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중국 산동성 황하유역의 선사유적지 능양하를 발굴하던 중국 고고학자들은 알쏭달쏭한 문양이 새겨진 팽이꼴 토기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졌다.

높이 57cm의 토기 상단에는 (1)과 (4)가 합쳐진 문양이 있었다. 왜 이런 문양을 새겼을까. 궁리 끝에 학자들은 이곳이 청동기시대 고대중국문명의 터전인 대문구(大汶口)문화 유적지이자 갑골문자를 고안한 은나라 문화기반임에 착안해 토기문양을 한자원형으로 점찍었다.

그러나 (1)과 (4)로 구성된 문양의 의미는 기존 한자체계로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토기모양도 다른 지역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난점이 남았다.

사진설명 :(왼쪽)산동성 능양하 유적에서 출토된 고조선 특유의 팽이형 토기. 신용하 교수가 아사달 문양으로 추정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오른쪽) 신용하 교수의 설명

민족기원사 연구에 천착해온 신용하 서울대교수(사회학)는 최근 <한국학보> 봄호에서 이와 관련해 이 능양하 토기의 문양이 바로 고조선의 도읍지로 기록에 언급된 아사달을 뜻한다는 이색견해를 제기했다.

`고조선, `아사달'문양이 새겨진 산동 대문구문화 유물'이란 논문에서 그는 상형된 모양새로 비춰 (1)문양의 ○는 태양, (3)은 구름 또는 바다(또는 바다에 비친 태양의 불빛)를 상징화한 것이며 이를 합친 (1)은 옛 고조선말로 `아사'(아침), (4)는 달(따뜻한 양지의 산)을 나타낸다고 풀이했다.

따라서 두 문양을 합치면 고조선 말에서 나라와 서울이름을 뜻하는 `아사달'이 되고, 이를 한자로 옮긴 것이 조선이 된다. 신 교수는 논문에서 “중국 고고학·역사학자들은 한국어의 특질을 파악하지 않은 채 ◇을 단순히 한자 기원으로만 간주했으며 팽이형 토기가 고조선문명 특유의 토기양식이라는 사실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중국학자들은 (1)을 `아침 단'(旦)이나 `여름하늘 호'(昊), `빛날 경'(炅) 등의 기원으로 보았으나 그 밑의 (4)를 합친 문양은 해석하지 못하거나 불 또는 (1)문양의 변형이라는 등 억지맞춤식 해석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같은 문양의 토기가 부근에서 11개나 출토됐고, 고구려 벽화에서도 이 문양이 발견돼 이 가설은 짐짓 흥미롭다.

팽이형 토기도 논란거리다. 이는 기원전 3000년~2000년 청천강 이남부터 한강이북에 나타난 양식으로 김원룡 등 남한 일부학자와 북한학계에서는 고조선의 양식으로, 남한학계는 지방양식이라고 평가절하해 왔다.

신 교수는 북한가설을 토대로 팽이형 토기가 산동에서 발굴된 것은 당연히 고조선인들이 활동한 근거라고 주장한다. 중국사서에는 산동 고대문화의 주역으로 황하상류 화족과 다른 동이족을 제시했으나 고조선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고조선 산동 진출설을 주장한 신채호의 주장을 연계시켜 동이는 고조선 후국세력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신 교수는 이전부터 여러 논문에서 한·맥·예 3부족 연맹으로 성립한 고조선이 만주, 중원에 후국을 거느린 거대문명권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한국학보의 글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주류 사학계에서는 신 교수 주장에 대해 고고학적 논증이 미흡하고, 지나치게 민족중심의 주관적 해석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산동고대문화의 주역인 동이족 실체에 대해서는 억측 또는 무관심의 극단적 태도가 엇갈려왔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팽이형토기 양식논란을 주류학계가 정밀한 검토없이 사실상 묵살해왔다는 점에서도 중국지역의 고조선 문화연구의 허술함을 겨냥한 신 교수의 주장은 일단 검증하고 재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한겨레신문 2001. 3. 1

 

<출처 : 한류열풍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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