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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관희

아마도 모든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공통된 바램중 하나는 좋은 영화를 만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마음껏 발휘하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영화음악가 입장에서 봤을 때 이 기본적인 욕망마저도 그 결과를 성공적인 자신의 프로필로 만드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금새 알게 되는데 여기에는 아직까지 헐리우드와 같은 시스템을 갖지못한 한국의 빈약한 영화여건탓도 있을 것이고(물론 지금은 정말 많이 개선되었다) 설사 좋은 작품을 고른다 하더라도 흥행여부에 따라 작품의 질마저 좌우되는 오해의 시각등 예기치못한 변수가 수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품의 옥석을 고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3편의 영화음악을 담당한 이재진의 경우는 흥행여부와 관계없이 비평적으로 매우 호평을 받고 있는 작품들 - 참고로 이 작품들의 비중은 상당해서 현대 한국영화를 논할 때 어김없이 걸작의 대접을 받고 있다 - 에서 호소력있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어 단시간내에 그야말로 '급부상'했다.

아직 우리나라의 영화환경에서는 스탭진들중에서 스타급을 대접을 받는 사람은 감독이나 몇몇 특화된 업무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 하지만(매니아들이 편집부분에서 박곡지님을 해당분야의 스타로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떠오르고 있는 작곡가 이재진은 작품의 진실을 꿰둟어 보는 예리한 시각과 훌륭한 음악으로 인해 골수팬들이 생기고 있을 정도이다.

블럭버스터로 상징되는 과다한 상업화의 길을 걷고있는 현재의 한국영화시장에서 의미있는 음악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재진의 영화음악을 알아보는, 또는 그의 음악이 영화라는 매체속에서 어떻게 기능하지는지를 거꾸로 탐색해가는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한 남자의 20년, 또는 서글픈 한국근대사의 20년:영화 [박하사탕]

이것은 한국의 굴절된 역사를 거꾸로 탐색해가는 사색의 시간인 동시에 이재진의 첫 번째 영화음악역사가 탄생하는 의미있는 공간이다.

일그러진 사회의 어두운 구석 - 사업이 망하고 가족에게 버림받으며, 80년대 초반의 이해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희생양... 부조리한 권력의 시종으로 군림하며 웃으면서 고문을 자행하는 형사... 이것은 한국 근대사를 상징하는 아픈 상처들에 다름아니다.

첫사랑 순임과 나누어먹던 ‘박하사탕’의 의미가 더 이상 순수하지 못한, 지켜질 수 없는 추억으로 사라지는 순간 주인공 김영호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우회란 있을 수 없는 외길철로에 서는 것 뿐인데,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그의 아픈 외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추억의 한자락을 상징하는 소도구 ‘박하사탕’은 그 자체로 추억으로 회자될만한 것이지만 그속에 담긴 역사가 되새겨지는 순간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의 가슴깊게 패인 상처를 들추어내는 아픈 시간이 된다.

단숨에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이창동 감독의 놀랍고 힘있는 영화 <박하사탕>은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 되돌아보는 시간의 흐름을 유려한 보사노바풍의 음악으로 표현해주는 이재진의 음악은 특별한 자극없이도 그 자체의 긴장과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생력을 부여받는다.

영화라는 예술작업이 개인만의 것이 아니듯 극의 내러티브를 방해하거나 불필요한 미사여구가 동원된듯한 느낌, 바로 그 느낌이 과장될때는 반드시 문제를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은 왜 삽입되어야 하는지, 삽입되었다면 어떤 당위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의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이재진의 [박하사탕]이 놀라운 것은 보사노바의 유려한 선율위에 얹힌 피아노와 현악기군의 호흡이 만들어내는 균형과 구조의 일관성이다.

그 표현은 값싸보이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으로 회귀하는 여행자의(영화를 보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마음을 보다듬는 보이지 않는 따뜻한 시선이며, 탁월한 멜로디에 실어낸 희망의 시선이기도 하다.

사운드트랙 앨범의 전곡을 감싸안는 현악기군의 배치는 굴절되어가는 세상을 향해 흐린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주인공과 다수의 타자를 위한 따뜻한 배려이며, 이것이 영화 [박하사탕]의 음악을 통해 이재진이 우리에게 전하는 나지막한 메시지이다.

진실에 다가가는 순간 찾아오는 삶의 아이러니:영화 [파이란]

‘세상은 날 삼류라 하고 이 여자는 날 사랑이라 한다...’

그렇다. 우리를 둘러싸고 함께 호흡하는 군상중 한자리를 차지하는 삼류건달 이강재(최민식 분)는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가 생전 보지도 못한(위장결혼한 아내) 타자를 통해 짓이겨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사람과 인생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붙잡으려고 애쓰는 순간, 혹은 굴절된 인생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이켜보려는 힘겨운 몸짓이 시작되는 순간 비극은 찾아오고 허무하게 그 날개짓은 꺾여버린다. 진실과 인생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줄 여유도 없이 말이다.

전작 [카라]의 감독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변신을 보여준 송해성 감독의 이 작품에서 주연배우들의 연기력과 적절하게 안배된 연출은 관객들로 하여금 가슴깊이 내재되어 있는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영화 [파이란]의 주제와 구성을 더욱 단단하게, 결속력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이재진의 음악임에 틀림없는데, 전작이었던 [박하사탕]에서 낯선 이국땅의 보사노바 리듬을 훌륭하게 교배시킨 저력을 이 영화에서는 두개의 주제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영화의 도입부에 제시되는 현악기군들의 그것으로 낮은 저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감정의 곡선을 따라 이동하는 서정적인 선율이다.

이 테마부는 주로 주인공 이강재의 변화되는 심리를 대변하는 역할로 쓰이는데 영화의 처음과 끝부분에 비슷하게 인용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감정의 시작과 마무리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기복없는 안정감있는 구성으로 이 영화의 정서를(우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대표하고 있다.

두 번째는 또 한명의 주인공 강백란의 테마이기도 한(사운드트랙 앨범중에서 세 번째 트랙 ‘아침자전거’ 참조) 피아노의 선율로 상승하듯 제시되는 주제부인데, 밝은 듯한 분위기속에서도 후반부로 가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운명을 암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변주의 묘미가 극중에서 어떻게 살아움직이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이 음악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면서 관객을 움직이게 해주는 능력은 상상이상이었다.

영화속에서 음악이 어떻게 기능하면서 함께 호흡하는지를 -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감동이 이재진의 음악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소외된 남녀의 사랑, 그들만의 오아시스:영화 [오아시스]

전작 [박하사탕]으로 단숨에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창동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오아시스]는 제목의 평범함과는 달리 보는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흔드는 강력한 흡입력을 보여주었다.

보편적이지 않은 사랑은 획득되기 힘들고 그 사랑의 모습은 편견과 가식을 동반하게 된다.

여기서 나아가 감독은 그 힘든 사랑의 과정처럼 영화를 통해 관객과 작가가 만나는 지극히 공식적인 자리를 이야기하고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강조한다.

우리가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열린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그 세계는 열리게 된다. 마치 영화속 두 주인공, 종두와 공주의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바라보는 초반부의 의심스러운 시선들이 그 과정을 목도하고 이해하는 가운데서 거두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맡은 이재진의 관심은 현실속에 존재하는 이창동 감독의 세계를 관할하는 동시에 이 영화를 지배하는 ‘영화속의 판타지’를 동시에,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리얼리스트로의 모습을 보여온 감독의 작품세계를 관할하는 선율은 지금까지 제한된 영역과 장면에 사용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고 이것은 사실상 작곡가에게 큰 족쇄로 작용될 소지가 있다.

극의 내러티브와 무관하게 정말로 필요한 위치에 음악이 들어갔는지 - 만약 그렇다면 그곡이 리얼한 현실세계를 왜곡하는 결과가 될지, 아니면 그 세계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주체가 될지를 판단하기 힘든 상황 - 모든것이 문제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오아시스]에서는 메인타이틀에서도 확인되듯이 탱고풍의 선율로 관객을 자극하며 현실세계에 발을 내딛고 주인공 공주의 방에 걸려있던 인도의 정서로 대변되는 판타지 장면에 깔리던 음악들은 그 한정된 공간과 사고의 개념을 가뿐히 뛰어넘으며 관객과의 소통에 훌륭하게 성공했다.

영화의 스산함을 표현해주는 주체로 사용되던 수많은 음악들은 서정성과 현악군 특유의 부드러움을 유지하며 영화의 제목처럼 반갑고 청명하게 다가오며 치밀하게 배치된다.

소규모의 개인앨범과 같은 개념으로 시작된 이 사운드트랙이 큰 힘을 얻게 되는 지점또한 바로 이런 부분들의 완성도가 높음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단 세편의 장편영화음악을 만들며 신진작곡가 대열에 합류한 이재진이 버클리음악대학에서, 그것도 영화음악을 전공한 엘리트라는 사실을 솔직히 이글에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우수한 재원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출신성분(?)은 큰 참고자료가 되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러한 사실들, 말하자면 그런 표피들이 이재원의 음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는 오히려 장애로 작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앞으로 그의 이름앞에 습관처럼 붙어다닐 ‘영화음악가’니 ‘버클리음대 출신’과 같은 포장된 호칭을 떼고 이재진이라는 이름석자를 동네친구처럼 부를수 있을때 그의 작품에 대한 진솔한 평가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음악전력들을 이해하는데 앞서 언급한 습관들은 분명 방해가 된다. 좀 있어보이는 표현을 쓰자면 커뮤니케이션을 정면으로 가로막는다는 이야기인데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등 그가 작업한 세편의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들이었지만 그것을 보면서, 관람행위로 이해해야하는 관객의 입장이었던 우리들은 늘 어려움없이 그가 선사해준 음악에 힘입어 소통에 성공했다.

우리가 그의 이름석자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이지만 이재진의 존재는 더욱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적어도 그는 불필요하게 앞서나가지 않고 바로 앞 가까이에서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살짝살짝 길을 가르쳐주는 훌륭한 영화속의 숨은 조력자이기 때문이다.

<내용출처:시네마조선>


#앨범듣기#
2007/03/05 - [뮤직/영화 OST] - 내츄럴 시티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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