012년 서남아시아 지역의 고인골을 한국 고인골과 비교해

고대 한민족의 기원 및 이동 경로를 규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국가 차원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고대인 뼈에서 DNA를 검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1차 연구에 참여한 국립문화재연구소 중앙대 동아대 등 국내 연구기관,

몽골국립대 몽골과학대는 한반도와 몽골 지역 고인골 DNA를 비교했다.

신석기부터 근세까지 한국 출토 고인골 427점, 몽골 출토 고인골 585점 중 일부의 DNA를 추출한 결과

한반도와 몽골의 하플로그룹(같은 DNA 유전자형을 가진 그룹)이 서로 다르게 나왔다.

 

 

 

또한 형질인류학적 조사 결과 몽골 신석기시대 남성 고인골의 경우

머리뼈, 골반 등 한국인에 속하는 특징들이 나타났으나

그 이후에는 유사점이 사라져 신석기시대부터 한국인과 몽골인의 형질적 분리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책임연구자인 중앙대 이광호 교수는

“연구가 아시아 전체로 확대되면 한민족 기원과 이동경로가 규명될 것이며

앞으로 사이언스지에도 결과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국내외 연구진 80여 명이 참석했다.

그동안 한민족 기원에 대한 연구는

△‘북방기원설’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거주하던 고인류가 독립적인 집단을 형성했다는 ‘자체형성설’

△신석기시대 중국 남부에 거주하던 집단이 유입됐다는 ‘남방유입설’

△일부는 북방, 일부는 남방에서 왔다는 ‘이중기원설’ 등이 각축을 벌여 왔다.

연구에 참여한 동아대 김재현 교수는

“한국인의 형질과 기원이 과학적으로 구체화되면 막연한 몽골계 한국인 등의 표현을 넘어

황인종 안에 한국계라는 개념도 새로 생길 수 있다”며

“또 고구려인 인골 DNA 분석이 나오면 최근 동아시아 민족 간의 과거사 논쟁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내용출처:한국 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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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형동검 (劍)]

 위 검들은 흔히 한국식 동검이라 불리는 [세형동검]들.

평안남도 성천군 백원리 9호 고인돌 무덤에서 발굴된 세형 동검이

3천4백년전 것으로 드러나면서 더더욱 한국고유의 검으로 확인되었다. 

세형동검은 청천강 이남에서 주로 발견된다.

 

 

세형동검 영역은 [남방식 고인돌] 영역과 일치한다.

[남방식 고인돌]이란 관이 땅 속에 있는 고인돌을 말한다.

( [북방식 고인돌]은 관이 땅 위에 있다.) 

세계고고학계에서 한국이 고인돌의 나라로 유명하듯이

한국에는 세계고인돌의 반 이상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도 한국에 있으므로(전남 화순 - 8천년전 것) 

[남방식 고인돌] 역시 한국고유의 것.

 

[남방식 고인돌 - 전남 순천] 

 
[남방식 고인돌]은 마한 고유의 문화
[북방식 고인돌]은 진한 고유의 문화

 

 

[북방식 고인돌]

 

 

[비파형동검]

 

단군왕검께서 마한과 진한의 합류지점인 대동강 지역에서

마한과 진한을 아우르는 [고조선연방]을 건국한다.

 

 

  - 오리지날 [세형동검 + 남방식 고인돌] 지역 = 마한

 - 오리지날 [비파형동검 + 북방식 고인돌] 지역 = 진한
- 포괄적 [ 세형동검+ 비파형동검] 지역 = 고조선연방

 

후대에 고구려,백제,신라는 말 즉 언어가 같았다.

 

이를 보아도 마한과 진한은 원래 같은 민족이었고

단군왕검을 지도자로 추대하여 고조선연방(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한과 진한에서 건너간 사람들을 변한이라 한다.
 

중국 고대책인 [산해경(山海經)]에 보면 

고조선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 동해의 안쪽, 북해의 주변에 나라가 있으니 조선(朝鮮)이라 한다.

그 사람들은 물가에 살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 名曰 朝鮮 天毒 其人 水居 偎人愛之]

 

여기서 [동해]란 [중국의 동해] 즉 우리가 말하는 [서해(황해)]이고

여기서 [북해]란 [발해] 즉 [서해 위 바다]를 말한다.)

 

즉 고대 중국인들은 지리적으로 자신들과 가까운 [변한]에 대하여 기록을 남긴 것.

 

후대에 약 2천2백년전 진시황 때 변한 사람들이 마한으로 들어온다.

 

"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곳의 노인들이 세대를 넘어 전하기를

'옛날 진역(秦役 : 만리장성 만들기에 동원?)을 피해 망명(亡命)하여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에 왔다.' 한다.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

 

[辰韓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 自言古之亡人避秦役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출처-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 (三國志 魏書 烏丸鮮卑東夷傳 韓(辰韓))

 

고대 중국인들은 변한(韓)을 변진()이라 많이 불렀다.

즉 변한(韓)은 진한(辰韓)의 일부로 생각했다.

진한(辰韓)사람들이 중국동부로 건너가서 된것이 변한(韓)이기 때문.

그러므로 삼국지(三國志)에 진한(辰韓)이라 쓴 것.

(이 삼국지는 소설삼국지가 아니라 역사책 삼국지.

소설삼국지는 이 역사책 삼국지를 바탕으로 쓰여진 것.)

 

그런데 위 기록에서

[진한(변한)인들이 자연스레 차츰 한국(韓國:마한)에 왔다.(來適韓國)]

[마한(馬韓)은 그 동쪽 땅을 떼어내 주었다.(馬韓割其東界地與之)]

라 했듯이 

 

전쟁도 없이 그냥 받아들여서 땅까지 떼어준 것.

즉  

마한과 진한(변한)은 서로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에 한나라가 만주서부(요녕)을 합병한다. 한사군.

 

다시 진한인들이 마한으로 이동한다.

 

 

 

<내용출처:세계속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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